'그들이 사는 세상' 이래서 망했다

【서울=뉴시스】
◇이문원의 문화비평
대중문화산업에선 성공담만 화제가 되는 게 아니다. 때로는 '너무 안 되어도' 화제가 된다. 여기서 그 '안 되는 상품'이 의외로 높은 퀄리티를 갖추고 있을 때 화제성 면에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가장 가까운 예라면, 역시 현재 방영 중인 KBS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이하 '그사세')이다.
'그사세'의 실패는 확실히 충격적이다. 동일시간대 후발주자라는 약점은 있었지만, 그런 페널티를 감수하고도 성공한 사례가 워낙 많다. 더군다나 송혜교라는 '확고히 다져진 브라운관 스타'와 현빈이라는 '미래 브라운관 기대주'의 협연작이다. 그럼에도 첫 회 7.7%라는 저조한 시청률로 시작하더니, 갈수록 힘을 잃어 이제 5%대로 내려앉은 상황이다.
이에 대한 분석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일목요연한 구석이 있었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지나치게 잘 만든 드라마'여서 그렇다는 것이다. 기존 TV드라마가 주는 팬터지성 접근을 배제하고 리얼리즘으로만 치달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통속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시청률 전략을 고의로 동원하지 않아서라는 것이다.
물론 상당부분 맞는 분석이긴 하다. 그러나 현 시점, 대중문화 상품의 상업적 성패는 전적으로 콘텐츠 그 자체에만 있다고 보기엔 힘들다. '어떻게 파느냐'에 따라서 크게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그사세'가 황당무계 코믹 팬터지건 홍상수급의 극사실주의 실험이건 간에, 정확한 계산 하에 마케팅을 시도하면 얼마든지 상황을 뒤집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그사세'가 보여줬던 '잘못된 마케팅'을 짚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사세'의 마케팅적 실패요인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시기'다. '그사세'는 어쩔 수 없이 올 초 방영된 SBS '온에어'와 끊임없이 비교된다. 같은 방송가 소재라는 점도 그렇고, 평균시청률 19.3%를 기록한 '온에어'에 비해 턱없이 실패하고 있어서도 그렇다. 그러나 이는 당연한 일이다.
한국 TV드라마에서 '일반적 무대'에 속하는 가정과 대기업, 둘을 제외하자면 모두 특화된 전문직 공간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공간은 그 자체로 특이 셀링 포인트에 속해서, 일정한 시간차를 두지 않고 연발해 버리면 상품성이 급격히 떨어진다. 한 마디로, 7개월 뒤에 또 다른 클래식 연주자 드라마가 등장한다면 당연히 식상감이 일 수 밖에 없듯이, '온에어'로부터 7개월 만에 등장한 '그사세'도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가장 안정되게 정착되었다 평가받는 의학 드라마도 연발하니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1,2년에 한편 꼴로 등장해 매번 성공을 거두다, 2년 새 4편이 몰려들어 MBC '종합병원2'에 이르자 '식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사세'는 여러 가지 면에서 '지금' 등장해선 안 됐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의학 드라마 인터벌을 적용, 내년 중반기 이후에 등장했어야 안전했다.
캐스팅도 지적할 만하다. 일각에서 인 '송혜교 연기 논란'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송혜교 연기는 여전히 같은 수준이고, TV드라마에서 튈만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그런 안티 반응이 나오게 된 계기다.
송혜교는 발랄한 젊은 여성 이미지로 브라운관에서 스타가 되었다. 이후 이 이미지를 어느 정도 와해시키고, 보다 정적이고 무거운 연기 톤을 잡아 스크린에 도전했다. 다시 브라운관으로 복귀할 때의 수순은 '옛 이미지'로의 귀환이 되었어야 했다. 적어도 영화에서 보여준 것보다는 훨씬 간명하고 단순하며 화려한 면모를 지녔어야 했다. 영화→드라마로의 배역 전환은 이렇듯 비교적 비대중적이었던 기존 이미지에 당의를 입히는 과정이 정석이다. 영화스타로서의 이름값에 걸 맞는, '현실보다 확장된' 캐릭터가 '돌아온 스타' 이미지에 맞는다.
