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만난 사람 - '영원한 아나운서' 김자영

【뉴욕=뉴시스】
사람의 이름을 떠올릴 때 특정한 키워드나 이미지가 동반되는 경우가 있다. 아나운서 김자영. 87년 KBS에 입사한 이후로 20여년을 한결같이 그이의 수식어로 자리한 분신과도 같은 단어다.
지금은 기억에도 아스라하지만 허참과 '가족오락관'을 진행하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김자영은 가족에게 즐거움을 주는 친근한 오누이같은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이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한 프로는 KBS FM을 통해 소개된 '세계의 유행음악'이 아니었을까.
스페인의 혼성그룹 메까노의 '달의 아들'과 같은 라틴음악과 빠뜨리샤 가스의 샹송, 깐소네 등 음악의 지평을 넓혀주는 곡들을 접하며 사람들은 '세계의 유행음악'에 빠져들었다. 황인용이 구수한 저음으로 진행한 '골든 팝스'가 추억속에 자리하듯 김자영은 애청자들에게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의 연인'이었다.
정치인 김민석과 결혼후 딸을 키우며 그이는 EBS 교육방송에서 또하나의 조용한 스테디셀러를 만들었다. 육아 프로그램 '부모의 시간'이었다.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일하는 엄마로서 매일 1시간씩 무려 6년간 생방송 프로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능력보다는 엄마로서의 노력이었다"고 고백한다.
딸 비단이를 키우며 겪은 경험과 엄마들과의 상담, 전문가의 조언을 전해주는 '부모의 시간'은 초등학생 자녀들을 위한 지침서가 전무했던 당시 젊은 부모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였고 '초등학생 때놓치면 평생 후회한다'는 베스트셀러 교육서적을 내는 계기가 되었다.
가족오락관을 진행할때 방청객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나도 빨리 아줌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김자영을 뉴욕에서 만난 것은 2008년 여름이었다. 15년차의 '중견 아줌마'로는 믿기지 않게 여전히 젊고 맵시있는 모습이었다.
그이에게는 어느새 열여섯살이 된 비단이말고 귀여운 네 살백이 아들 희단이도 있었다. 유학길에 오른 남편과 함께 3년전 뉴욕에 와서 처음 1년은 미국 생활 적응하랴, 늦둥이 돌보랴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뉴욕의 로컬매체들이 베테랑 방송인의 야인 생활을 곱게 두고 볼 리 만무했다.
미 동부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 '뉴욕 라디오 코리아'에서 마이크를 다시 잡고 '김자영의 뉴욕포럼'을 지난 8월까지 2년간 진행했다. 이 기사가 나가는 지금 김자영은 서울에 있다. 3년간의 뉴욕생활을 접고 홀연히 돌아갔기 때문이다. 남들은 애들을 미국 유학을 보내지 못해 안달인데 고등학교 갈 나이가 된 딸을 데리고 귀국한 것은 솔직히 의외였다.
하긴 미국에 오기전에도 비단이를 어학연수 대신 산골로 '도농학습'을 보내고 행복해한 엄마의 전력(?)을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귀국의 결정적 이유는 "딸이 원했기때문"이라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미국생활도 훌륭하게 적응하고 공부도 잘하던 사춘기 딸을 데리고 치열한 입시경쟁의 현장에 돌아온 엄마의 솔직한 심경은 어떨까. 50만 미동부 한인청취자들의 사랑을 받던 로컬방송인으로, 두명의 자녀를 거뜬히 키운 엄마 방송인으로 바삐 지낸 3년여 뉴욕생활의 소회를 들어보았다.
-미국교육을 시키면서 좋았던 점 나빴던 점
"좋았던 점은 널널한 생활. 오후 3시면 수업끝나고 집에 와서 빈둥빈둥, 또는 방과후활동 밴드, 합창단 등등 즐겁게 한것. 나빴던 점이라기 보다 늘 맘에 걸렸던 점들은 미국 가정이나 미국아이들이 당연히 알고 넘어갈 것들을 바보처럼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 싶지만 딱히 엄마가 해줄수 없을 때.
아이가 한 인터뷰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질문이 "집에서 신문보냐? 뉴욕타임스 구독하냐? 레코드지 읽어봤냐?", 한국에서 "집에서 신문보냐?" 과연 이런 질문을 받았을까??? 싶었을때."
