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블로그세대 '왕의 남자'를 論하다
헤럴드경제 새내기 수습기자( 9명이 본 영화의 매력)
'왕의 남자'가 국내 영화계의 흥행신화를 새롭게 써나가고 있다. 개봉 한 달여 만인 지난 설 연휴에 800만 고지를 넘어선 기세가 당분간 꺾이지 않아 1000만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입소문을 통해 전 연령층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주된 관객층은 젊은 세대다. 영화 속의 그 어떤 매력이 그들의 눈길을 잡아매고 발길을 붙잡고 있는 것일까. 그들 가슴으로 파고드는 감동의 원천은 과연 무엇일까. 지난해 연중 기획시리즈로 '블로그세대'를 집중 조명한 바 있는 헤럴드경제는 갓 입사한 수습기자( 9명의 눈높이로 생생하게 그 실체를 파헤치고자 했다. 힘든 수습교육 일정 속에 지난 설 연휴에 모처럼 짬을 내 함께 영화를 관람한 뒤 풀어놓은 '의젓한 담론'과 '젊은이들의 수다'를 모아봤다.
원, 그리고 직선의 영화
마당놀이는 원이다.
'마당놀이'로 대변되는 서민의 공연문화는 관람 형태에 있어 공연자를 둘러싸는 원의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카메라가 그 '원' 안에 들어와 광대들을 화면에 잡을 때면 후경에는 늘 구경꾼들이 배치되게 된다. 이런 식으로 항상 광대들이 스크린 밖의 관객과 스크린 안의 관객 사이에 위치하게 됨으로써 전자의 '진짜 관객들'은 마당놀이판 안에 들어선 듯한 묘한 임장감과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아울러 마당 안은 연산군이 비로소 익선관을 벗고 광대들과 하나가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줄타기는 직선이다.
허공(虛空)은 본디 3차원의 입체 공간이다. 광대들의 외줄은 이 경계 없는 빈 공간에 직선 하나가 되어 걸린다. 공길, 장생, 연산, 녹수는 극 속에서 끊임없이 서로 엇갈리는데 이를 상징적으로 축약해 놓은 것이 공길과 장생의 장님놀이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둘은 서로 지척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연신 허공을 포옹하며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라는 말로 서로의 존재만을 확인할 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외줄 위에서 마주한다면 어떠하겠는가. 외줄 위에 올라선 이상, 광대는 오직 하나의 선분 위를 따라가야 한다. 필연적인 버선발의 항로가 정해지는 셈이다. 설사 앞이 안 보인다고 하더라도 줄만 타고 나아가면 둘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 마지막 줄타기 장면에서 둘은 외줄 위에서야 비로소 정확히 서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임희윤 기자(imi@heraldm.com)
동성애…그 절제의 미학
'왕의 남자'는 동성애영화지만 동성애가 없다. "그렇게 눈이 멀어서… 볼 걸 못 보고, 어느 잡놈(연산)이 그놈(공길) 마음을 훔쳐 가는 걸 못 보고. 그 마음이 멀어져 가는 걸 못 보고"라는 장생의 대사는 인물들의 삼각관계 러브스토리를 잘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명백한 연인이면서도 이들의 에로스적 사랑은 화면상으로는 거의 배제되고 있다. 이 적절한 숨김은 제작자의 '똑똑한' 전략이다. 대중문화의 동성애 코드가 실제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것은 여성동성애자를 다룬 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재 한국 대중문화에 통용되는 동성애는 아름다운 미소년으로 포장된 소비상품이다. 대중문화의 주 소비층인 여성들은 이준기로 대표되는 이 새로운 트렌드에 환호한다. 야오이와 팬픽이 수면 아래에서 노골적인 수위를 넘나든다면 수면 위로 나온 동성애는 적당히 숨기고, 감추는 아름답고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다. 한마디로 '대중적' 동성애의 탄생이라 할 수 있다.
