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컴퓨터, 어떻게 태어났나

2008. 12. 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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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저널 버즈] 정보화 시대의 도래로 IT 산업이 발전하면서 빠른 정보력을 요하는 사회가 됐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인터넷이 발달했고 사람들은 1인 1대 이상의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다. 데스크톱에 이어 노트북, 요즘은 넷북까지 가세해 점점 휴대하기 간편한 제품들이 속속 출시되면서 더 빠른 정보 수집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편리한 생활을 영유하기 까지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으며 어떤 것이든 처음 그것을 만든 사람과 첫 제품이 있을 것이다. 최초의 컴퓨터 그리고 그것을 만든 사람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는 지금의 초고밀도 트랜지스터가 아니었다. 그 당시 우리가 말하는 '컴퓨터'라는 용어로 불릴만한 기계는 진공관으로 만든 것으로 비슷한 형태의 여러 기계가 속속 등장했다.

제1세대 컴퓨터는 진공관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진공관은 에디슨이 처음 발견했다. 에디슨이 백열전등을 개량하면서 전류가 전등의 탄소 필라멘트와 양전하로 입혀진 금속판 사이의 진공 속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에디슨 효과'라고 불렀으나 당시 에디슨은 진공관의 원리를 잘 응용하지 못했다. 에디슨 효과의 실용성을 처음으로 이해한 사람은 영국의 물리학자 플레밍이었다. 이 후 드 포레스는 플레밍의 도움을 받아 최초의 3극 진공관을 만들게 된다.

진공관을 이용한 최초의 컴퓨터는 아타나소프(John V. Atanasoff, 1903~1995)가 1939년에 만든 ABC(Atanasoff Berry Computer)이다. 1934년 당시 아이오아 주립대학의 물리학교수였던 아타나소프는 IBM의 천공카드를 개조해 계산을 기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ABC'이며 이때 베리(Clifford Berry)가 일을 도와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MarkⅠ의 발명

1944년 에이켄은 IBM 내에서 ASCC(Automatic Sequence Controlled Calculator)로 불리는 Mark Ⅰ을 개발했다. MarkⅠ은 계산을 위해 긴 연속의 프로그램을 사용했는데 사칙연산과 삼각법에 의한 함수계산, 다른 복잡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23개의 자릿수를 가진 수를 더하거나 빼는 데 약 0.3초가 소모됐으나 곱셈의 경우 5.7초, 나눗셈은 15.3초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크기도 대단해 가로길이 15m, 높이 2.5m였으며 76만개의 부품과 900km의 전선을 사용해야 하는 엄청난 기계인 MarkⅠ은 이후 15년이나 지속적으로 사용됐다.

이어서 1948년 1월 ASCC의 후속 모델인 SSEC(Selective Sequence Electronic Calculator)가 발표됐다. 개발에 참여한 Watson은 SSEC를 전시한 건물이 기둥으로 인해 가려서 보기가 안 좋다며 기둥을 옮기기까지 하는 등 매우 공들인 작품이었다. SSEC의 수석 엔지니어는 프랭크 해밀턴이었으며 1948년 1월 28일 공개시험을 통해 태음천체력문제를 수월하게 풀어냈다. 또한 1952년부터 1971년까지의 달의 위치를 12시간 간격으로 정확히 계산해냈다.

이후 IBM은 MODEL 701을 생산했는데 이것은 범용컴퓨터이면서 다량으로 생산돼 상업적인 성공을 이뤘다. SSEC의 경우 모든 과학 기술자에게 무료로 사용이 허용됐으며 이로 인해 과학기술 발전에 어느 정도 이바지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작업들이 초석이 돼 IBM은 이후 컴퓨터계의 거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첫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2차 대전이 거의 종결되던 1943년 영국은 독일의 잠수함 U보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독일은 모든 명령문을 에니그마(수수께끼)라는 자동암호문 작성기로 작성된 암호문을 만들어 보냈기 때문에 영국은 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같은 기계를 입수하거나 그 기계를 만든 과학자를 납치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천재 수학자의 도움으로 암호문을 해석할 수 있게 되는데 그는 젊은 수학자였던 알랜 튜링(Alan Turing, 1912~1954)이다. 그는 콜로서스(거인)라는 암호문 해독 전용의 디지털 컴퓨터를 개발해 독일의 암호를 쉽게 해독할 수 있도록 했다.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1944년 2월에 개발됐고 6월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이 당시 개발된 기술과 사용된 지식은 1970년대까지 부분적으로 계속 사용돼 왔다.