-딸 비단이가 다닌 학교는 어떤 곳
"첫해 6학년때 뉴저지 에디슨의 우드로윌슨 중학교였어요. 인도계 중국계 한국계등을 합치면 백인계를 어지간히 견제하는 비율. 최준희시장의 타운이지요.. 한국계가 6퍼센트였던가? 처음 가서 적응하기 아주 좋은 인종 비율의 학교랍니다. 나중에 엄마 직장때문에 이사한 곳이 뉴저지 포트리인데 한국계가 30퍼센트를 육박하는 학교였지요. 다행히 영어를 어느정도 익히고 전학했기때문에 여기에서는 영어 걱정 없이 친구들 사귀는 재미를 듬뿍 가질 수 있었구요."
-비단이 학교에서 에피소드가 있다면
"첫해에는 학교 댄스파티가서 꿔다논 보리짝처럼 서있다 와서 그 다음에 절대로 안간다고 하더니..어느새 댄스파티에서 온몸이 땀에 젖어오는 수준으로..^^"
-문화적 충격..정체성 문제는
"다양성을 경험하고 인정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감사하구요. 인종에 대해, 성적 정체성에 대해, 이민자에 대해,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을 볼줄 알고, 그 차별을 극복할 줄 아는 성숙한 자세를 미국이라는 다문화 사회속에서 체험했다는 것이 앞으로 큰 자산이 되리라고 기대합니다."
-딸이 한국에서 학교다니고 싶다했는데..엄마의 솔직한 마음
"한번 자신의 능력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것이 딸아이의 생각인데..진짜 생각은 한국에 가서 친구들과 같이(자기가 다니던 초등학교 친구들이 진학한 중학교에 가서 같이 )교복입고 다니고 싶다고 하네요. 엄마의 생각은 되도록이면 아이의 생각을 지지해주고 싶고, 아이가 도전의식을 갖는 것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고, 안주하지 않는 것이 기특하고, 내 아이의 성격상 미국 학교에서 마이너러티를 극복하고 리더십을 보이는 것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이상, 한국에서 좀 더 적극적인 학교생활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주변에서 다들 "정신나갔다고" (남들은 다 해외로 나가지 못해 그러는데 한국으로 다시 들어간다고 하니까) 하는 말에 좀 겁도 나고, 학원이며 입시경쟁을 어떻게 감당할까 질리기도 하고, 하지만 그래도 원래 있을 자리는 한국 학교란 생각도 들고..."
-조기유학에 대한 견해는
"만 3년동안 아이가 영어를 비롯해 폭넓은 사고, 다양한 경험 등 얻을 것을 생각하면 조기유학을 지지하고 싶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 사이에 아이가 잃거나 채우지 못한 것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예를 들어 미국에 올때 애지중지 가져온 한국책들 정도의 독서수준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 것...중학교 시기에 한국 아이들이 꼭 읽고 감동받는 한국문학들 부분에서 우리 아이는 이가 빠진 거지요..."
-조기유학을 가야한다면 조언하고 싶은 것
"아이만 보내는 것을 절대로 말리고 싶어요.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지지해줄 사람..부모님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적응하는 기간동안 제가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공부보다, 아이가 기죽지 않을까..친구는 잘 사귈까..카페테리아에서 같이 앉아서 밥먹을 아이들이 있을까..이런 거더라구요."
-미국생활이 만족스러웠는지
"나름 잘 지냈지만, 순간순간 생소한 문화속에서 투쟁의 연속이었지요."
-뉴욕 라디오코리아와의 인연
"아주버님인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가 미국에서 목회(뉴저지 길벗교회)를 하시면서, 뉴욕라디오코리아에서 고정컬럼 방송하셨었지요. 아주버님 소개로 인연을 맺게 됐어요."
-2년간 방송한 '뉴욕포럼'을 소개한다면
"뉴욕포럼의 부제는 뉴욕서울 잇기 입니다. 미국의 이슈중에 한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 한국의 이슈중에 미국생활과 관련있는 것들을 주로 다루는 시사정보프로그램.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되는 사람이니까...아무래도 한국 주제에 익숙하고 미국 주제는 새로 공부할 것이 많다보니 그렇게 걸치기 성격의 방송을 맡게 되었습니다. 매일 오후 5시부터 한시간 동안 방송했지요."
