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크섬' 8인 표류기 거침없이 'ㅋㅋㅋ'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2008. 9. 1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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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안희태 김영기 PD, 송재정 작가 등 <거침없이 하이킥> 제작진이 뭉쳐 만드는 <크크섬의 비밀>은 '야생코믹 어드벤처스릴러' 시트콤을 표방한다. 9월2일 오후 4시, 경기도 파주 소령원 숲. <크크섬의 비밀> 촬영장이다. 바닷가가 나오는 장면은 인천 무의도에서 촬영하고, 바다가 보이지 않는 무인도 장면은 이 숲에서 찍는다. "섬으로 출발하기 전에 이미 회사에서 해고하기로 했다"라는 말을 듣고서 가출한 신 과장(신성우)이 잠시 거북이 풍선집에 들르는 장면을 한창 찍고 있었다. 신 과장은 죽창을 들고 나타났다. 타잔 같은 풍모다.

김 부장(김선경) : 어머, 여, 여긴 웬일로….

신 과장 : 별일 없나 걱정돼서 와봤어요.

김 부장 : 예? 벼, 별일 없어요. 신 과장은요?

신 과장 : 신 과장. 그 호칭은 이제 내 거 아닌데.

김 부장 : 그럼 제가 뭐라고… 마땅한 말이….

신 과장 : 음… (고민하다) 그냥, 오빠라고 불러요.

김 부장 : 예? 어머, 어떻게…. (당황해하다)오, 빠.

신 과장 : (멋지게 씩 웃으며) 그럼 잘 지내요.

김 부장 : 어머 잠깐만요.(쫓다가 신 과장 잡으며 넘어진다)

신 과장 : 어. (휙 두 손으로 받아 멋지게 안아 올리며) 조심해야죠.

김 부장 : (좋아하며) 근데 왜 저한테 존대하세요. 전 동생인데….

신 과장 : 응? 아, 그런가?

김 부장 : 예. 오빠도 말 놓으세요.

신 과장 : 음, 그러지 뭐…. 그럼 난 뭐라고 부를까? 선경씨?

김 부장 : (부끄러워하며 고개 저으며) 으으응.

ⓒ시사IN 안희태 김영기 PD는 김병욱 PD와 함께 <순풍 산부인과> <거침없이 하이킥> 등 여러 시트콤을 만들어왔다. 김 PD는 "시원시원한 장면을 보여주는 시트콤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김 부장의 카리스마가 사뿐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여러 번 나누어 찍은 끝에 한 장면이 완성되었다. 연출자 김영기 PD(41)가 '컷' 소리를 외치자 스태프가 숨죽였던 웃음소리를 토해냈다. 여기저기서 '크크'거린다. 본인도 민망했던지, 김선경씨도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여러분"이라고 말한다. 극 중 김 부장의 목소리 톤으로. 그러고 보니 촬영장에서 내내 서로 호칭을 '신 과장, 김 부장' 이런 식으로 불렀다. 1998년, 2000년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부부 역으로 함께 출연한 두 사람은 호흡이 척척 맞아 보였다.

촬영장 분위기가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갑자기 촬영이 중단되었다. 어디선가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무인도 위로 비행기가 지나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촬영 속개. 그러다 또 중단된다. 이번에는 해가 구름 속에 들어가버렸다. 빛이 달라진다. 조명을 담당하는 스태프가 조명 위치를 바꾸느라 고생이다. 김영기 PD가 "아, 해 떨어진다. 해 떨어져" 하고 중얼거린다. 속이 타는 것 같았다.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 김 과장(김광규)이 등장했다. 장난 삼아 가지고 놀던 피리 무기를 버리고, 등에 천사 날개를 달고 활과 화살을 들었다. 취재를 간 안희태 사진기자가 김 과장을 열심히 촬영했다. 김 과장이 독특한 억양으로 말했다. "나야 사진 많이 찍히면 좋지. 그런데 여자들은 왜 나를 안 찍나 몰라." 옆에서 이 말을 듣던 김 부장이 한마디 거든다. "많은 여자들이 찍고 있어. 대개 연령대가 높아서 그렇지. 인기 짱이야." 신성우·김선경·김광규 이 동갑내기 세 배우는 '크크숲'에서 사뿐사뿐 노니는 것 같았다. 시트콤처럼.