'왕의 남자'에서는 이것이 절제의 미학으로 거듭난다. 확실한 사랑의 대사도 몸짓도 없지만 주인공들의 사랑은 그래서 오히려 더 절절하다. 장생의 심리적 갈등요인 역시 명확하지 않다. 광대로서의 자유, 공길과의 사랑. 둘 중 무엇이 더 그를 분노, 좌절하게 하는지 애매모호하다. 어쩌면 공길에 대한 사랑과 질투가 영화 전체를 꿰뚫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해석은 어디까지나 관객 각자의 자유로운 해석에 맡겨질 따름이다.
오연주 기자(oh@heraldm.com)
천하를 傲視하는 광대들
'왕의 남자'는 장생과 공길이 '예인'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성장드라마다. 본래 두 광대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세헤라자드처럼 왕이 그들의 놀이판을 기꺼워하지 않는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처지였다. 따라서 초반부에만 해도 두 광대, 어떻게든 왕을 웃겨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러나 그들은 변한다. 살기 위해 노는 게 아니라 놀기 위해 죽을 수도 있다. 수단이 목적으로 바뀐다. 영화 후반부에서 변화는 분명해진다. "다시 태어나도 난 광대!"란 공길과 장생의 대사는 '나는 광대'란 자부심의 절정이다. 모두가 탐내는 권력보다 모두가 천시하는 '광대짓'이 좋다는 그들. 천하를 오시(傲視)하는 그 자부심은 물볼기를 맞을 때 "그냥 죽는 건 억울하니 왕에게 보이기나 하게 해주쇼!"라고 외친 장생과, 왕을 웃기지 못하면 목숨이 달아날 순간 여유롭게 애드립을 연출한 공길의 두둑한 배짱이 맞물려 영화적 흡인력을 배가시킨다. 둘은 재주로 목숨을 부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목숨을 찾아낸다. '여기'에서의 삶은 끝났어도 '거기'에서 광대로 신명나게 들고 노는 인생은 온전히 장생과 공길의 몫이다. 목숨을 팔고 혼을 팔아 풀어내는 이야기에 매혹되지 않을 사람이 흔하랴. 1000만을 바라본단다. 두 광대에게 바짝 다가가 귀와 눈을 연 관객 수가.
이고운 기자(ccat@heraldm.com)
세대를 아우른 웃음의 코드
공길, 장생 등 광대패가 의금부에 끌려가 매를 맞는 심각한 장면에서 키득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시청자였을 것이다. 곤장 100대를 치라고 명령하는 의금부 도사가 바로 삼순이 아버지였던 것. 삼순이의 촌스러운 2:8가르마 맞선남도 연회자리에서 연산군에게 사정없이 얻어맞는 형조판서로 등장해 웃음을 자아냈다. 시트콤 '올드미스다이어리'에서 주인공 미자의 삼촌으로 나왔던 우현은 장녹수의 심복인 홍 내관으로 출연해 '올미다' 팬들을 반갑게 했다. 반면 이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20대들이 왜 웃는 것인지 의아해했던 40~50대 중장년층은 광대패들의 걸쭉한 입담에 폭소를 터트렸다. 어릴 적 5일장이나 각설이 공연 등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음담패설에 열광했던 것이다. 웃음의 코드에는 세대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영화 곳곳에 카메오, 언어의 유희 등 재미있는 요소들을 배치해 모든 연령층이 웃고 즐길 수 있게 한 점은 분명 1000만 관객돌파를 앞 둔 왕의 남자의 매력 중 하나다.
