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을 꿈꾸다, 일러스트레이터 현경업
[쇼핑저널 버즈]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창조한다는 것, 아마도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작은 소망이 아닐까 싶다. 늘 상상치 못한 새로운 세상이 가득한 이미지들은 보는 이들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선물한다. 그 중에서도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우리에게 소중한 '선물'을 선사하는 작가 현경업 씨를 만나, 그의 지난 발자취와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요지난 해 12월 31일자로 퇴사하면서 현재는 휴식기간을 갖고 있습니다. 회사생활 10년 차를 넘기는 동안,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던 지라 이번 기회에 쉬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하려 합니다. 회사에 있는 동안 디렉팅 직을 수행했는데, 자연스레 관리 파트도 조금씩 알게 되었죠. 콘셉트 분야의 A.D를 맡아서 개인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순리이자 절차라고들 하는데 일러스트레이터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면요?처음엔 작업자로 출발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모두들 관리자로 돌아섭니다. 시스템상 어쩌면 당연한 구조이고, 점점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허용되질 않죠. 그렇다 보면 자연스레 시스템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포트폴리오 구성은 힘들어집니다. 자기 작품을 만드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거죠. 스스로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진다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거나 회사에서 작업 파트의 일을 많이 하려고 했습니다.
10년여의 회사 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회사는 내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방향성이나 개인적 바람을 충족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 점을 확실히 인지해야 해요. 회사에서 원하는 것은 하되, 대신 남는 시간만큼은 나의 생각,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을 추진하라는 얘기죠.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방향성을 유지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되고요. 작업자들은 본인의 꿈을 회사의 작업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바른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여가 시간을 취미 활동으로 소비하곤 하는데 그럴 경우 회사에서의 자신의 콘셉트나 생각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회사 업무와 개인 작업물을 별도로 진행하라고 조언하고 싶네요.
개인 작업을 언급하였는데, 구체적인 작업 계획을 세우는지요?보통 1년 단위로 계획을 세워 진행합니다. 작품 수는 10개로 잡고요. 그런데 지난 해는 8개라 조금 모자라네요. 점수로 매기면 80점 정도 될까요. 올해도 목표는 10개입니다.

2D와 3D 중 어느 쪽에 관심이 많은지요.오랫동안 고민을 해왔던 부분인데요. 다른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2D와 3D사이에서의 갈등, "3D 다자이너가 굳이 2D 일러스트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 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데요, 제가 해야 할 분야나 차이점을 머릿속에서 고민만 하다 보니 답이 보이질 않더군요. 그래서 '2D 콘셉트 파트에서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기초부터 하나씩 배워갔죠. 이 때부터 2D 콘셉트 일을 시작하게 됐고요.
예전에는 2D와 3D는 다르다는 개념을 가졌는데, 5, 6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던 것이 최근 들어 '2D와 3D는 다를 수도, 같을 수도 있다'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차이점을 찾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2D와 3D가 유기적으로 결합됐을 때 하나가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거든요.
왜냐하면 3D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회사에서 3D 작업만 하기에 어느 샌가 자기의 생각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일의 공정상 원화를 바탕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개인 작업을 하더라도 다른 이의 콘셉트를 참고해야만 비로소 작업이 가능한 마인드가 자신도 모르게 형성돼 버리죠. 2D 작업자는 작업 과정에서 의도한 대로 결과물을 만들고는 싶으나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는 '3D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많이 들죠. 제가 3D 디자이너와 2D 디자이너를 바라보는 입장을 동일시할 때 '두 개의 매개체를 합치면 내가 생각한 방향성이나 원하는 질적인 부분들까지도 조금 더 충족시킬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차피 도구는 상관 없습니다. 본인이 생각한 바를 표현할 수 있으면 되니까요. 컴퓨터는 원하는 것을 표현해내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언제부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했나요?1996년입니다. 3D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제대 전 짬을 내어 서점에 들렀는데, 우연히 3D 맥스 관련 영문 서적을 접하면서부터죠. 이런 세계도 있구나 싶더군요. 학교에선 선배들이 3D 스튜디오 R4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인테리어 작업을 했는데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선배들 틈에 끼어 배우며, 인테리어 쪽 일을 시작했죠. 그러던 중 게임을 굉장히 좋아하는 후배와 함께 자취를 했는데, 게임 동영상 캐릭터가 너무 멋있더군요. 밤새도록 같은 게임 동영상을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보았죠. 이를 계기로 생명력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생명을 부여하는 캐릭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후로 쭉 게임 회사에서 근무하신 건가요?99년 판타그램의 <킹덤언더파이어>가 출시되기 전, 동영상 작업을 하다가 졸업도 해야 하고 시간적 여유가 없어 마무리를 못하고 퇴사하였습니다. 졸업 작품을 끝내고는 DDS에서 <런딤>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요. 주로 캐릭터 쪽을 작업했습니다. 회사 작업은 애니메이션 쪽을 오래했어요. 모델링과 리깅, 애니메이션 작업까지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일러스트 이미지 작업에 조금씩 욕심이 생기더군요. 회사 행화 5~6년차쯤 되니 애니메이터와 일러스트레이터 중 내가 갈 길을 정해야 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고심 끝에 일러스트 분야로 별정을 하고, X2film을 마지막으로 애니메이션 작업은 접었습니다. 회사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 게임 쪽으로 할 생각입니다.
