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창종자들]강증산, 한국적 구세주로의 열망



증산교 강증산②
자신을 미륵불로 지칭… 한국 종교사상 최초의 사건
한국 종교사에서 증산 강일순은 독창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국의 종교는 증산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2000년 이상 지속되어온 이 땅의 종교적 흐름은 그로 말미암아 아주 새로운 경지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김종서 교수는 한국 종교사에서 증산이 준 충격을 이렇게 설명했다. "수운 최제우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강증산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천명했습니다. 한국 종교사상 최초의 사건입니다. 그 이전에는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각성이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가르침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신임을 선언하다
강증산이 스스로 신임을 선언한 종교적 자신감은 가깝게는 원불교부터 통일교까지 이후 한국에서 태어난 종교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창종자가 스스로 신이거나 신성의 현현임을 밝힌 시초가 그에게 시작됐다.
흔들리는 세상에서 더 이상 신을 찾아 헤매지 않고 자신이 신임을 깨우친 이가 강증산이다. 한국종교학회의 김탁 박사는 증산이 펼친 종교적 행위는 스스로 하늘임을 알고 나서야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학을 일으킨 수운 최제우는 하늘과의 대화를 체험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후천개벽의 새세상이 올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증산의 가르침은 예언에 그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늘이며 우주 최고의 주재자이므로 후천개벽으로 새세상을 만들 계획을 세워두었다고 밝혔습니다."
신은 더 이상 세상의 저편에서 드러나지 않는 뜻을 통해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고통 속에서 그 고난을 구제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이다. 증산계통의 종교에서 강증산을 하늘님인 상제(上帝)라고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증산에 이르러 신은 대행자를 통하지 않고 이 땅의 역사에 직접 개입한다. 그는 자신이 신이며 동시에 세상을 구제하는 미륵불(彌勒佛)임을 주장했다. 증산의 행장과 가르침을 담은 대순전경(大巡典經)에는 하늘에 있던 그가 이 땅에 오게 된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서천서역대법국천계탑(西天西域大法國天階塔)에 내려와서 삼계를 둘러보고 천하에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彌勒金像)에 임(臨)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大道)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 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년에 스스로 세상에 내려왔노라." 금산사 미륵불에 30년을 머물다 세상에 왔다는 것이다.
대순전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그의 모습조차 '얼굴이 원만(圓滿)하사 금산미륵불(金山彌勒佛)과 흡사하시며 양미간(兩眉間)에 불표(佛表)가 있으시다'하여 금산사 미륵불과 같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미륵신앙은 동아시아의 역사에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왕조에 의해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변용되는 경우도 있었고 사회변혁을 바라는 민중의 혁명이념으로 내세울 때도 있었다. 원나라의 국운이 쇠잔해갈 때 중국의 민중들은 미륵을 신앙하는 백련교를 만들어 홍건적의 난을 일으켜 새 세상을 갈망했다. 신라가 망해갈 때 궁예는 자신이 미륵임을 주장하며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선다.
강증산이 평생을 보낸 향토는 미륵신앙의 중심지였다. 백제시대 익산 미륵사는 국가 신앙의 중심이었고 통일신라 이후 진표율사가 창건한 모악산 금산사는 지금까지 미륵신앙의 근본 도량이 되고 있다. 금산사로 가는 길목인 구리골에서 약방을 차리고 그는 세상을 향해 무극대도의 가르침을 폈던 것이다.
원불교·통일교 등에 깊은 인상줘
도솔천에서 자비심으로 수행하는 미륵보살은 부처가 되어 이 땅에 온다. 그 시절이 되면 세상의 모든 고통과 고난은 사라지고 억압에서 풀려나 모든 이가 구원된다. 그것이 미륵신앙의 근본이다. 그때 미륵불과 함께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는 이상적인 지도자가 세상을 이끌어 풍요와 평화가 넘치는 세상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대진대학교 종교문화학부의 윤재근 교수는 강증산이 미륵을 주창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부 민중들이 미래를 바라는 종교적인 마음은 미륵신앙에 배어 있습니다. 강증산은 우리 사회의 혼란과 고통을 끝내고 안정시키려는 열망을 갖고 있었고 한국적인 구세주로서 미륵불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미륵(彌勒, Maitreya)이란 명칭의 어원은 '모두를 사랑으로 대하는 이'라는 의미다. 부처가 되기 전의 미륵보살은 일체를 연민으로 대하는 자비심을 수행한다. 그러기에 옛 역경사들은 미륵보살을 '자비를 이름으로 삼는다'는 자씨보살(慈氏菩薩)로 의역했다. 미륵불이야말로 시대의 아픔 속에서 민중을 사랑하는 종교적 구세주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신으로서, 상제로서, 미륵불로서 이 땅에 온 증산은 세상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펼쳤다고 했다. 공사는 강증산의 독창적인 종교행위다. 여러 공사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천지공사다.
