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장윤정' 문채령·노유니, 트로트계 샛별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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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장윤정은 바로 나!"
트로트계에 젊은 열풍이 거세다. 20대의 장윤정이 '어머나'를 빅히트시키며 트로트의 세대간 장벽을 허물어뜨렸고, 이어 등장한 박현빈이 그 성별을 남성으로까지 확대시켰다. LPG, 뚜띠, 아이리스 등 그룹 형태의 트로트 가수가 나타나는가 하면 트로트학과를 개설한 대학교도 등장했다. 젊은 트로트가 잠깐 유행하다 사라지는 '트렌드'나 '신드롬'이 아닌 하나의 음악 장르로 자리잡은 것이다.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부분은 아무래도 여성 트로트다. 트로트를 좋아하지만, 댄스나 발라드 등 '장르적 방황'을 거쳐왔던 여성들이 장윤정의 성공을 발판 삼아 '젊은 트로트'의 세계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섹시한 매력을 듬뿍 살린 노유니는 댄스 그룹의 멤버로 발탁된 전례가 있고, 귀여운 외모의 문채령은 발라드 가수 출신이다. 이제 트로트로 제자리를 찾은 이들 가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트로트계의 채연 문채령, 애교만점 매력 발산

"외모는 채연, 목소리는 현영?"
'트로트계의 채연'으로 불리는 가수 문채령이 트로트곡 '아니야'로 인기몰이에 한창이다. 설운도가 작곡해 문채령에게 선사한 '아니야'는 라틴풍이 강한 댄스 트로트. 발랄하고 애교많은 문채령의 매력과도 잘 통한다.
"어른들 앞에서 재롱부리는 게 좋아요. 트로트의 맛이기도 하고요. 이번 노래는 댄스 트로트지만 언젠가 정통 트로트에 도전할겁니다."
8살 때부터 노래 솜씨로 유명세를 탔다는 문채령은 14살때 한 잡지사 주관 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 심사위원으로 있던 유명작곡가의 눈에 띄었다. '목포의 눈물'을 작곡한 손목인씨였다. 이후 문채령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트로트 트레이닝'에 매진했다. 당시는 장윤정이 등장하기도 훨씬 전이었으니 트로트 가수를 꿈꾸는 문채령의 존재가 독특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전부 댄스음악에 심취했는데 저 혼자 트로트를 하려니 이상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축제나 소풍 축하무대에 한번도 빠진적이 없죠. 그냥 '가수'로 통했어요."
문채령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데뷔를 추진했다. 엔카의 본토 일본에서 승부하고 싶었던 것. 그러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일단 한보 후퇴해야 했다. 이후 그는 발라드로 선회, 아이샤라는 신인가수로 데뷔했다.
"'꿈'이라는 발라드로 4개월 정도 활동했어요. 그 중에서도 '윤도현의 러브레터' 무대는 잊을 수가 없어요. 정말 떨렸거든요. 이후에는 '장길산' OST에도 참여했어요."
발라드 가수 아이샤라는 이름이 익숙해질 무렵, 문채령은 트로트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서도 트로트를 포기하지 말라는 충고가 끊이지 않았다. 소위 '꺾기'라 불리는 트로트 기교가, 발라드에 묻히는 것이 아깝다는 것이었다. 문채령은 과감하게 트로트로 돌아와 지난해 말 2집 앨범을 발표했다.
하루에 8시간 이상씩 연습에 매진한다는 문채령은 선배 가수들에도 '인기 만점'이다. 이번에 타이틀곡을 선사한 설운도는 '잘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고. 현철은 다음에 곡을 하나 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송대관도 문채령만 보면 상당히 귀여워한단다.
문채령의 외모는 어른들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가 좋아할 만한 매력을 지녔다. 웃음을 터뜨리면 섹시가수 채연과 상당히 흡사하다. 애교많은 목소리는 영낙없는 현영이다.
발라드에 대한 미련보다는 트로트로의 욕심이 더 크다는 그는 요즘 무대에 서는 게 정말 즐겁다. "발라드 가수였을땐 팬들이 멀리서 지켜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엔 와서 '아이구∼'하면서 툭툭 치셔요. 전 요즘이 더 좋아요.(웃음)"
문채령은 "요즘 정말 행복하다"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해서 주현미 선생님에 이어 정통 트로트의 계보를 잇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혜린 기자
소녀 트로트 가수 노유니, 열아홉살 청춘의 도전

"모든 세대가 좋아할 수 있는 노래예요."
19세의 깜찍한 소녀 노유니가 미디엄 템포의 타이틀곡 '하는 거 봐서'를 발표, 트로트시장에 진출했다.
'성인가요'로 지칭되며 젊은 세대의 외면을 받아온 트로트 음악에 19세 '청춘'이 도전한 것이다. 이같은 도전에는 선배 장윤정의 성공과 트로트 음색에 딱 어울린다는 음색이 한몫했다.
물론 오늘날의 노유니가 있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예전에는 댄스가수가 꿈이었어요. 그래서 오디션도 많이 봤죠. 마침내 6인조 여자댄스그룹에 속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갑자기 부모님이 반대하시더라고요. 재미삼아 해보라고 한건데 덜컥 계약까지 하겠다고 할 줄은 몰랐던거죠."
집안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혀 꿈을 접어야했던 그는 트로트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평소 가족들과 트로트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워왔던 것에 착안, 노유니는 가족들을 조금씩 '포섭'했다. "함께 노래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나중에는 인정해주시더군요. 지금은 둘도 없는 후원자죠.(웃음) 아버지만 고향인 대구에 계시고 어머니와 남동생은 저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을 정도예요."
가수 데뷔는 고2때 '남인수 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색소폰 학원을 다녔는데, 옆반 선생님이 트로트곡을 작곡했다면서 저한테 가요제에 나가보라고 추천하셨어요.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 나갔는데 덜컥 1등을 한거예요."
이 대회에서 그는 유명 작곡가 정의송씨의 눈에 띄었다. 파워풀한 발성과 간드러지는 창법이 묘하게 어우러졌다는 평가였다. 이후 그는 7개월간 정의송씨의 녹음실에서 트레이닝을 거쳤다. 당시 함께 트레이닝을 받던 연습생에는 현재 남자 트로트계의 샛별로 떠오른 박현빈도 있었다.
"늘 오빠, 오빠하면서 얼굴보던 사이였는데, 어느날 데뷔를 해서 TV에 나오더라고요. 신기하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했어요. 참 착한 오빠였는데 잘돼서 기분 좋아요. 이제 저도 잘돼야죠.(웃음)"
노유니의 '하는 거 봐서'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노래다. 이성 간에 '너 하는 것 봐서 뭔가를 해주겠다'는 가사로 이루어졌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 하자'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노유니는 "제 또래와 부모님 세대까지 아우를 수 있는 노래라고 생각한다"면서 "일본의 엔카 가수들이 폭넓은 지지를 얻는 것처럼 한국의 트로트도 보다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혜린 기자 rinny@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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