게임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면요?예전에는 게임 제작의 경우 로우 폴리곤 작업들이 주를 이뤄 만족도가 적었다면, 요즘은 노멀맵을 이용한 하이 퀄리티 작업들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일러스트와의 데이터 차이가 없죠. 저는 게임은 무한한 상상력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직업적으로는 게임으로 갈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일러스트 작업은 계속 할 계획이고요.

어린 친구들이 게임 쪽으로 몰려드는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요.예전에는 게임이나 3D 분야에 도전하려는 연련과 성별을 보면 대부분 남성이었습니다. 여성들은 조금 꺼려하는 편이었죠. 그런데 요즘은 여성의 비율이 높아졌고 게임 분야를 선호하더군요. 연령층도 다양해 중학생, 초등학생들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연령층이 낮아지고 성별의 제한이 없어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 같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데는 성별의 제약이 없잖아요. 어린이들도 그리며 즐기고요. 그런 것처럼 이제 3D도 거부감 없이 특별한 계층이 아닌 모두가 즐기고 심지어 유치원생도 가지고 놀 수 있는 '낙서장' 같은 그런 개면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 지난해 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출강을 했는데요, 25명 수강자 중 5~6명을 제외한 대부분이 여학생들이었습니다. 모두 3D에 관심이 높고 습득력도 빨랐습니다. 프로그램에 디자이너의 편의가 반영돼 만들어지기에 거부감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보수나 근무 환경이 개선된 것도 이유가 되겠죠. 게임 분야도 물론 좋아지고 있습니다. 이 분야가 성별과 연령에 상관없이 실력 위주이므로 많이들 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포트폴리오가 좋으면 누구에게나 기외의 문은 열려 있기에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계속 이어질 것 같네요.
최근 게임 분야의 분위기가 좋지 않음에도 대학을 비롯한 여러 기관이 게임으로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디자인 분야의 경우 대우가 좋고 멋기게 보여서 몰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었으면 해요. 회사이서 요구하는 인재는 신입이 아닌 '경력자다운 신입'입니다. 포트폴리오가 어느 정도 갖춰진 신입 사원을 원하기에 많은 것을 공부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해외에서의 제의는 없었나요?매년 스카우트 제안은 받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굳이 외국으로 배우러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러스트로 전향한 시기에 이런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일러스트는 자기와의 싸움이고, 배우려 한다면 얼마든지 국내서도 배울 수 있으니까요. 일러스트는 철저하게 자기와의 싸움이에요. 프로젝트로 인해 잠시 나갈 수는 있겠지만, 해외에 정착하고 싶은 생각은 현재로선 없습니다.