대순전경에는 강증산이 공사를 펼치는 뜻을 적고 있다. "내가 하늘과 땅과 인간세상의 대권(大權)을 주재(主宰)하여 천지를 개벽하며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고 조화정부를 열어 재겁(災劫)에 싸인 신명(神明)과 민중(民衆)을 건지려 한다." 천지를 개벽하고 재난 속의 민중뿐 아니라 신명까지도 건질 수 있다. 세상의 신들마저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절대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공사란 후천 세계의 질서를 재편하는 창조주의 행위인 것이다.
"수운 최제우의 가르침은 하늘님을 모시는 '시천주(侍天主)'입니다. 신의 힘에 의지합니다. 그러나 강증산의 공사는 자신이 천주(天主)인 하늘님이라는 자각에서 비롯돼 능동적으로 세상을 개벽합니다.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천지공사이며 이를 통해 종교적 이상세계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고 가르쳤습니다." 대진대학교 윤재근 교수의 설명이다.
강증산은 당대의 현실을 원(寃)으로 가득한 세상이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지배구조 때문에 원망과 원한이 쌓일 수밖에 없으니 해원(解寃)으로 원을 풀어주려면 천지공사만이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이상세계는 단순히 기다리면 오는 세상이 아니었다. 세상이 그릇되기 시작한 근원까지 돌아가 원한을 풀어주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도수를 정해놓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적극적인 실천이 따라야 했다. 그래서 펼친 것이 천지공사였다.
강증산은 "마음이 깨끗해야 복이 이른다"고 했다. 그가 대중에게 제시한 종교적인 수행법은 '마음을 닦으라'는 포괄적인 지침이었다. 외부보다 내면의 종교체험을 강조한 것이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윤이흠 명예교수는 이 같은 가르침이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라고 지적한다. "강증산은 동학혁명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종교를 조직했습니다. 동학이 외형적이고 대사회적인 가르침을 펼쳤지만 실패하는 것을 보았기에 내형적인 종교 경험을 주목했습니다." 사람들을 향해 늘 "마음을 부지런히 하라. 정심으로 나를 따르라"고 강조했던 것이 그의 가르침이다. 도통진경(道通眞境)이라는 지상천국에 이르기 위해 마음 수련을 권했다.
약국을 만들고 직접 약을 지었다
증산은 세상에서 원이 가득 찬 이들에게 다가서서 종교를 펼쳤던 이다. 복잡한 교리로 가르침을 포장하기보다 약국을 만들고 직접 약을 지어 병을 고치려 했다. 때로는 주문 외는 것을 가르쳤고 부적을 쓰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강요하기보다 마음을 닦으면 누구나 도통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세상의 개벽을 미리 짜 두었으니 진심으로 마음을 닦아 올바른 생각을 되찾자고 말했다.
양반의 후예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된 동학과 대비해 강증산을 따르던 이들의 신분적인 특성은 달랐다. 그는 늘 배우지 못하고 세상의 낮은 곳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에게 다가섰다. 그것이 마음 수련이라는 포괄적인 수행법을 펼치게 된 밑바당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진대학교 윤재근 교수는 신분적 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증산을 따르던 이들은 무당이나 서얼 등 신분상 하부구조의 사람이 많았습니다. 백성들의 문맹률이 높았던 점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다가서서 종교적인 수행법을 쉽게 전하기 위해 마음을 닦으라는 광범위한 표현을 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세상은 곳곳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국가와 지배체제가 분열되고 신분이 역전되며 민족의 정체성이 위협받았다. 필요한 것은 화합하는 세상이며 그것이 이루어진 것이 '상생(相生)'의 세상이다.
증산이 꿈꾸어 비춘 것은 사람이 근본이 되고 존귀해지는 '인존(人尊)'의 지상천국. 고통과 슬픔이 없는 세상이다. 강증산은 이미 5만 년의 무극대도를 설계해놓았으니 그것이 천지공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후천개벽의 세상이 열렸다고 했다. 그러니 모두가 마음을 닦으라고 권했다. 이상세계에 이르기란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그다지 어렵지도 않으니 오직 마음을 닦으면 누구나 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지금 이 순간도 그 꿈이 이루어지는 후천의 개벽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김천<객원기자>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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