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재조명되는 자격루
[쇼핑저널 버즈] 지난 8월 11일 용산에 위치한 전파연구소 강당에서 「세종대왕의 표준시계-자격루 복원에 23년!」 세미나가 개최됐다. 500여 년 만에 새롭게 복원된 자격루를 통해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대한민국의 디지털 과학기술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그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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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루' 복원에 앞장선 남문현 교수자격루 복원에 성공한 주인공은 건국대 남문현 교수(65)이다. 23년 동안 자격루 원형복원에 헌신적으로 노력한 끝에 500여 년 전의 발명품을 우리 곁에 끌어들인 주인공이다. 그가 처음 자격루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1984년, 미국의 버클리대 교수의 권유 때문이었다. 각 나라마다 자동제어장치의 시초가 되는 유적들이 존재하는 만큼 전공분야를 살려 연구를 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권유였다.
그 역시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자동제어 기술이 당연히 있을 줄 믿고 기록과 유물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눈에 띈 것이 바로 자격루(自擊漏)였다. 사료를 고증하며 장영실이 발명한 자격루 복원에 매진한 결과 23년 만에 완전 복원에 성공했다. 자격루는 물시계이자 자동시보장치를 갖춘 표준시계이며 한국 과학사에서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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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격루를 복원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자료는 '세종실록'에 나와 있는 2000자 내외의 문서가 고작이다. 2000자 내외의 문서는 이미 그가 고증하기 이전에도 존재했던 자료였지만 아무도 정확한 뜻을 밝혀내지 못했으나 그의 노력으로 조금씩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간 현전했던 자격루의 물시계 항아리 배열방식은 일본학자들에 의해 크게 잘못됐는데 남 교수의 복원과정에서 대파수호-중파수호-소파수호 순(1열3단)으로 바로잡혔다. 이러한 자격루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 전공분야인 전기공학을 뛰어넘어 천문학, 과학사, 기술사까지 공부하면서 이루어 냈기에 오늘의 성과가 더욱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밀한 자동제어장치 '자격루'의 비밀남문현 교수가 밝힌 자격루의 작동 원리는 물시계의 기본인 물의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다시 일정한 시차로 구슬과 인형을 건드리도록 설계한 완벽한 자동제어 시스템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5세기 당시, 중국과 이슬람의 기술에다 우리의 탁월한 제어계측 기술을 결합해 세계적인 보편성과 독창성을 구현해낸 것"이다.
자격루는 물의 흐름을 이용해 인형이 종, 징,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려 주는 첨단 물시계이며 한국 최초의 디지털 기계이다. 하루를 2시간씩 나눈 12지시(오후 11시인 자시, 오전 1시인 축시 등)마다 종을 울리고 밤 시간인 5경(오후 7시인 1경∼오전 3시인 5경)에는 북과 징을 울리도록 함으로써 혼동을 피할 수 있다. 12지시에는 각각의 시간에 해당하는 동물 인형(자시의 쥐, 축시의 소 등)이 뻐꾸기시계처럼 시보상자 구멍에서 튀어 오르도록 했다.
자격루는 크게 3부분으로 나뉘는데 왼쪽의 수압과 수위를 조절하는 수위조절용 항아리가 있고 중앙에는 두 개의 계량용 항아리가 있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부분에는 시보(자격)장치가 있는데 이 부분이 시간을 알려주는 종과 북 징을 치는 시보인형이 위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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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분석해 보면 물시계는 아날로그 시스템이고 시보장치는 디지털 시스템인 격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시스템이 접속되려면 아날로그·디지털 변환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보루각 안에 층층이 다락마루를 놓아 맨 위 층에 용모양의 도수관이 달린 커다란 저수조를, 그 밑에 단계적으로 수압조절용, 수위조절용 항아리들을 놓아 일정한 유량이 계량호에 유입되도록 한 다음 계량호 안에 거북모양의 부자를 넣고 그 위에 시간눈금을 새긴 잣대를 꽂는 물시계를 만들었다. 이 계량호에 물이 유입되면 수위가 증가함으로 그에 따라 잣대가 떠오르면서 관리자가 잣대에서 12시와 경점의 눈금을 읽어 시각을 알아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각을 알아내는 시스템을 시각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변환하는 것이 자격루에서 가장 중요한 시보장치이다. 잣대가 떠오르면서 계량호 위에 세운 방목 안에 설치한 탄알만한 작은 구슬(12용은 12개, 경점용은 25개)이 담긴 수납기구를 밀어 올려 구슬을 떨어뜨리는 동판기구를 고안한 것이다.