근무 조건 등 작업 환경 때문에 해외진출을 생각하지는 않았는지요.외국은 보수나 아티스트로서의 대우가 훨씬 좋다고들 하죠. 그러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의 나의 위치는 작품을 만들어가며 배우는 단계인데, 의사소통이나 타국에서의 외로움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예 작업 자체가 힘들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하고요. 그래서 도박을 했죠.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더군요. 나의 선택은 한국에서 배우며, 나만의 기준을 쌓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출중한 실력을 갖춘 이들이 많은데,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는지요.예전에는 그 같은 친구들을 접하면'몇 년간 더 실력을 쌓으면 엄청나게 발전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죠. 본인들도 마찬가지일거고요. 그러나 그 상태로 현실에 안주한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고 오만입니다. 주위의 부러움과 칭찬으로 자만에 빠진다면 금세 남들에게 뒤처지게 됩니다. 실력이란 나이가 듦에 따라 한 단계 한 단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노력하는 만큼 쌓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랐을 땐 그 이상 오르기가 정말 힘듭니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니 진정한 싸움은 이때부터라는 생각을 항상 되새기길 바랍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이들을 접하기도 했을 텐데요.일하다 보면 간혹 접하게 되는 부분이죠. 본인의 현재 생활에 만족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현재의 회사 생활을 유지하며, 이 정도의 보수를 받으면 된다. 이 이상 바랄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 같은 경우 보통 "굳이 주말까지 출근해 버텍스를 당길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과 동시에 "올해는 한두 작품 정도는 해야지"라는 생각들을 합니다. 하지만 정작 결과물을 내는 사람은 별로 없죠. 그냥 그런 생활에 만족해버리는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 여관에서 마녀가 사람들의 이름을 잊게 하잖아요. 그 경우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입사 할 당시에는 이 일이 좋아서 시작했고, 목표치가 있었는데 어느 샌가 그 생활에 만족하다 보니 본인이 좋아했던 것, 앞으로의 목표들이 사라져 버린 거죠. 회사는 업무 특성과 효율을 위해 분업화가 돼 있습니다. 우리들은 창조하고 만들어내는 사람인데 마치 생각하는 사람 따로, 만드는 사람 따로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듯 시스템에 익숙해져 버립니다. 개인 작업을 하려고 생각은 하지만, 고통이 따르고 엄두가 안 나서 본인 작품을 내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이죠.
갈등의 시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작품을 진행할 때마다 매번 겪는 부분입니다. 작품 진행 과정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고통스럽지만 그런 고통마저 즐길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나쁘게 보자면 회사가 아티스트를 엔지니어화 하는 것 같은데요.회사는 수익 발생을 위한 조직이기는 하나, 목적 이상의 작업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목표 이상의 것을 성취한다면 해당 작업자는 정말 행운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상과 목표는 따로 시간을 들여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평일은 30분~1시간 정도 아침 저녁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고, 주말에는 몇 시간 정도를 할애합니다.
굳이 본인의 포지션 외에 다른 일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바로 그 같이 안일한 생각이 문제입니다. 물론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고 바란다면 상관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할말은 없죠. 다만 제 생각이나 얘기를 듣고 싶다면, 제가 가는 방향에 대해 한 마디 할 수 있겠네요. 저는 3D 디자이너이지만 콘셉트를 정해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콘셉트 부분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어요. 콘셉트보다는 본인의 3D 작업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그 쪽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죠.
그러나 콘셉트 작업을 병행하는 이들의 작품은 자료를 모으고 러프 스케치, 콘셉트 스케치 과정이 3D 디자이너의 작업 시간만큼 노력을 들인 결과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제가 가는 방향은 일러스트이고, 일러스트는 콘셉트 부분까지 포함하죠. 물론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니까 오해는 말았으면 합니다.
어떤 일러스트를 그리고 싶은가요.영화 <복면달호>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너는 어떤 음악을 하고 싶으냐?" 스스로에게도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데요. 제가 원하는 것은 "남들이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나'만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지는 않아요. 다른 사람들이 제 그림을 좋아해주면 굉장히 행복하거든요.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며 어떤 느낌을 표출하면 좀 더 작업이 즐거워지죠. 물론 방향성이 흔들려서는 안 되고요. 저만의 생각을 갖고 기준이 흔들리지 않는 범위에서 사람들이 좋아하고, 나 스스로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작품 중 유독 여성 캐릭터가 많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여성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진행한 것은 여성의 표현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남성도 가끔 소재로 활용하는데, 인체라는 것이 참 묘해서 하나로 통하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즉, 여자를 그리다 보면 남자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이치랄까요. 여자 캐릭터를 그리면 많이들 좋아하는 것 같고, 나 스스로도 재미있고 배울 점이 많습니다. 올해는 남자 캐릭터도 제작할 예정입니다.
흑마법사도 연작 중 하나인가요?2007년은 워리어 쪽으로 콘셉트를 잡았다면, 이번에는 약간 방향을 틀어 마법 쪽으로 정했습니다. 올해는 판타지 쪽으로 많이 작업할 것 같네요.


