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윙걸즈' 야구치 시노부 감독

"저도 색소폰 부는 재미에 빠져 있지요"
(도쿄=연합뉴스) 서현주 통신원 = 오는 3월16일부터 한국에서 상영되는 '스윙걸즈'는 2004년 일본에서 개봉된 청춘 코미디물로 당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흥행은 물론 '2004 일본 아카데미'에서 신인 여자 배우상, 각본상, 녹음상, 편집상, 음악상 등 5개 부문을 석권했다.
이 영화를 제작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일본 영화계에서 '무서운 아이'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로 '맨발의 피크닉' '비밀의 화원' '아드레알린 드라이브' '워터보이즈'로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스윙걸즈'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야구치 감독을 일본 도쿄에서 만났다.
다음은 감독과의 일문일답.
--'스윙걸즈'는 어떤 경위에서 만들게 됐는지.
▲'스윙걸즈'를 만들게 된 계기는 여고생들이 실제로 재즈밴드를 조직했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그 후의 스토리는 감독인 내가 직접 구상해 만들었다. 이 점은 '워터보이즈'의 스토리가 실제 수중발레를 하는 학생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것과 다른 점이다. 얘기만 듣고 스토리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도시락을 먹고 배탈난 장면, 멧돼지가 나오는 장면, 눈 때문에 연주회에 나가지 못하는 장면 등은 내가 만든 픽션이다.
--21세기의 여고생들이 20세기의 재즈밴드 음악에 입문을 한다는 게 흥미롭다.
▲일본에서 재즈음악이라 하면 '아저씨'들이 연주하거나 방에 틀어박혀 듣는 어두운 이미지가 남아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일본에서 여학생들이 재즈밴드를 만들었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왜 젊은 학생들이 재즈밴드를 만들었는가에 흥미가 생겨서 취재를 가게 된 것이다. 이 영화의 모델이 된 학생들을 직접 만나서 음악을 들어보니 고리타분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전혀 새로운 음악으로 들렸다.
--이 영화에서는 멧돼지 장면이 나오는데 컴퓨터그래픽을 동원한 동기는 무엇인가. 또 한국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도 컴퓨터그래픽을 쓴 멧돼지 사냥 장면이 등장한다. 그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웰컴 투 동막골'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 기법을 사용한 이유는 살아 있는 멧돼지를 쓰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에서도 멧돼지가 나오는 신이 있는데, 무슨 관련이 있는가.
▲일본에서는 멧돼지가 산에서 내려와 밭을 파헤치거나 농작물을 망치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다.
--보통 코미디 영화를 보면 못난 배역을 맡은 사람들에 대비해서 잘난 역할을 하는 배우가 꼭 한두 명씩 나오기 마련인데, 야구치 감독의 영화에서는 다 못난 배역의 인물들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코미디 영화라고 해서 보통 영화보다 바보같이 보이는 배역이 나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워터보이즈'와 '스윙걸즈'에서도 특별히 바보 같은 캐릭터를 등장시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옆반에 있거나 같은 동네에 있는 가깝고 친근감 있는 존재를 캐릭터로 만들었다. 극단적으로 바보 같은 사람이나 멋진 사람이 등장하는 만화적인 요소를 집어넣지 않아도 그러한 감정이입이 가능한 것은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다지 승부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내가 경쟁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육상부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렇기 때문에 '워터보이즈'에서도 마지막 장면은 학교 축제였고, '스윙걸즈'도 콘테스트가 아니라 연주회로 마무리했다. 처음부터 이기고 지는 것은 설정하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찍은 부분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출연자가 정말로 연주를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온 음악영화들은 대부분 프로들이 연주를 대신했다. 이 경우 음악 자체는 우수할지 모르지만, 내 영화는 목적은 그게 아니다. 악기를 처음 만져보는 학생들이 점차 연주를 할 수 있게 되는 기쁨을 보여준다면 관객이 더욱 감동을 받지 않을까.
--직접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있는가.
▲영화를 끝내고 나서 테너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해 지금도 음악교실에 다니고 있다. 그래서 그 과정이 출연진에게 얼마나 혹독한 과정었는지 몸으로 느낀다.
--영화의 황당한 에피소드 중에는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은데, 아이디어는 어디서 구했는가.
▲멧돼지 신 같은 극단적인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오디션에 온 여고생들의 실제 경험담을 직접 들어 차용했다.
--'스윙걸즈'는 스스로 어떤 영화라고 생각하는가.
▲음악을 해보고 싶어지는 영화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밴드와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이 있었지만 '나도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겠다'고 느끼게 해주는 영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 영화를 보고 악기를 사거나 연주 연습을 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실제로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촬영 중 에피소드는.
▲처음 계획으로는 악기 연습을 한 3개월 정도 시키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전혀 예정대로 되질 않았다. 그래서 서툰 연주 장면부터 찍기 시작했다. 출연자들은 촬영이 끝나면 날마다 연습을 했다. 혹독한 연습 끝에 겨우 촬영 일정에 맞춰 끝낼 수 있었다. 촬영 후 일도 기억에 남는다. 17명의 모든 출연자들이 버스를 타고 일본 각지를 다니며 영화 시사와 함께 연주회를 펼쳤는데, 실제로 연주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연주를 듣고 나서는 모두 감동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전의 영화에 비해 '워터보이즈'나 '스윙걸즈'는 밝은 분위기의 작품이다. 그동안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는지.
▲앞으로도 계속 밝은 영화를 찍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금 매우 어둡고 무서운 작품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중이다. 대체로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의 밸런스를 바꾸어 가고 있다.
--배우의 캐스팅 과정을 말해달라.
▲내가 원하는 캐릭터와 악기를 다룰 수 있는 배우를 찾는 데 매우 고생했다. 1천명 정도를 오디션을 치렀지만 결국에는 악기 쪽은 포기하고 캐릭터에 맞는 인물을 선택했다. 특히 주인공 5명은 전혀 악기를 연주할 줄 몰라 고생을 많이 했다.
--기억에 남는 한국 영화가 있다면.
▲'플란더스의 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일본인이 만들 수 없었던 재미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웃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아슬아슬함이다. 일본인은 코미디라면 관객을 웃게 하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별로 재미가 없다. 이전부터 아슬아슬한 웃음 장면을 좋아했는데, 한국 영화에서 그러한 점을 발견해 나와 통하는 점이 있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키워드를 만들지 않고 관객이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영화,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sungl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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