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칸〉14년 선수생활 접는 주형광, 롯데 안떠나려 마운드 떠납니다

14년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원래 진지하고 과묵한 그의 얼굴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다소 무거워보였다. 차분히 입을 뗐다. "왜 아쉽지 않겠습니까. 부산에서 나고 자랐고, 롯데에서만 14년입니다. 야구를 계속하겠다면 혹시 다른 팀에서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지요. 그런데 롯데가 아닌 다른 팀에서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롯데니까 더 미련이 남았던 거고 그래서 한번 더 잘해보고 싶었던 건데…." 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롯데 왼손 투수 주형광(31). 그가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하고 코치 연수를 떠나기로 했다. 쉽지 않고, 힘든 결정을 내리기까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단다. 그러나 결론은 롯데에 남고 싶다는 것이었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거인 유니폼을 입고 롯데와 함께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활활 타올랐던 10대
주형광은 부산고 재학 시절 고교무대를 평정하며 94년 롯데 입단 때부터 큰 기대를 받았다. 당시 받았던 계약금 9200만원은 고졸 신인 사상 최고액이었다.
"데뷔전이 OB전이었는데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요. 그땐 머릿속이 하얗고 몸이 붕 떠서 어떻게 공을 던지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3이닝 동안 5실점으로 박살나고 내려왔죠."
고교야구 톱스타의 프로 데뷔전 실패는 오히려 보약이 됐다. 두번째 선발 등판인 4월19일 대전에서 그는 한화 정민철과 맞대결을 펼쳐 2-1 완투승을 거뒀다. 2안타 9탈삼진 1실점이었다.
"그때 짜릿한 기분이란…자신감이 확실히 붙었죠."
아직도 깨지지 않는 최연소(18세1개월18일) 승리투수·완투승 기록이다. 그리고 그의 기록 사냥에 불이 붙었다. 6월8일 대구 삼성전에서는 완봉승했다. 역시 18세3개월7일로 최연소 기록. 3월1일생으로 한해 빠르게 학교에 들어간 그였기에 그의 '최연소 기록 세트'는 앞으로도 쉽게 깨지지 않을 것 같다.
데뷔 첫해 11승(5패), 2년차에 10승(7패), 그리고 3년째인 96년 18승7패1세이브, 방어율 3.36, 탈삼진 221개를 기록했다. 다승과 탈삼진 1위에 오르며 롯데의 확실한 에이스가 된 당시 나이 약관 20세였다.
그의 최고 구속은 시속 140㎞ 언저리였지만 볼끝이 좋았고 특히 제구력이 기가 막혔다. 두뇌회전도 좋아 타자보다 한 수 앞서간 것도 어린 그를 에이스의 반열에 올려놓은 무기가 됐다.
#짧았던 20대의 불꽃
군 입대 후 바로 의병제대한 97년 그는 6승13패 3세이브 방어율 5.88로 부진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인 상태에서 팀에 합류해 거둔 성적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른 그는 98·99년 11승과 13승을 거두며 다시 회복해 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되돌아 보니 이때가 가장 아쉬움이 남는단다.
98년 8월5일 그는 전주 쌍방울전에서 연장 10회까지 완투를 해 결국 3-2로 승리했다. 야구 인생에서 가장 많은 161개의 볼을 던졌다.
"돌이켜보니 이때 중간에 과감하게 마운드를 내려오지 못했던 게 참 아쉬워요. 감독님이 물어보셨지만 그때야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무조건 던지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돌아보니 그때부터 팔에 무리가 왔던 것 같아요."
2000년 8승6패로 주춤한 후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주형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2001년 어깨 수술을 했고 이후 몇 년 간 힘든 재활을 거쳤지만 몸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올시즌까지 수술 후 7년간 거둔 성적이 10승(25패)이다.
양상문 감독 시절인 2004년 전지훈련지에서 구위가 회복된 모습을 보였고 시즌 초반 4승까지 승승장구하며 과거의 모습을 찾은 듯했다.
"그땐 뭐랄까, 진짜 옛날의 감이 다시 왔어요. 팔도 아프지 않고 정말 좋았는데…. 5월말 대구 삼성전이었는데 갑자기 던지는 도중에 팔에 힘이 빠지면서 팔꿈치에 멍이 들더라고요. 팔꿈치 안의 뼛조각이 부딪쳐 생긴 것이었어요. 이때도 투구수 조절을 차근차근 했어야 했는데 아프지 않고 잘 나가니까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 게 또 발목을 잡았죠."
2004 시즌을 조기에 접고 LA까지 날아가 투수 수술로 저명한 조브 박사에게 검진을 받았다. 팔꿈치와 어깨 다 수술하라고 했지만 구단에서는 재활을 권유했다. 그는 힘든 재활을 거쳤지만 결국 옛 명성을 찾지 못했다.
데뷔부터 순탄하게 자리잡아 에이스로 군림했던 그는 의외의 말을 꺼냈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하루 불안 속에 살았어요. 처음에는 과연 선발이 될까 걱정했고, 잘할 때에는 계속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싸였고, 얼마 전까지는 엔트리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하며 지냈어요."
잘하든 못하든 성적으로 평가받는 프로 선수의 냉혹한 승부세계의 중압감을 견디는 게 쉽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못다 한 꿈은 후배들로
"물론 우승반지를 껴보지 못하고 은퇴하는 거죠."
'가장 아쉬움이 남는 게 뭐냐'는 물음에 그는 '우승의 한(恨)'을 얘기했다. 그가 한참 잘 던지던 95년과 99년 두 차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도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아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그 아쉬움은 후배들을 통해 보상받을 생각이다.
선수생활의 단맛과 쓴맛, 부상과 재활이라는 많은 경험이 코치 생활에 좋은 강의재료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는 지바 롯데에 코치 연수를 가서 특히 부상 방지를 위한 트레이닝 기법을 많이 배워보고 싶단다. 또 선수 시절 힘들었던 심적 불안감과 부담을 이해하고 덜어줄 수 있는 코치가 되도록 심리 분야도 공부할 생각이다.
"부산에서 야구한 건 정말 행운입니다. 이런 열광적인 팬에게 계속 실망을 안겨줬으니 정말 죄송하죠."
그는 암울한 롯데에 지친 팬과 선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도 전했다.
"선수들이 오랜 패배의식을 쉽게 깨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분명히 재능과 실력은 어느 팀이나 백지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해요. 올해 두산이 잘한 것도 보면 분위기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젊고 가능성 있는 롯데 선수들이 어느 순간 깨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하기 위해 힘을 보태야죠."
그는 마지막으로 결혼 후에 야구를 제대로 못했다며 아내 박주형씨(31)에게도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꼭 전해달란다.
"옛날 잘했던 기분을 느껴보고 옷벗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 지키지 못했네요. 다음달이면 결혼 2주년이고 내년에는 아기가 태어나는데 혼자 코치 연수를 떠나게 돼 더 미안합니다."
담담한 그의 얼굴 뒤에 비친 아쉬움은 롯데와 가족, 야구에 대한 사랑, 바로 그것이었다.
▲생년월일=1976년 3월1일
▲신체조건=186㎝·86㎏
▲출신학교=부산 수영초-초량중-부산고-롯데(94년)
▲통산 기록=87승82패 9세이브 방어율 3.83
▲수상기록=96년 다승(18승) 1위·탈삼진 1위(221개)
▲특기사항=최연소 승리투수·완투승(이상 18세1개월18일)·완봉승(18세3개월8일)
〈부산|양승남·사진 이석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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