이러한 동판기구는 부력에 의해 작은 구슬이 낙하하면서 발생하는 힘만으로는 로봇인형이 종이나 북을 울릴 수 없으므로 인형기구를 작동시키는 달걀크기만한 쇠구슬을 미리 저장하였다가 동판기구에서 떨어진 작은 구슬이 이것들을 순서대로 방출시켜주는 철환방출 기구를 통해 12시 로봇과 경점 로봇들이 연결된 제어기구들을 작동시켜 각각 종, 북, 징을 울리게 한다.■세종의 경천애민 사상으로 태어난 '자격루'자격루의 탄생 배경에는 세종의 경천애민사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세종실록』 「보루각기」에 "임금께서는 시각을 알리는 사람이 잘못 알리게 되면 중벌을 면치 못하는 것을 염려하여 호군 장영실에게 하명하여 시각을 알리는 일을 맡길 시보인형을 나무로 만들었으니, 이에 시각에 따라 스스로 알리므로 사람의 힘이 들지 않았다…"고 사료에 밝히고 있다.당시 왕조시대의 시간은 천체 관측 기술을 통해 하늘의 능력을 받아 백성들에게 편리함을 주는 능력을 보여줘야 했다. 이는 최고의 국가 통치 기술이자 제왕학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이미 중국에서 발전된 천문과학 기술에 만족하지 않고 세종이 장영실을 통해 새로운 관측기를 개발하도록 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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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천문 기계는 중국의 시점에 맞추어 제작됐기 때문에 조선의 실정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현대의 시차를 살펴보더라도 북경과는 1시간, 남경과는 그 이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조선만의 새로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은 신분이 천한 관노 장영실을 통해 그 결실을 맺는다. 당시 관노 출신의 천한 일개 기술자를 그의 뛰어난 재능 하나만을 보고 귀하게 쓴 세종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다. 자격루의 개발 성공으로 세종은 조선왕조의 시간표준을 통해 국가 발전의 초석을 이룰 수 있었다.그는 이번 성과를 되돌아보면서 세종의 경천애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백성을 아끼는 세종의 이같은 노력이 시대를 뛰어넘는 과학의 성과를 보이며 세계 기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IT강국을 이루기 위한 우리의 노력어느 세대든지 과학기술문화는 그 국가의 성장 동력이자 국력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자격루는 조선조 최초의 디지털시계이자 우리 민족의 과학 기술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잣대로서 자부심을 갖게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는 IT, 디지털 강국이다. 과거의 장영실이 보여주었던 디지털에 대한 DNA가 혈관 속에 흐르고 있지 않다면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전통과학 속의 첨단기술을 찾아내어 새로운 과학기술문화를 창조하는 일에 눈길을 돌려야 할 것이다.
■인터뷰 - 자격루 복원의 주인공 남문현 교수1. 자격루 복원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전공이 제어와 바이오 공학인데 모두 서양에서 형성된 학문이다. 대학에서 강의하다 보니 전공의 뿌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1980년대 사회 각 분야에 불어 닥친 한국학 연구 붐을 시작으로 이참에 우리나라 제어공학에 대한 역사를 연구해 보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우선 '자동제어'의 '自'자로 시작되는 낱말을 역사에서 찾아보니 제일 먼저 나온 것이 낙랑공주 이야기에서 나오는 '자명고(自鳴鼓)'였으며 조선시대 장영실이 제작한 '자격루(自擊漏)', 그리고 중국에서 들여온 '자명종(自鳴鐘)' 이였다. 이 중 제어공학과 가장 연관성이 깊다고 생각 된 것이 바로 자격루였다.
마침 대한전기학회 계측제어시스템연구회 간담회에서 자격루 연구를 권고하기도 해서 1년 정도 시도해 보자는 마음에 1984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세종실록'의 '보루각기'와 '흠경각기'를 읽기 시작했다. 또한 덕수궁 내에 있는 국보 제 229호 '보루각자격루'도 동시 답사를 시작했다.
이러한 시작은 무려 24년이나 걸렸고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그 과장에서 신경제어공학 연구와 병행해 자료를 수집하는 한편 역사학자들과 접촉하여 역사연구의 방법론도 터득했다. 건국대학교 사학과 이주영, 중문과의 이수웅, 서울대학교의 이태진 교수 등과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 은사인 스타크(Lawrence W. Stark, 1924∼2005)교수님의 조언을 받으며 연구에 몰두했던 것이다.