<크크섬의 비밀>은 '야생코믹 어드벤처스릴러' 시트콤이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작가 송재정씨(35)와 연출자 김영기 PD가 만드는 작품이다. 직장 동료들이 섬에 조난당해 겪는 내용이다. 사장(안석환)이, 아내의 후배인 김 부장이 자신의 외도 사실을 눈치 챈 것으로 알고서, 위자료 없이 이혼하기 위해 며칠 동안만 자기 직원들이 조난당한 것처럼 꾸몄는데, 섬에 이들을 데려다준 선장(이외수)이 치매에 걸리는 바람에 정말 조난당하게 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섬에서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섬에 조난당한다는 설정이 '미드(미국 드라마)' <로스트>와 얼핏 비슷하다. 그래서 아예 첫 장면은 그대로 <로스트>를 패러디했다. 비슷한 내용과 장면은 거기까지다.

김영기 PD와 송재정 작가의 새로운 '실험'

'야생코믹 어드벤처스릴러' 시트콤. 수식어가 길다. 수식어가 긴 만큼 그동안 익숙하게 보아왔던 시트콤과 많이 다르다. 오죽하면 '김영기와 송재정의 실험'이라고 할까. 먼저 등장인물의 관계가 다르다. 그동안 거의 모든 시트콤은 '가족 시트콤'이었다(114~115쪽 기사 참조). <순풍 산부인과>가 그랬고, <거침없이 하이킥>도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직장 동료이다. 왜 그랬을까? 김영기 PD와 송재정 작가의 답은 하나다. "이미 해볼 것은 다 해봐서." 두 사람은 시트콤이라면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해봤다. 김영기 PD는 <la아리랑>부터 시작해 김병욱 PD와 함께 시트콤만 연이어 만들어왔다. 송재정 작가는 24세 때부터 11년째 시트콤만 줄기차게 써왔다.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귀엽거나 미치거나> <거침없이 하이킥>. 두 사람이 함께한 작품들이다. 김영기 PD가 "거의 식구나 다름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시사IN 안희태 100% 야외 시트콤 촬영은 고행이다. 비행기가 지나가거나 햇볕이 가려지면 촬영은 중단되기 일쑤였다. 위는 <크크섬의 비밀> 촬영 현장. 지난 2월 김영기 PD와 송재정 작가가 '신기한 시트콤'을 기획했다. "가족 시트콤으로 해볼 것은 다해보았다. 그럼 어떤 시트콤을 하지? 일단 밖에서 찍자. 무인도를 배경으로 해볼까?" 김영기 PD는 '시원시원한 장면을 보여줄 수 있는 시트콤'을 만들고 싶었고, 송재정 작가는 '이제 가족 시트콤 말고, 자기가 쓰면서 재미있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무인도가 배경이다 보니 100% 야외 촬영이다. 통상 시트콤은 세트장 안에서 카메라를 돌리고 돌린다. 속전속결. 스튜디오에서 해결한다. 야외에서 촬영하자니 어려운 점이 많다. "무인도가 배경이라 인공적인 것이 들어가면 안 된다. 무의도 촬영 때는 피서객이 많아 촬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올림픽 때 2주 동안 결방해서 촬영 스케줄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올림픽 기간에 비가 주룩주룩 내려 촬영이 많이 지연되었다. 일주일 전부터는 스태프가 한 시간 정도밖에 못 잘 정도로 강행군을 했다. 그래도 야외로 나온 것, 후회 없다"(김영기 PD).

배경을 무인도로 설정했더니 다른 시트콤과는 달리 방영 횟수가 대폭 줄어들었다. <크크섬의 비밀>은 40회로 종영된다. 통상 200회 가까이 되는 가족 시트콤과 다른 점이다. "기존 시트콤과 비슷한 횟수를 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여름에 섬에 갇혀 가을을 거쳐 겨울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리 무인도라고 해도 그 기간에 못 찾을 섬이 한국에 있을까? 그래서 단기간 생존 스토리로 갔다"(송재정 작가).

다른 시트콤과 차이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구성도 상당히 다르다. 보통 시트콤은 한 회에 두 개 정도의 에피소드가 완결되는 형식이다. 1, 2회를 보고, 20회를 보고, 다시 50회를 보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그런데 <크크섬의 비밀>은 매회 완결짓지 않고, 스토리가 연속된다. 게다가 줄거리 템포도 빠르다. 그래서 '신규 시청자'가 진입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몇 회를 놓치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드라마는 1부보다 마지막 회가 더 재미있다. 반면 시트콤은 처음에 캐릭터가 한창 뛰어놀 때가 재미있다. 캐릭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뒤로 가면 웃지 않는다. 이번에는 뒤로 갈수록 재미있는 시트콤을 구성해보려고 했다"(송재정 작가). 송 작가는 새로운 구성을 도입하려 하니 쉽지 않다고 한다. 무인도라는 공간 제약도 만만치 않다.