콜로서스는 1,500개의 열전자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속도도 빠르고 계산 결과의 신뢰도가 높았다. 공학 판독기에서 해석된 메시지는 5bit 텔레프린트 코드로 테이프에 천공됐는데 1초에 약 5,000문자를 천공할 수 있었다. 내부적으로 콜로서스는 수를 세거나 비교하고 간단한 산술 연산을 할 수 있는 전자 부속들을 갖추고 있었다. 계산결과는 전기타자기를 경유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프로그램은 플러그판의 스위치를 조작함으로써 가능했다.

■ENIAC의 탄생

초기의 다수의 전자식 기계는 1938년 설립된 벨 텔레폰(Bell Telephon) 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 이들은 특수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컴퓨터들로 스티비츠(George R. Stibitz) 회사에서 처음 작동됐다. 최초의 계전컴퓨터는 'Complex Calculator'라고 불렸으며 2진 구성을 채택한 최초의 컴퓨터가 됐다. 1940년 최초로 가동된 이 기계는 두 개의 복소수 산술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공관 속의 전자의 흐름을 이용한 최초의 컴퓨터 ENIAC(에니악)은 군부의 강한 요청을 받아 제작됐다. 이 계획의 고문 중에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1933년 프린스턴 고급 연구소의 최초 종신연구원이 된 폰 노이만(J. von Neumann)이 있었다.

1946년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모클리(John W. Mauchly, 1908~1980)와 에커트(John Presper Eckert, 1919~)가 만든 '에니악(ENIAC-Electronic Numerical Integrater And Calculator)'은 전자계산기의 최초라고 볼 수 있으며 현대적 방식의 기능을 하는 최초의 컴퓨터라고 말할 수 있다. 에니악은 30톤의 덩치와 진공관이 무려 1만 7,468개나 사용된 엄청난 크기였다. 전선 길이도 130km 정도 사용됐다.

에니악의 성능은 예전의 286 AT 정도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대단한 계산능력을 자랑했다. 사람이 7시간 걸려 풀어낸 탄도계산을 에니악은 단 3초만에 해결해냈고 이로 인해 '총알보다 빠른 계산기'로 불리기도 했다. 이렇듯 빠른 계산능력을 자랑한 에니악이었지만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로는 입출력이 자유롭지 못했다. 천공카드에 부호형태로 기록한 형태였기 때문에 바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또 프로그램 내장방식은 일명 '폰 노이만' 방식이 아니었다. 기억장치의 내용을 바꾸는 것이 아닌 시스템 내의 전기배선을 모두 들어낸 후 배선을 재배치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배선을 하면 할수록 프로그램 작성은 점점 더 어려워져 버렸다.

이런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일명 '폰 노이만 이론'이라 불리는 것으로 폴란드의 천재 수학자 폰 노이만이 방향을 제시했다. 이는 프로그램 내장방식을 기억장치에 계산 순서를 미리 저장시켜 두고 실행될 때 순차로 그 기억내용을 끄집어내 지시대로 수행하는 방식이다.

에니악은 펜실베니아주 무어 학교의 전기공학과에서 가동됐고 9년간 사용되다 1955년 다양한 컴퓨터들이 개발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다. 에니악을 발명한 모클리와 에커트는 이후 EDVAC, BINAC, UNIVAC 등의 컴퓨터의 제작에도 도움을 줬다.

■ENIAC 이후의 컴퓨터에니악이 발명된 이후 많은 연구소들이 컴퓨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모클리와 에커트는 '에드백(EDVAC-Electronic Delay Storage Automatic Computer)'의 제작에도 참여하기 이르렀는데 에드백은 이전의 에니악과 달리 명령어의 내부 기억장치가 디지털로 이뤄졌으며 2진수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1952년 에드백이 완성됐으며 그 사이에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에드삭(EDSAC-Electronic Delay Storage Automatic Computer)'이라는 컴퓨터를 제작했다. 에드삭에 와서 컴퓨터가 최초로 프로그램을 저장할 수 있게 됐다. 캠브리지 대학의 월크스는 '폰 노이만 이론'을 전격 채택해 에드삭을 완성했으며 진공관수도 4,000개 정도로 줄이고 전 과정에 2진법 회로를 사용했다.