신수정 기자(ssj@heraldm.com)
매혹적인, 그러나 2% 부족한…
'왕의 남자'의 소재는 매혹적이다. 야릇한 색감을 불러일으키는 '여장(女裝)광대'의 등장은 물론 역대 군주 가운데 드라마적 요소가 가장 풍부한 '연산'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자체가 흥미를 유발한다. 광대는 놀이판에, 왕은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에 미쳐있다는 것도 광인(狂人)의 삶을 엿보고 싶어하는 대중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다. 군주가 최하층인 광대와 정을 나누는 줄거리는 시시하거나 밋밋하게 그리기가 더 어렵다. 게다가 '왕의 남자'는 화려한 볼거리도 안겨준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줄타기가 그 백미다. 그러나 왕의 남자는 여기까지다. 볼거리는 많고 줄거리는 맛깔나지만 깊이 있는 감동을 우려내는 맛은 아무래도 2% 부족한듯 하다. 배우들의 연기는 큰 흠을 잡기 어렵다. 문제는 그 맛깔스런 소재를 잘 버무린 영양가 높은 찬이 밥상에서 제 맛을 내지 못함에 있다.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와 공들인 화면에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지만 잦은 생략과 과장으로 감동으로의 자연스러운 몰입이 쉽지 않았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탄식조의 대사는 지나치게 호흡이 길고, 그 대사를 읊기까지의 감정 흐름은 생략돼 있어 가슴으로 울림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관객이 짐작만으로, 때로는 지루하게 사랑에 공감하고 절망을 느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성연진 기자(yjsung@heraldm.com)
영화 관통한 패러디의 사회학
영화 '왕의남자'는 풍자와 해학이 두드러지는 우리 민족 고유의 민속놀이 '탈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속 광대들은 '연산군의 문란한 성생활, 신하들의 부정축재, 폐비윤씨의 억울한 죽음' 등 그 당시 어느 누구도 함부로 입밖에 꺼내지 못했던 사실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자신의 성생활을 소재로 한 광대들의 적나라한 풍자에 연산군은 화를 내기보다는 오히려 웃음으로 그들을 포용한다. 패러디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직접화법 없이 비유와 은유를 통해 표현하기 때문에 위정자를 욕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패러디라는 수단을 통해 비로소 민중들은 임금님 면전에서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터넷의 확산과 정보의 복제ㆍ가공이 손쉬워진 디지털 시대를 맞아 패러디는 하나의 일상화된 문화로서 우리 안에 자리잡았다. 이들은 드라마나 영화, 광고 등 그 시대 최고의 유행코드를 활용해서 타락한 사회지도층에 비판의 메스를 들이댄다. 영화속 광대들의 풍자와 해학에서 우리들은 어쩌면 우리 자신과 꼭 같은 모습을 발견했을는지 모른다. 바로 그것 때문에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들에서는 쉽지 않았던 영화속 주인공들과 관객들의 일체감 형성이 이 영화에서는 가능했으리라. 500년의 시간을 거슬러 흐르고 있는 우리들 안의 패러디 문화가 아마도 '왕의 남자'의 성공 요인이 아니었을까.
최재원 기자(jwchoi@heraldm.com)
경계를 넘나든 融의 사랑
사랑을 논하는 이들은 늘 사랑을 경계 짓고 구분하려 든다. 플라톤이 에로스를 역설했듯, 아리스토텔레스가 필리아에 집착하고 성경이 아가페를 찬양했듯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 간극을 증명하기 위해 새털 같은 시간들을 쏟아 붓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테마로 한 수많은 영화작품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왕의 남자'의 매력은 이와 반대의 길, 낯설되 한번쯤 가고픈 길을 택한 점이다. 영화 속 연산과 녹수는 에로스를 나누는 왕과 첩이지만, 동시에 둘 사이의 자녀에 대한 아가페를 공유하는 필리아적 동반자이다. 공길과 장생은 오랜 세월 광대놀이 파트너로서 필리아와 에로스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심지어 공길이 먼저 장생의 손을 놓아버린 후에도 그 사랑은 소멸되지 않고, 장생의 눈알을 삼킨 뒤 아가페로 다시 태어났다. 연산과 공길은 어떤가. 공길의 어깨에 푸른 도포가 얹혀지는 순간 필리아는 에로스로 번져갔고, 서로의 아픔을 이해할수록 그들은 연민을 동반한 아가페로 서로를 보듬었다.
