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플라톤 전집' 도전 전응주 EjB 대표


"이젠 칸트 전집 정도는 완역돼 있어야"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왜 철학과를 선택했냐구요? 졸업하기 쉬울 것 같아서였습니다. 대충놀고 먹어도 졸업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한데 그것이 업보가 되었는지 여기까지 왔습니다."
2001년 회사 창립 이후 주변에서 모두가 뜯어 말린 철학서적만을, 그것도 플라톤이니 아리스토텔레스니 하는 서양철학 거장들의 '원전'만을 우악스럽게 고집하는 도서출판 이제이북스(EjB) 전응주(50) 대표의 말이다.
"'철학책만 해서는 쪽박찬다'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이골이 났습니다. 그 말이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저 자신부터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출판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과학책과 철학책 두 종류로 시작했는데, 정말 무슨 인연인지 지금 내는 책 대부분은 철학쪽입니다."
부산 태생인 그는 부산고(30회)를 나와 서강대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학위를 마치고, 한때는 서양 철학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 제대로 공부를 하겠다며 영국과 독일로 갔다가 2년만에 '절망'하고 귀국했다.
"제 나름으로는 한국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한다고 했는데도, 그쪽(유럽)에 가서 보니 우리 공부는 공부가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방황하다가 돌아와 밥장사, 옷장사를 하다가 거기에서 조금 모은 돈으로 출판사를 시작했습니다."
서양철학 원전을 고집하는 전 대표가 겪는 곤란은 무엇보다 그의 출판업이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책을 안 사 본다고 난리인데, 철학책이니 오죽하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우리 이제이북스가 시도한 플라톤 전집 있지 않습니까? 이번 '메넥세소스'와 '에우튀데모스'까지 6종이 나왔고, 그 모두가 국내 초역이라 내심으로는 (출간) 1년 안에는 초판 발간부수(2천부)는 소화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기대는 무너졌습니다."
이 때문인지 오랫동안 같이 일 할 수 있는 편집자를 구하는 것도 여간 힘들지 않다고 토로한다.
"얼마 전 편집자 2명이 우리도 좀 더 대중성 있는 책을 내자고 하더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 책이라면 다른 출판사에 가서 해 보는 게 낫다고 말입니다. 결국 그들은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왜 그는 서양철학을 고집할까?
"우리 철학계에서 말로는 그럽니다. 서양철학 도입 1세기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런 나라라면 플라톤 전집, 아리스토텔레스 전집, 칸트 전집, 헤겔 전집 정도는 완역돼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얼마 전 '책세상'에서 내놓은 니체 전집이 국내에 완역된 유일한 서양 저명철학자 전집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서양고대 철학 모임인 '정암학당'과 손잡고 지난해 발간을 시작한 '플라톤 전집'에 애착을 갖고 총력을 쏟고 있다고 한다.
"플라톤이니 국가론이니 대화편이니 하는 말만큼은 누구나 들어봤을 것입니다. 최근 들어 고대 그리스어 원전에 토대를 둔 주목할 만한 번역서들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젠 전집이 나와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양 고전철학 원전 출간에서 그가 가장 역점을 두는 대목은 철저한 '원전 옮기기'.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겠지만 저 또한 학부에서 데카르트 저작을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어 번역본을 읽었더니, 제 짧은 영어실력에도 어느 정도 내용이 이해되더군요. 물론 우리 출판사에서 내는 원전 번역서가 지나치게 원전에 충실하기 때문에 제가 봐도 한국어 표현이 어색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업적을 토대로 후세에 좀 더 나은 번역이 나올 밑거름이 될 것이라면 그것으로도 만족합니다."
국내 서양철학 번역서의 고질인 일본어 번역본, 영어 번역본의 중역만큼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플라톤 전집은 각주가 매우 많고 그러한 각주 대부분이 고대 그리스 원전 단어의 미묘함을 부연설명하는 데 집중된다.
"소개하고 싶은 원전은 부지기수지만 이를 소화할 만한 인력 풀이 국내 학계에서는 구축돼 있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원전을 제대로 옮기고 번역하려면 몇 년이 걸리기 일쑤입니다. 그렇지만 고대 희랍어나 라틴어 실력을 갖춘 젊은 연구자가 이전보다는 많아졌습니다."
원전 번역을 고집하는 그에게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시행하는 동서양고전명저 번역사업은 상당한 타격을 준다.
"그 사업 자체에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번역대상 작품이나 번역자 선정의 공정성에 의심을 살 만한 구석이 많고, 무엇보다 국민세금을 지원받아 나온 번역서 수준이 문제입니다. 저희 출판사에서 연구자들에게 특정 원전 번역을 의뢰하면 대부분이 '일단 학진(학술진흥재단)에 지원을 신청해 보고 안 되면 그 때 가서 해 보자'는 반응을 보입니다. 사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힘이 빠지지요."
그럼에도 적지 않은 보람도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서양철학의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완역해 냈습니다. 역자인 김진성 선생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완성한 역작입니다. 그 책을 보았다는 어떤 독자가 저희 회사로 전화를 주셔서 '형이상학을 한국어 번역본으로 볼 날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서양철학 원전 소개에 주력하겠다고 전 대표는 강조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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