-뉴욕포럼의 특별한 기억
"작년 미국하원 종군위안부결의안 통과를 위해 미국 한인사회가 청원서를 보내고, 의원들을 설득하는데 방송을 통해 나름대로 지원을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일주일에 한번 이상 이 주제를 다뤘는데, 한번은 방송을 듣고 한양마트 사장님이 직접 제게 전화해서 한양마트에서 자비로, 전 직원이 업무외 봉사로 시장보러나오는 고객들에게 청원서를 직접 받아서 의회로 보내는 일을 하겠다고 해서 이 이야기를 방송으로 내보내자, 그 방송을 듣자마자 뉴저지 남부 멀리서 한 청취자가 바로 한양마트로 올라가서 청원서를 썼다고..이렇게 시작된 것이 1만부 이상을 받아낸 성과로 이어졌어요...결의안이 통과되면 한양마트 사장님이 점심을 한번 거하게 쏘시겠다고 했는데..얼굴도 못뵙고 한국에 왔네요."
-잊지못할 초대손님
"뉴욕이었기에 만날수 있었던 세계적인 문화예술가들..화가 강익중, 안트리오, 메트오페라 프리마돈나 홍혜경, 피아니스트 백혜선, 전자거문고연주자 김진희 등등 그리고 이 세계적인 대도시 속에서 경쟁력을 고민하며 치열하게 살고 있는 뉴욕 뉴저지 동포분들이지요."
-어려움이 있었다면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지만..청취자분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불편하신 분들이 있으셨다면...죄송.."
-한국서 잘나가던 방송인으로서 열악한 동포방송국 생활이 불편했을텐데..
"원맨시스템...혼자 구성, 섭외, 원고, 진행, 엔지니어링, 편집..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방송했는데...늘 뒤에서 도와주던 다른 스탭들에게 감사한 생각을 진하게 하게 됐지요. 아..프로그램 클로징때 네임사인을 더 잘 해드릴걸...(지금까지 기술에 누구누구, 구성에 누구누구..) 하지만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서 다 하다보니..능력의 탄력성, 근력 등이 높아진게 아닌가 싶네요."
-라디오코리아 동료들과의 추억
"늘 사고 뭉치인 저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땡큐입니다. 권영대사장님 장미선본부장님..감사드리구요.
특히 방송녹음을 다 해논 '엠디'를 잃어버리고 발을 동동구르는 저를 끌고 쓰레기장에까지 가서 온 건물 전체에서 나온 쓰레기 봉투를 하나하나 다 열고 같이 손으로 쓰레기를 헤집으면서 엠디를 수색해주신 채영인 제작부장님께 감동..또 감동..하지만 결국 그 엠디는 못찾았습니다 흑흑.."
-앞으로의 계획
"혼자 북치고 장단치고 하던 경험을 살려서 미래지향적인 개인방송국을 한번 만들어볼까나...싶기도 하고..벌써부터 그리워질 맛있는 뉴욕의 베이글집을 서울에 하나 내볼까..싶기도 하고..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 방송하자고 불러주면 위에 두가지 계획은 바로 까먹을 거라는 것...으?X으?X 모여서 프로그램 만들어내는 재미, 방송마치고 같이 소주한잔 기울이는 재미만한게 없으니 말이지요.."
-끝으로 한두가지 생각을 더한다면
"재외국민 참정권회복...이 주제도 참 열심히 방송에서 했었는데..결국 정치의 계절에 바람타고 왔다가 가버리는 모습을 뉴욕에서 아주 생생히 봤습니다. 앞으로 방송이든 무엇이든, 일을 하면서 사안을 보는 시각에서...이번 동포방송국의 경험은 제게 특별한 경험으로 남을 거 같습니다. 한국어정규과목채택추진위원회...이 주제도 제가 종군위안부결의안때처럼 사명감을 갖고 방송에서 끝까지 도움을 드릴 생각을 했었는데..중간에 하다가 그냥 왔네요. 동포사회가 한국정부의 지원만 바라보지 않고 주도적으로 자존심을 살려 일을 해낼 수 있었으면..좋겠다..그래서 한국사회가 아이쿠..미안해라..하면서 뒤늦게라도 달려들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입니다."
노창현특파원 rob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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