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벗겨 봤더니..'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23일 드디어 개봉

2007. 5. 2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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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조은별 기자]

이토록 상륙하는데 말 많은 해적들이 또 있을까? 역대 최고인 670개의 스크린을 확보하고 전세계 최초 개봉을 위해 언론 시사도 거치지 않은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가 23일 오전 드디어 국내에서 개봉됐다. 개봉 전날인 22일까지 예매율이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개봉 첫 날인 23일 개봉 첫 회인 오전 8시에는 평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인파가 몰려 해적들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3부작의 마침표를 찍을 '캐리비안의 해적3'는 바다 괴물 크라켄의 배 속에서 살아 돌아온 잭 스패로우 일당들이 싱가포르 해역에서 벌이는 한바탕 소동을 담고 있다. 해상 권력을 장악하려는 동인도 회사의 커틀러 베켓 경(톰 홀랜더 분)에 맞서 집결한 전세계 해적들과 두 진영 간의 전쟁이 이야기의 핵심을 이룬다.

동인도 회사 노예들의 처형으로 음침하게 문을 연 '캐리비안의 해적3'은 고향 카리브해를 떠나 세상의 끝 싱가포르로 향한다. 표면적으로 가장 큰 적은 베켓 경이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유령선 더치맨에 숨겨진 심장을 차지하려는 해적들의 아전투구와 배신에 배신이 더해지며 영화는 한층 더 실타래를 복잡하게 꼬아간다.

영화는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초반부는 2편에서 괴물 크라켄에게 먹혀 데비 존스의 저승으로 끌려간 잭 스패로우 구출작전이다. 세상의 끝이라 일컫는 데비 존스의 저승을 찾아가기 위해 윌 터너(올랜드 블룸 분)와 엘리자벳 스완(키이라 나이틀리 분), 바르보사 선장(제프리 러쉬 분)은 싱가포르의 해적 사오펭(저우룬파 분)을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윌 터너는 죽은 아버지를 되살리기위해 사오펭과 블랙펄호를 놓고 뒷거래를 하며 잭 스패로우를 배신할 모종의 음모를 꾸민다.

2편에서 괴물 크라켄에게 먹혀 데비 존스의 저승으로 끌려간 잭 스패로우는 저승에서의 충격이 큰 듯 그만의 재기발랄한 유머의 강도가 약해졌다. 건들거리는 걸음걸이는 여전하지만 자아분열의 강도가 심해졌다. 일단 그의 출연분량 자체가 많지 않다는 게 잭 스패로우의 열혈 마니아들에게 아쉬움을 줄 듯하다.

그러나 기발한 발상으로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그만의 재치는 무릎을 치며 웃게 한다. 바람이 불지 않는 무풍지대(저승)에서 다시 싱가포르 해역으로 돌아온 그들에게는 베켓경의 지휘 하에 움직이는 더치맨호와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죽은 영혼을 10년 동안 저승으로 인도하면 10년에 한 번씩 휴식을 주는 여신 칼립소와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문어인간으로 변신한 더치맨호의 선장 데비 존스의 기괴함은 '캐리비안 시리즈' 가 아니면 보기 힘든 유머를 던져준다.

영화는 더치맨과 싸우기 위해 모인 해적 영주들의 회담으로 다시금 새로운 판국을 맞으며 바다가 아닌 산으로 가게 된다. 절대 뭉치지 않는 아홉 해적들의 이합집산 와중에 사오펭의 죽음으로 우여곡절 끝에 그의 배를 물려받은 엘리자벳이 잭 스패로우의 도움으로 해적들의 왕이 되며 '캐리비안의 해적'은 잠시 '캐리비안' 정신을 잃게 된다. 해적왕이 된 엘리자벳은 비굴한 해적으로 사느니 싸워서 죽자고 외치며 해적들을 선동한다. 잭 스패로우와 똑닮은 아버지까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캐리비안의 해적3' 가 종편임을 너무 의식한 것 아닌가라는 실소가 터지게 된다.

그러나 '캐리비안의 해적3'는 이제껏 보았던 그 어떤 '캐리비안' 시리즈보다도 강력한 것은 틀림없다. 디즈니랜드의 놀이기구인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이름을 딴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는 그 어떤 놀이기구보다도 아찔한 스릴과 광경으로 관객을 이끌며 보다 강력한 마수를 펼친다.

초반부 싱가포르 해적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증기탕과 문신, 대머리 등 국적 불명의 해적으로 그린 것은 동양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만하다. 중국에서 저우룬파의 영화 출연을 반대했다는 설에 제법 공감이 간다. 엘리자벳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음침한 눈빛 역시 여성 관객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저운루파의 극 비중이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점이 또 다른 아쉬움을 남는다.

조은별 mulgae@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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