1950년 모클리와 에케트는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인 '유니백(UNIVAC-UNIversal Automatic Computer)'의 제작에도 참여했는데 유니백은 미국 인구조사국에서 사용됐다. 이후 1986년 버로우즈사와 합병해 유니시스가 된 스페리사는 '유니백Ⅰ(UNIVACⅠ-UNIversal Automatic Computer)'을 개발해 시판했고 IBM이 부상하기 전까지 세계 최대의 컴퓨터 업체로 군림했다.

유니백Ⅰ 시판 이후 자동 프로그래밍 기법이 개발되면서 더욱 진화된 기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초보적인 컴퓨터 언어의 개발과 더불어 생산성 향상을 위한 최초의 시도가 1950년대에 이뤄졌다.

컴퓨터 언어는 프로그래머가 명령어를 작성하기 위해 짧고 기억하기 쉬운 문자들을 결합시켜 간략한 의사기호를 만드는 방식으로 기존의 0과 1로 이뤄진 기계 코드를 대신했다. 또한 자주 사용하는 명령절차에 쓰도록 별도로 작성해 놓은 프로그램 명령어들의 집단 '서브루틴'으로 인해 사용이 더욱 용이해졌다.

이런 방식으로 작성된 프로그램은 '어셈블러'라고 불리는 별도의 프로그램이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2진 코드로 자동으로 변환시켜 준다. 어셈블러는 이후에 등장하는 상업용 컴퓨터에 필수적인 프로그램이 됐으며 유니백, IBM의 컴퓨터 시리즈는 자체 개발한 어셈블러를 갖추고 있었다.

■최초의 프로그래밍 언어현대적 의미의 프로그래밍 언어는 독일 공학자인 콘라드 추제(Konrad Zuse)에 의해 만들어졌다. 획기적인 발상으로 이뤄진 것이었으나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했으며 1972년에 들어서 중요성을 일깨우게 됐다. 추제는 Z-1, Z-2라는 컴퓨터를 개발하면서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개념을 사용했다.

이어 미국과 영국에서도 국수주의적인 프로그래밍의 한계를 깨닫고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Grace Murray Hopper)라는 여성 과학자가 선두로 나서 유니백에서 보다 나은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도록 연구하기 시작했다. 호퍼는 추제의 방식과 동일하게 대수학에 쓰이는 용어를 이용해 기계에 입력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에 수학에 익숙한 사람들은 복잡한 2진법, 8진법 대신 수학기호를 사용하게 됐다.

1949년 호퍼는 최초의 원시적인 인터프리터인 '쇼트코드(Short Code)'를 개발했고 이후 월크스에 의해 확장, 정리돼 '어셈블러'로 확정됐다. 어셈블러는 간단한 표현으로 이뤄진 기호를 하나씩 기계 명령어로 바꿔주는 번역기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어 1952년 영국 출신의 애릭 글레니에에 의해 '오토코드(Auto Code)'라는 쇼트코드보다 한 단계 위격의 프로그램이 개발됐다. 오토코드는 MarkⅠ에서 사용됐으며 최초의 컴파일러가 됐다. 쇼트코드와 달리 내부에서 개발된 프로그램을 저장 가능해 이후에 사용할 때 불러다 쓰는 것이 가능했다. 이때 서브루틴의 개념도 생겨났다.

이후 호퍼는 오토코드보다 더 높은 차원의 A-0라는 언어번역 시스템을 고안해냈고 최초로 '컴파일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A-0에 이어 A-1, A-2로 계속 발전하면서 'Machmatic'이라는 상품명으로 광고를 시작했으나 수학적 표현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친근한 컴파일러가 될 수 없었다. 이윽고 호퍼는 '플로매틱'이라는 상업용 컴파일러를 등장시켰고 이는 이후의 프로그래밍언어 증가의 물꼬를 열었다. 이때 '스피드 코딩'이라는 유사한 컴파일러도 IBM 컴퓨터와 함께 개발됐다.

20세기 후반 정보화 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컴퓨터의 개발은 전쟁을 위한 군부의 요청으로 시작됐다. 빠른 탄도계산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더 편리하고 빠르게 진화를 시작한 컴퓨터는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급격한 발전을 이뤘다. 에니악보다 1만배 이상 크기가 작고 가벼우며 처리 속도도 5,000배는 빠른 컴퓨터들이 등장했으며 휴대까지 간편한 컴퓨터들이 개발된 것이다. 당연히 옆에 있었던 것처럼 컴퓨터 없이는 생활하기 힘든 요즘. 지금의 상태가 되기까지는 부단히 연구에 매진한 수학자, 과학자들의 노고와 그들이 개발한 기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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