영화계에서 평범한 캐릭터의 세세한 부분을 묘사해 주목받은 전도연은, 영화 실패 후 '대통령의 딸'이라는 만화적 캐릭터를 잡아 '프라하의 연인'으로 브라운관 복귀에 성공했다. 영화에서 음울하고 피로한 이미지로 자리매김한 김하늘 역시 '온에어'의 '오승아' 역을 통해 만화적 캐릭터를 소화,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런 수순에서 벗어나 오히려 더 리얼한 캐릭터를 브라운관에서 맡아버린 송혜교는, 대중의 기대에서 어긋나 드라마 초반부터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다. '그사세'가 송혜교를 통해 얻으려 했던 상업적 효과는 철저히 뒤틀어졌다.
'그사세'는, 적어도 같은 드라마 콘셉트로 승부하려 했을 시, 절대 송혜교 같은 '돌아온 스타'를 기용해선 안 됐다. 지금 막 떠오르는, 그러나 아직 자기이미지가 잡혀있지는 않은 '비교적 신예'를 쓰는 편이 오히려 안전했다. 여배우 서포팅에 일가견 있는 현빈의 기능도 그런 조건이었을 때 더 뛰어나게 발휘된다.
드라마 '중반 마케팅'이 잘못된 방향을 걷고 있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초반 시청률잡기에 실패하자 갑자기 마케팅은 '노희경 마케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대부분 웰메이드 드라마가 외면 받는 현실에 관한 것이다. 최악의 발상이다. 노희경이라는 이름은 지극히 컬트화된 표식이다. 상업성과 사회적 파장을 암시하는 김수현 같은 이름이 아니다. 실제로 노희경은 '잘 만들었지만 상업적으로는 실패한 드라마'의 대표격 표식이 된 상태다.
초반에 시청률 안 나왔다고 '그래도 의미는 있는 드라마'라는 식으로 노희경에 집중하면 오히려 더욱 '왕따 드라마'가 되어버린다. 대중이 친숙해할 만한 요소가 휘발되고, 어렵고 부담스러워 하는 콘셉트로 대표되어 버린다. 초반 시청률에서 끌어올리려 할 때 필요한 건 보다 더 단발적이고 자극적인 부가 마케팅이다.
'온에어'는 각종 스타 카메오 출연으로 이런 효과를 냈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똥.덩.어.리'로 대표되는 '강마에 어록' 마케팅으로 승부했다. 이렇듯 날카롭고 화제몰이 인상을 주는 중반 마케팅이 없다면, '그사세'는 영원히 중반 이후부터 '떨어지는 시청률', '그래도 의미는 있는 드라마', '노희경은 누구인가'로 천착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를 뒤집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약방의 감초'격 요소들도 함께 포진시켜 뒀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퀄리티 마케팅'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게도 성공하는 경우가 최근 들어 몇몇 눈에 띄긴 한다. '하얀 거탑', '고맙습니다' 등이 이런 노선을 따랐다. 그러나 이런 퀄리티 마케팅도 위 요소들을 일정부분 첨가해야만 제대로 효과를 냈다. '하얀 거탑'은 같은 의학 드라마가 SBS '메디컬 센터' 이후 7년간 공백기를 거친 뒤에 등장했다.
동일 배경 연발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배우 선정도 정확했다. 이전까지 별다른 고정이미지를 지니지 않았던 김명민이 최상의 효과를 냈다. 중반 이후부턴 '일본 원작 드라마와의 비교' 등 비교적 긍정적인 화제모으기가 이어졌다.
'고맙습니다' 역시 21세기 들어 불치병 관련 드라마가 소진된 상태에서 등장, 주목을 받았다. 마케팅 포인트를 장혁·공효진이 아니라 노장 신구와 아역 서신애에 맞춰 신선감을 자아냈다. 중반 이후부턴 자연스럽게 사회적 이슈로 이동했다.
안 팔리는 대중문화 상품은 '못 팔기 때문에' 안 팔리는 것이다. 딱히 작가적 고집을 꺾을 필요 없이도 준비만 잘 하면 무엇이건 팔 수 있다. 점차 위태로워지는 대중문화 산업 환경에서 '그래도 의미는 있는' 상품은 더더욱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일단 팔 수 있다는 계산을 전제로, '거기에 의미까지 있는' 방향성을 이상으로 잡아야 한다. 방송사 예산 삭감으로 위기에 몰린 드라마계라면 더더욱 많은 고민을 해봐야 한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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