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아'' 조도로프스키 영화 당당하게 본다

2007. 3. 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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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영화의 세계적 거장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대표작 '엘 토포'(1971)와 '홀리 마운틴'(1989)이 마침내 15일 국내 관객과 '떳떳하게' 만난다. 37년 만에 정식으로 스크린에 걸리게 된 '엘 토포'와 '홀리 마운틴'은 영화 팬들에겐 뒤늦은 감이 있지만, 공식 영화관을 통한 '진짜 만남'이란 감격스러운 기회임은 분명해 보인다. '세상 좋아졌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법하다.

1994년 국내 개봉했던 '성스러운 피' 이외에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접하기란 쉽지 않았다. 영화 전문서의 박제화된 지식이나 영화제를 통해서 본 조악한 화면,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한 불법 내려받기 등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당시 '성스러운 피'조차도 엄격한 상영등급 기준 때문에 부분 삭제된 반쪽짜리 영상으로 소개됐다.

1970년대, 어느 누구도 쉽사리 상상하지 못했을 세상의 금기를 용기 있게 다룬 조도로프스키의 작품들은 그동안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온 할리우드 상업영화에 얼마 만큼 우리 눈이 길들어 있는지를 반성케 한다. 특히 영화 학도나 마니아라면 놓쳐서는 안 될 작품.

조로도프스키의 영화는 줄거리를 따라가거나 내용을 기억해가면서 볼 필요는 없다. 앞뒤 구성을 따지지 않아도 된다. 그저 보기만 하면 된다는 얘기다. 자극적인 화면으로 가득 찬 여느 컬트 영화와는 달리 수많은 메시지를 함께 담고 있다. 그러나 굳이 이를 찾으려 하지 않아도 보는 동안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가슴에 전달된다. 이것이 장점이자 매력이다.

그의 영화는 인간 사회가 지닌 모순과 갈등, 이로 인한 아픔을 이야기한다. 무자비한 총질과 살인은 강한 국가나 집단이 약한 국가나 집단에 가하는 학살을 고발하는 것이다. 살육 장면이 잔혹하게 비치지 않고 우습게까지 그려진 이유는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학살에 대한 우리들의 불감증을 꼬집는 데 있다. 사원 벽에 그려진 불안정한 삼각형 안 외눈은 세상을 올바르게 인도하지 못한 채 오히려 자신들의 안위를 찾는 등 '길 잃은' 종교를 지적하는 상징이다.

이는 '엘 토포'의 경우, 마을 교회에서 찬송하는 교인들이 권총에 공포탄을 넣고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다가 본인의 순번이 무사히 지나갈 때면 "미러클(기적)"을 외치는 대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영화는 또 우리가 살면서 알게 모르게 현자(賢者)를 죽이지나 않았는지 되묻는다. 현자는 곧 정의나 진실에 비유될 것이다. 귀부인과 지식인들의 이중행동, 상류사회의 허영, 인종 편견과 차별 등도 빼놓지 않고 강하게 비꼰다.

조로도프스키의 영화는 앤디 워홀도 달려와 감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 데이빗 보위 또한 열렬한 지지자였다. '엘 토포'의 작품성은 비틀스 존 레넌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후 그가 매니저인 앨런 클라인에게 영화 판권을 사들여 미국 내 전 지역 개봉을 추진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그래서 이 영화의 판권은 다른 영화들처럼 영화사가 아닌 유명 음반사 애플 레코드가 가지고 있다. 존 레넌은 아내 요코 오노와 함께 '홀리 마운틴'에도 제작비 100만달러를 조달했다.

전 세계 일반 극장가에서 동시개봉 중인 두 영화는 최근 HD 고화질로 복원된 무삭제 필름으로, 국내에선 씨네큐브와 필름포럼에서 선을 보인다.

■'엘 토포'

제목은 두더지라는 뜻의 스페인어. 아들과 함께 말을 타고 사막을 건너던 주인공 엘 토포는 한 마을을 폐허로 만든 악당을 처치한다. 아들을 마을에 남기고 대신 악당의 여자 '마라'를 선택한 그는 마라의 부추김에 동양철학자, 자연주의자 등 4명의 현자와 대결해 행운과 속임수로 승리를 거두며 자신을 '신'이라 여긴다.

그러나 엘 토포는 마라의 배신으로 자신이 한낱 인간에 불과할 뿐,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으며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 채 신을 부르기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동굴 속 잠에서 깨어난 엘 토포는 긴 세월 자신을 보살펴준 동굴 속의 소외받은 자들(기형, 불구자, 돌연변이)을 바깥세상, 즉 인간들의 세상에 보내주기 위해 동굴에 통로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인간의 마을은 사실 동굴보다 더 끔찍한 곳이다. '희망'처럼 보이는 바깥세상의 '정상인'들은 동굴 속 소외된 자들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을 만큼 탐욕과 차별로 이미 몸과 마음이 더렵혀져 있다. 동굴인들은 바깥세상을 향해 내달리지만 마을 사람들의 총구에 의해 모두 참혹한 죽음을 맞고 만다.

■'홀리 마운틴'

세상을 처음 접한 한 사내가 일곱 수행원들과 함께 '성스러운 산'을 오르는 수행기를 그린 영화다. 벌거벗은 예수를 닮은 사내가 우연히 높은 탑에 올라갔다가 신비한 지도자를 만난다. 지도자가 알려준 대로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7인의 삶을 차례로 돌아본다.

이들은 태양계의 행성들을 각각 수호하고 있다. 화면은 이들이 각자 세상을 위해 맡고 있는 역할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독특하게 소개한다. 이후 예수를 닮은 사내와 지도자, 7인의 수행원은 속세의 물건을 모두 버리고 신의 일을 대신하는 불사의 현자를 만나기 위해 성스러운 산을 오른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이들의 고행은 현실에 대한 환기를 역설하는 파격적인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김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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