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칸〉[대한민국을 빛낸 올림픽 영웅들](8)04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金 문대성

2007. 12. 24.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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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순간에

패한 이를 돌아보는

겸손한 마음

'태권 신사' 문대성의

진면목입니다

전광석화 같은 왼발 뒤후리기. 메트에 고꾸러지는 거구의 그리스 선수…. 문대성 선수가 2004년 8월 30일(현지시간)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남자 80㎏ 이상 체급에서 금메달을 따던 순간이다. 이도 잠시, TV화면에는 문선수의 진면목이 돋보이는 장면이 속속 방송됐다. 승리를 자축하던 문선수가 상대 선수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문선수를 연호했고, 태권도와 태극기는 더욱 빛을 발했다. 올림픽이 끝난 뒤 문선수는 그리스 기자협회로부터 '2004 아테네올림픽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부끄러워요. 이겼다고 좋아하기 전에 (알렉산드로스) 니콜라이디스의 상태부터 확인하고 부축했어야 했는데…."

동아대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가 된 문선수는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까지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1996년 아시아선수권대회와 200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료들과 달리 예선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는 부상도 당했다. 시드니올림픽 선발전에서 2위를 차지한 뒤 3위를 한 선수에게 출전자격을 내주고 말았다. 부모님과 큰누나의 발병 등 집안의 우환까지 겹치면서 운동을 포기하고 도피를 하기도 했다.

문선수는 올림픽 이후 은퇴, 동아대학교에서 감독과 교수로 후진을 양성해 왔다. 끈기와 오기를 심어주고, 나아가 일기를 쓰고 매일 신문을 보라는 등 전인교육에 열정을 쏟아 왔다. 2년 8개월의 공백을 깨고 지난 6월에는 선수로 복귀했다.

"국제대회에서 후배들이 지는 게 안타까웠어요. 다시 도전하는 것이 나와 한국 태권도에 의미있는 일이라고, 후배들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맞더라도 재밌는 경기를 하겠다'던 그는 지난 8월 전국대회에서 4강에 올라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출전 자격을 얻었다. 요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꾸준히 개인훈련도 하고 있다. 올 겨울 학생들과 함께 하는 합숙을 통해 체력·전술 훈련을 할 예정이다.

올림픽 연습 파트너들의 아픔 등 태권도인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의 꿈은 원대하다. 지난 5월 세계태권도연맹 집행위원이 된 그는 IOC 선수위원에 도전, 스포츠 외교에 헌신할 참이다. 올림픽 2연패와 선수 복지, 태권도 발전과 스포츠 외교에 앞장서겠다는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글 배장수 선임기자·사진 이석우 기자cameo@kyunghyang.com〉

- 문대성은 -

1976년 9월 3일 인천 출생. 4녀3남의 장남

1987년 구월초등학교 5년 태권도 입문

1996년 동아대학교 2년 국가대표

1999년 에드먼트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4년 8월 아테네올림픽 남자 80㎏이상 금메달

2004년 12월 은퇴

2005년 동아대학교 감독

2006년~ 현재 동아대학교 감독·교수

2006년 국민대 박사

2007년 5월 세계태권도연맹 집행위원

2007년 6월 선수 복귀

2007년 11월 IOC 선수위원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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