작업 중 받는 스트레스는 없는지요엄청나죠. 그래서인지 작품을 끝내고 나면 며칠 동안 몸이 아파요. 평소 체력관리를 하는 데도 많이 아픕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왜 하느냐"고 스스로에게 묻곤 하지만 다음날 일어나면 다시 마우스를 잡아요. 이 일이 예전엔 몰랐는데 엄청난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무언가 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가 숨겨져 있는 듯한 기분도 들고요. 앞으로 계속 찾아 나가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그걸 찾기 위해선 무조건 하는 수밖에 없죠.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고요. 10년, 20년 해서도 안 되고 한 30, 40년 후 죽을 때쯤에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작품이라는 것이 천년 정도는 해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갖고 있는 생명으로는 이제 조금 아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죽을 때쯤 조금 아는 정도라도 만족할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선 계속 나아가야죠. 잠시라도 멈춘다면 그것마저도 못 찾을 것 같아요. 겨우 10년 정도 했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하면 할수록 모르는 분야가 이 분야이고, 하면 할수록 한없이 작아지는 분야가 이 분야인 것 같습니다.
여가 시간 활용은 어떻게 하시는지요.오래 앉아 있는 직업이다 보니 돌아다니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동네 시장 골목 골목을 다니며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고요. 먹거리를 찾아 다니거나, 여행도 좋아합니다. 서울에 10년 정도 살다 보니 문득 서울은 '놀이 동산'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혹자들은 지옥 같다고 말하지만, 조금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참 재미있는 곳입니다. 놀이동산들은 저마다 테마들이 있는데, 서울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강동, 강서, 강남, 강북 색깔이 다 다르거든요. 아, 그리고 등산도 좋아합니다. 북한산이나 도봉산은 매년 두 번 이상은 가죠. 작업을 하다 보면, 본인의 의지나 뜻만으론 나아갈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산에 오르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도 하고, 정신적인 휴식으로도 그만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한번쯤은 고삐를 늦춰볼까 생각해 본 적은 없나요?지금이 고삐를 느슨하게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휴식기입니다. 너무 힘들어 포기 직전까지 가보지만 포기를 해버리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포기할까 라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닌데, 다른 일에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할 것 같더군요. 그리고 포기하자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 때를 극복하면 고향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면서 편안합니다. 전에는 슬럼프 같은 걸 느끼지 말아야지 했는데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느끼니까 이제는 그러려니 하면서 즐깁니다. 그리고 등산 등 취미활동을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저절로 몸이 작업하자고 조르더군요.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해결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 '현경업'의 꿈은 무엇인지요.예전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타샤 튜더'라는 94세의 할머니 작가가 주인공인데요. <소공녀> 등의 동화 일러스트를 그린 할머니의 일상은 화초를 돌보며 손주들과 차 한 잔 마시면서 편안하게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저녁 무렵에서야 돋보기 안경을 끼고 그림을 그리고요. 그 할머니는 작업을 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할머니에게 있어선 이미 일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된 거죠. 차를 마시고 화초를 돌보는 것처럼요. 저도 일이 밥 먹듯이, 숨 쉬듯이, 산책하듯이 자연스럽게 제 삶에 스며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업량을 조금 줄이면 고통이 덜하지 않을까요?그렇긴 하죠. 그런데 그나마 줄인 것이 10개입니다. 일상이 나와의 싸움인 것 같아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고통이 줄어든 것 같고 어느 샌가 즐기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튜더 할머니처럼 일상생활이 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가로서의 목표와 비전이 있다면요.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남들이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보고 싶다"는 것이 목표이고 그것을 추구하려 합니다. 작품의 성향이나 주제 등은 매년 초에 정하므로 다를 것은 없고요, 타샤 튜더 할머니처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그 안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정답인 것 같아요. 돈에 대한 욕심보다는 화목한 가정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거 하나면 충분합니다.
마지막으로 씨지랜드 독자에게 한마디 해주세요.개인적으로 2008년은 꾸준히 작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힘들지만 자기만의 작품을 한두 개 정도 꼭 만들어 보길 바랍니다. 쉽지 않겠지만 욕심을 버리고 한 작품이라도 만들어보세요. 작업자 사이에는 작업을 주제로 공감대가 형성되니까요. 멈추지 말고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긴 말이 필요 없을 것 같다." 행복은 물질이 아닌 마음으로 채워진다"는 말처럼 현경업, 그가 마음으로 채워나갈 작품들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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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내 월간 CGLAND 기자(sabi6@cgla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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