'왕의 남자'가 대중의 신선한 관심을 붙들었던 것은, 당연하게 유리돼 온 각각의 사랑이 이렇듯 얼마나 많은 접점을 통해 만나고, 옮아가고, 융화될 수 있는지 증명했기 때문이다. 로맨틱 코미디나 버디무비가 필연적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사랑의 혼재와 결합은 '왕의 남자'에서 관객 개개인이 현재 어떤 사랑을 하고 있든 자신을 투영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열쇠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김소민 기자(som@heraldm.com)
연민부른 그들의 자유의지
비천한 출생 신분, 어릴 적엔 노비로 연명하고 광대짓을 하여 남의 돈을 받아가며 살아가야 하는 삶. 그를 둘러싼 사회 자체가 장생에게는 억압이요 질곡이다. 우여곡절 끝에 대궐의 광대가 되어 왕을 희롱하고 정승들을 벌벌 떨게 만들지만 그 또한 다른 권력자인 '처선'의 시나리오에 의한 놀아남에 다름아니다.
가장 큰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연산군이지만 그 또한 장생과 매한가지. 성군인 선왕의 그늘, 사약을 받고 폐서인이 된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굴레는 스스로 '내가 왕이 맞느냐'라는 자조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은 처한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다. 장생은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당하는 부조리한 것들을 거부하고 거기서 벗어나려 한다. 그 의지가 비록 눈을 멀게 하고 목숨을 위태롭게 함에도 그는 끝까지 자신이 원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연산군의 기행은 '왕'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그의 행위가 그를 패륜아로 몰아세우는 빌미가 됨에도 공길과 녹수에게 행하는 그의 몸짓은 가슴속 자유의지의 발현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얽매는 무엇인가에서 벗어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왕의 남자'는 이러한 사람들의 자유의지를 꿈틀거리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결국은 비극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에 관객들은 꽉 짜여진 시스템 속에 놓여진 자신의 삶에 빗대어 눈물을 흘리게 된다.
하남현 기자(airinsa@heraldm.com)
상상력으로 덧칠한'팩션'의 힘
"배우 공길(孔吉)이 논어(論語)를 외어 말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하니, 왕은 그 말이 불경한데 가깝다 하여 곤장을 쳐서 먼 곳으로 유배(流配)하였다."(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60권 22장)
이 한 줄에서 뻗어나온 흥미로운 이야기에 8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울고 웃었다. 그 힘은 다름아닌 팩션(Faction). 사실(Fact)에 근거한 자료에 허구(Fiction)적 특성을 가미한 팩션은 그 Fact와 Fiction의 모호한 경계에서 오히려 더 이야기의 힘을 얻는다. 연산과 녹수, 공길과 같은 실존 인물들의 탄탄한 역사적 배경 위에 창작의 씨앗이 뿌려져 장생, 육갑, 칠득 등 화려한 인물과 이야기를 꽃피운다. 한 뼘 짧은 기록의 역사에 숨을 불어넣고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놓음으로써 흥미진진한 사극판타지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소설 '다빈치 코드'가 처음으로 팩션이라는 신조어를 선보였다. 이후 영화 '황산벌' '실미도'에서 시작해 드라마 '해신' '불멸의 이순신' 등이 팩션의 대를 이으며 '왕의 남자'가 지닌 사극이라는 거부감을 완충시켰다. '너는 내운명' '청연' 역시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엮은 팩션에 해당하나 그 중 '왕의 남자'가 유별난 인기를 끈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역사의 이면을 들추었기 때문이다. 국사책에서나 배워왔던 평면적 역사에서 한 발짝 깊숙이 들어가 그것의 입체적인 이면, 또는 숨겨졌을 후면을 실제 인물들의 삶, 사랑, 질투로 생생히 그려냄에, 이것이 진짜냐 허구냐의 논란은 가치를 잃는다. 오로지 관객의 흡입과 몰입만 남을 뿐이다. 소재 기근으로 봄날 마른 땅 같은 한국 영화계에 팩션이 단비로 내려 풍년을 이끌기를 기대한다.
황주윤 기자(Jun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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