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작은별가족 강인엽-강애리자

2006. 1. 2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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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작은별가족이 다시 뭉쳐 노래할 수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전기 밥솥과 쌀, 김치, 김 등을 갖고 다니며 어머니가 방송사 대기실에서 밥을 해주셨어요. 당시 윤수일, 조용필 등의 가수들이 함께 대기실에 와 밥을 먹곤 했죠."(강인엽)

"부모 형제들과 강원도 두메 산골에 차를 타고 가는데 안개가 자욱했어요. 그런데 차 클랙슨이 고장났지 뭐예요. 사고 위험이 있자 형제들이 색소폰, 트럼펫 등 악기를 창밖으로 꺼내들고 불면서 간 적이 있습니다."(강애리자)

6남1녀와 부모 등 총 9명으로 구성돼 1970~80년대에 활동한 가족그룹 '작은별가족'은 영화감독인 아버지 강문수(84) 씨와 서울대학교 성악과 출신인 아내 주영숙(75) 씨가 자녀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76년 가족음악단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중 셋째 강인엽(49)이 20여 년 만에 싱글음반 '세 여자 이야기'를 내고 복귀했다. 여섯째이자 형제 중 홍일점인 '분홍립스틱'의 주인공 강애리자(44)는 오빠의 음반 홍보를 위해 미국에서 건너와 함께 자리했다. 두 사람은 현재 나무자전거로 활동중인 강인봉(40)의 형, 누나다.

'나의 작은 꿈' '너 나의 미소'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던 작은별가족은 84년까지 9명이 활동하다 몇몇 멤버의 솔로 활동과 강애리자의 결혼 등으로 80년대 중반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중 솔로로 데뷔한 강인엽은 86년 '슬퍼하지 말아요'를 끝으로 전업해 '젊음은 가득히' '우정의 무대' '국군방송 위문열차' 등 95년까지 방송 프로그램 악단장으로 재직했다. 이후 음원 관련 벤처회사를 운영하던 그는 20여 년 만에 가수 활동에 뜻을 품고 새 싱글을 발표했다.

반면 86년 초 오빠의 친구와 결혼한 강애리자는 88년 서울올림픽 전야제 무대를 끝으로 가수 생활을 접고 광고음악, 만화영화 주제가 작업을 했고 10년 전 미국 뉴저지로 이민, 현재 LA 인근에서 남편과 1남1녀와 함께 주부로 살고 있다.

긴 공백기 끝의 복귀에 대해 강인엽은 "작년 장남이 군입대 신체검사를 받을 때 함께 갔는데 차에서 기다리는 3~4시간 동안 문득 '무대에서 노래하는 게 내 일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세 여자 이야기'에는 다섯째 강인구(대학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가 작곡한 타이틀곡 '아내의 생일'을 비롯해 강인엽의 곡 '역시 내 딸'과 '그리운 어머니가'('우정의 무대' 테마곡)가 수록됐다. 이 땅에 사는 남자에게 가장 소중한 세 여자의 이야기를 솔직한 가사로 담아내 대중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강인엽이 나지막이 읊조리듯 노래하는 음색에는 마음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

강애리자는 "음반 수록곡은 늘 그리운 어머니,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내, 소중한 딸을 주제로 해 모두 우리의 얘기이며 현재 혹은 미래 누구나 겪는 감정들"이라면서 "시집간 후 아버지는 6개월간 내 침대에서 주무시며 오빠들이 내 방에 접근조차 못하게 하셨다. 딸을 생각한 그 마음을 헤아리니 가슴이 찡해졌다"며 오빠 노래에는 가족의 참사랑이 깃들어 있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강인봉과 함께 22일 방송하는 KBS 1TV '열린음악회' 녹화에서 '나의 작은 꿈'과 '분홍립스틱'을 불렀다. 이 무대를 지켜본 강인엽의 아들은 "언젠가 아버지의 노래를 듣고서 '아직도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무대 뒤에서 눈물을 훔쳤다. 복귀와 함께 음원 관련 회사를 정리한 강인엽은 "감격하는 아들의 모습에 정말 다시 노래하길 잘했구나"라고 생각했다.

강인엽이 솔로로 나서지만 뒤에는 든든한 지원군 작은별가족이 있다. 강인엽은 "지금도 작품 활동을 하는 아버지의 권위는 하늘을 찌른다"고 말한 뒤 "음반을 냈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릴 때 무릎을 꿇고 몇 시간 동안 야단을 맞았다. 아버지가 우리를 격려하고 칭찬하시는 방법"이라며 웃었다.

강애리자는 "내가 미국가기 전까진 모든 형제가 생일, 명절 때 1년에 40~50차례 만났다. 가톨릭 집안으로 주말엔 미사에 참여하고 항상 함께 식사를 했다"며 "오빠의 음반은 작은별가족의 음반이고 나 역시 대리 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한편 작은별가족의 재결합과 강애리자의 솔로 복귀에 대해서는 여운을 남겼다. "어린 시절 생활이 음악이었고 음악이 생활이었다"는 강애리자는 "우리는 가족이니 해체라는 건 없었다. 언젠가 작은별가족이 다시 활동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장담 못하겠다"고 했다.

이어 솔로 복귀에 대해서도 "대학생, 중학생인 아이들이 더 성장하면 음악 공부를 하고 싶다. 지금은 복귀할 생각이 없지만 몇 년 후 음반을 다시 낼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작은별가족의 6남1녀 중 첫째 강인호, 둘째 강인혁, 넷째 강인경은 해외를 오가며 사업에 한창이고 셋째 강인엽, 다섯째 강인구, 일곱째 강인봉은 여전히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다. 여섯째인 강애리자는 스스로 '솥뚜껑'을 운전중이라고 한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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