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선의 풋볼인사이드] 설기현의 3천 원짜리 축구화

2008. 1. 25. 19: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성공한 축구 스타들이 풍족한 환경에서 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별로 없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성장기에 제때 체력 보충을 못했다거나, 고가 장비 중 하나인 축구화를 제대로 구비하지 못해 애를 먹었던 사연 하나 정도는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힘겨웠던 가족사가 알려진 설기현 역시 그랬다. 당시 그 또래 축구 선수들이 대략 3만 원 정도 하는 축구화로 공을 차기 시작했을 즈음, 그는 동네 신발 가게에서 이름없는 3,000원짜리 축구화를 사 신었다고 한다. 축구를 처음 시작한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하지만 그의 첫 축구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축구화 전문 판매점도 아닌 동네 신발 가게에서 팔던 축구화였던 지라, 첫 훈련 때 신발끈을 묶는 과정에서 축구화의 '혀' 부분이 확 뽑혀버렸다고. 엉터리 제품으로 인해 설렘으로 가득한 첫 축구화의 경험은 엉망이 돼 버렸다.

지난 13일 매거진 기획의 일환이었던 '스타들의 축구화' 때문에 잠시 미니 인터뷰에 응한 설기현은, 당시 '짜릿한' 첫 축구화 경험을 당황스러웠지만 유쾌한 사건으로 기억했다. "그래도 기분은 무지 좋았어요. 처음으로 축구화를 신었으니까요." 사실 의외의 대답이었다. 당시 그가 고작 10살에 불과했던 걸 상기한다면, 엄마에게 화를 내거나 자신의 처지를 원망스러워하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 깊은 '꼬마' 설기현은 오히려 축구화를 신을 수 있는 것을 감사해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설기현이 세계 최고의 무대를 누비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000원짜리 축구화든, 3만 원짜리 축구화든, 30만 원짜리 축구화든 성공의 크기가 축구화 가격에 비례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지금껏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돈 걱정 안 해봤을 카카보다, 오로지 자신의 노력으로 현재의 위치를 일구어낸 설기현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마 점차 빈부가 고착화되고, 인생의 '패자부활전'조차 없어져버리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 탓이리라.

그래서,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이제는 한껏 여유로워진 설기현이 그 옛날을 되새기며 잠시 잠깐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2008년에도 승승장구하길 바란다. 그를 희망의 근거로 바라보는 이들 모두의 바람을 안고 말이다.

글 이민선 (스포탈코리아 기자, <포포투> 한국판 에디터)

사진설명=이름없는 3천 원짜리 축구화로 축구를 시작한 설기현 ⓒGettyImages멀티비츠/나비뉴스/스포탈코리아

깊이가 다른 축구전문 뉴스 스포탈 코리아(Copyright ⓒ 스포탈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스포탈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