깜짝 캐스팅, 이외수는 송 작가의 외가 친척

9월4일 현재 방영된 장면 중에 <크크섬> 마니아가 단연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 장면은 신 과장과 김 과장이 서로를 '테리우스' '람세스'라고 부르며 바닷가에서 노니는 장면이다. 연출자와 작가가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해서 건져올린 장면이었다. 송재정 작가는 시놉시스를 준비하고 배우들을 만났다. 연출자와 함께 김광규씨를 처음 대면했을 때, 김광규씨가 라틴 댄스 추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바로 탱고 구경을 갔다. 김광규씨는 춤 동호회에서 '람세스'라 불렸다. 동네 호프집 이름이 좋아서 자기가 붙인 별명이라 한다. 신성우씨의 별명은 '테리우스'로 워낙 잘 알려졌던 것이고. "두 사람이 예술로 뭉친다는 것은 애초 계획에 없었다. 신성우씨와 김광규씨를 만나 대화하면서 '테리우스' '람세스'로 엮어야겠다 싶었다"(송재정 작가).

ⓒ시사IN 안희태 <크크섬의 비밀>의 세 작가. 왼쪽부터 김윤주씨, 송재정씨, 정지연씨. 시트콤은 '캐릭터 쇼'다. 배우의 극 중 캐릭터가 실제 캐릭터와 비슷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 캐릭터를 얼마나 잘 살리는가가 관건이다. 시트콤에서 실명을 쓰는 것도 캐릭터와 자기를 동일시하지 않으면 감정이입이 잘 안 되기 때문이라고 송 작가는 말한다. 그래서 캐스팅에 공을 들인다. '찌질이 윤 대리' 윤상현씨는 드라마 <겨울새>에서 인상적 연기를 펼쳐 발탁되었다. "우리 같은 시트콤 작가는 멋있게 나오는 역할에 매력을 못 느낀다. <겨울새>를 보니까 윤상현씨가 눈에 확 들어오더라. 찌질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할 것 같았다"(송재정 작가). 김 과장은 애초 지금보다는 훨씬 못된 성격이었다. 그런데 김광규씨를 만났더니 "순하고, 애교가 많아서" 극 중 캐릭터를 변화시켰다. 가장 많이 변한 캐릭터는 심형탁. 심형탁씨를 캐스팅할 때는 그가 아침 드라마에서 악역을 할 때였다. 그런데 만나보니, 그도 순한 성격이었다. 애초 굉장히 시니컬한 역이었던 심형탁은 양다리를 하면서도 우물쭈물 잔정이 많은 캐릭터로 바뀌었다. "본인과 맞지 않는 캐릭터를 시키면 '드라마적인 연기'가 나타난다"(송재정 작가). 작가 이외수씨가 깜짝 캐스팅된 과정은 의외로 단순하다. 이외수 작가가 송재정 작가의 외가 쪽 친척이라 캐스팅이 수월했다.

송재정 작가는 "못난 사람들이 섬에 와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빚쟁이는 섬에 와서 로또에 당첨되고, 무능력했던 낙하산 사원은 섬에서 리더가 되는 모습. 새로운 환경에서 새 관계를 형성하고, 자기도 모르던 자아를 발견해가는 모습. 이는 직장인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김영기 PD는 <크크섬의 비밀>을 '새로운 반찬'이라고 표현했다. "새로운 음식을 맛보듯이 봐주었으면 좋겠다."

곧 추석이다. 아직 <크크섬의 비밀>을 못 본 이라면, 상을 물리고 쉴 때 한번 몰아서 볼 일이다. 문제는 '크크섬'에 중독될 수 있으니 조심할 것. 기자도 올림픽 때 스포츠 시청에 지쳐 '크크섬'을 몰아서 보았다. '왜 결방하냐'고 게시판이 시끄럽기에, '도대체 어떤 시트콤이기에' 하고 보다가 '웃음섬'에 조난당했다. 내 방이 '크크섬'이 되었다. 하도 '크크' 웃어서.

차형석 기자 /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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