2. 자동제어 기술과 자격루 기술과의 연관성은 무엇인가.
자격루는 보통명사로 '시보 장치를 갖춘 물시계'라는 뜻이다. 영국 캠브릿지의 저명한 과학사학자인 조지프 니덤(Joeseph Needham)은 자격루를 'Striking Clepsydra'라고 명명했다. 이 시계는 시간을 계측하는 '물시계'와 정해진 시각에 시보를 해주는 '시보 장치'로 구성돼 있다. 정해진 시각에 이르면 자동으로 시보를 하여 하루 12시와 밤 동안의 경점시간을 시보하는 시계이다.
자격루를 구성하는 자동제어 기술을 간단히 살펴보면 하루 12시는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하는 시간이며 이러한 시(時)는 12간지로 나타냈다. 12간지는 12가지 동물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만약 자시(子時)라면 쥐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자격루는 물시계 핵심인 물의 흐름을 지구의 자전 속도에 똑같이 맞추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자동제어기술이다. 이는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여 일정한 유량을 시간계량용 용기에 유입시키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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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잣대의 시간눈금을 정해진 간격마다 샘플링해 이산신호를 발생시켜 시보장치를 작동시키는 신호 발생 기술이다. 여기서 물시계의 증가수위, 곧 아날로그 양을 이산시산 신호로 변환시켜주는 일종의 아날로그·디지털 변환기(AC/DC)가 필요하다. 변환기는 정해진 시각마다 탄알만한 작은 구슬을 낙하시키는데 이것만으로는 커다란 시보장치를 작동시킬 변환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작은 구슬은 변환기에 장치한 순서제어기를 통과하면서 미리 저장해둔 달걀만한 크기의 쇠구슬을 차례로 낙하시켜 주는 과정을 통한다.
낙하한 구슬은 12시에 종을 치는 로봇기구를 구동하여 종을 울리게 하고, 동시에 해당되는 시의 12지신 인형을 교대로 전시해 시간을 알려준다. 이 과정에서 순서제어, 스위칭, 지렛대 기구, 회전식 디스플레이 기구 등 매우 정교한 제어기구들이 작동된다.
경점은 5경 25점을 나타내는 25개의 쇠구슬을 낙하시켜 5진법 계수기(counter)회로를 작동시켜 북과 징소리로 시간을 알려준다. 예를 들면 성문을 닫을 시간인 1경 3점이 되면 북 1회가 울리고 징이 3회 울리는 시스템이다. 자격루는 그 원리와 구조가 현재에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복합 시스템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사이버시스템이라 할 수 있겠다.
3. 자격루를 복원한 시점에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자격루 복원은 세종대왕이 이룩하신 왕립천문대인 간의대 복원의 첫 걸음이다. '간의대'는 처음에는 경복궁 경회루 주변에 설치되었다가 훗날 경복궁의 서북쪽인 신무문 근처로 이전하였다. 지금은 자취도 남아있지 않지만 간의대 사업은 훈민정음 창제와 더불어 세종의 과학기술 업적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이다.
간의대에 대한 기초 연구는 완료된 상태이며 예산을 확보해 복원하는 일만 남았다. 장영실이 자격루인 '보루각루'를 만들어 호군으로 승진한데 대한 보답으로 발명한 것이 '흠경각루'인데 이 또한 자격루의 하나로서 구슬 옥자를 써서 '옥루'라고도 불리었다. 이는 조선조 정치사상인 왕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제작된 시계인데 이것이 복원되어야 자격루 복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앞으로는 '흠경각루'를 비롯해 간의대 복원에 여생을 바칠까 한다. 또한 여력이 있다면 전기공학 교육에 종사했던 사람으로서 고종께서 간의대 맞은편에 건청궁을 짓고 에디슨전등회사에서 전등발전설비를 구입해 최초로 건설한 발전소인 전등소를 복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전기산업의 뿌리를 찾는 역사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남문현 교수 프로필 출생 : 1942년 10월 10일소속 : 건국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학력 : 연세대학교대학원 생체공학 박사 수상, 1996년 과학기술도서상 저술상경력 : 미국전기전자학회(IEEE) 역사위원, 1999년 한국산업기술사학회 회장저서 : 한국의 물시계(95. 건국대출판부), 장영실과 자격루(02. 서울대출판부)연구업적 : 인간의 운동제어 연구, 자격루 복원(국립고궁박물관, 2007), 한국전기공학사 연구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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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희 월간 PC라인 기자(dejavu@pc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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