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오수개 설화 속에서 걸어나온다

2006. 1. 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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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 오수리 주민들 복원나서… 문헌·증언 등 토대로 모델 완성

김개인은 거령현(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 사람이다. 개 한 마리를 길렀는데 매우 귀여워했다. 어느날 외출할 때 개도 따라 나섰다. 개인이 술에 취해 길가에 잠들었고, 마침 들불이 번졌다. 개는 가까운 곳의 냇물에서 몸을 적셔 와 주위의 들풀에 비벼 불길을 막고 기운이 다해 죽었다. 개인이 깨어나 감동해 노래를 짓고 무덤을 만들어 장사지낸 뒤에 지팡이를 꽂아 표시했다. 이 지팡이가 자라나 이곳을 오수(獒樹)라고 불렀다."

고려시대 최자가 지은 '보한집'에 실린 내용이다. 지금도 전북 임실군 오수리에 가보면 오수의견비로 전해지는 비석이 있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오수개는 아쉽게도 없다.

오수리 주민 심재석씨(49·임실생약 대표)는 오수개의 설화를 잘 알고 있다. 오수라는 지명 자체가 '보한집'에서 실린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오수 지역 주민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오수개를 되살려야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 '보한집'에 실린 오수개 이야기

계기가 된 것은 1991년쯤 오수의견비를 살펴보던 부산교대 이신성 교수와 오수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였다. 당시 이 교수는 심씨에게 '오수의견비와 오수개의 가치에 대해서 지역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때 심씨는 '외지 사람도 오수개에 관심을 가지는데 오수지역민인 나는 무엇을 했나'라고 생각했다.

이후 오수개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하던 그는 1995년 10월 오수면청년회의소 회장에 선출된 뒤 오수개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추진했다. 사실 그가 청년회의소 회장에 도전했던 것도 오수개 종합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였다.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오수개육종사업 ▲의견공원조성사업 ▲애견동물원 등 세계적인 명견명소 조성 ▲경견장 유치사업이다. 그는 청년회의소 회장의 자리를 빌려 군청에 관련 계획을 제출, 사업을 실행시켰다. 가장 먼저 빛을 본 것은 오수의견공원 조성사업이다. 1996년에 시작된 조성사업은 2002년 12월에 끝났다.

이와 동시에 그는 오수개육종사업도 추진했다. 그러나 무턱대고 복원사업을 추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수개에 관한 이야기는 전해지지만, 오수개의 생김새나 색깔 등 오수개 복원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오수개 모델을 먼저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군청에 사업비를 요구, 1000만원을 얻어냈다. 그는 이 돈을 들고 서울에 있는 한국동물보호연구회 회장인 윤신근 박사(동물학)를 찾았다. 윤 박사도 오수개에 관심이 있던 터라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여러 학자를 모아 오수개 모델을 만들었다. 직접적인 단서가 남아 있지 않은 까닭에 ▲고대 동북아지역 개의 혈통 ▲현지에서 발견한 개뼈 ▲주민의 증언 등을 기초로 오수개가 '티베탄 마스티프 종의 혈통을 이어받아 한반도 남쪽에서 토종화한 진도개 크기의 개'라고 결론지었다. 냇물에 뛰어들어 털에 물을 적실 정도면 털이 너무 길거나 짧지는 않았을 것이고 민첩한 행동을 했으니 몸집이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에 근거해 사이버모델(그림)을 완성했다.

사이버모델은 복잡했던 오수개의 생김새를 하나로 통일했다. 당시 오수리에는 오수개 동상이 세 군데 있었는데 제각각 진도개와 삽살개, 세퍼트와 비슷했다. 심씨와 청년회의소 회원들은 동상을 교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을 끝내고 나니 주민 사이에서 오수개가 실제로 돌아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퍼졌다. 이 지역에서는 매년 청년회의소를 중심으로 의견문화제를 개최하는데, 정작 주인공이 없어 맥이 빠졌기 때문이다.

심씨와 지역 주민들은 1999년 7월 오수개육종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군청에 지원금을 요청했다. 반응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1000여 년 전에 이미 사라진 개를 복원하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설득을 계속했다. 결국 1999년 10월쯤 2004년까지 6년간 5000만원의 지원금을 내기로 약속을 받았다.

일단 오수개의 직계일 것으로 추정되는 티베탄 마스티프를 교배해서 오수개를 육종하기로 하고 14마리를 조달했다. 민간주도인 육종사업은 정관일 오수개육종사업소장(36)의 몫이었다. 심씨로부터 오수개 육종사업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은 정 소장은 1999년 자신의 땅에 견사와 훈련장을 만들어 육종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가는 불과 한달에 100만원에 지나지 않았다. 운영비도 지원이 되지 않아 월급의 절반 정도를 사용했다. 생활이 불가능한 까닭에 틈틈이 생강 농사를 지어 살림에 보탰다.

티베탄마스티프 순종교배로 육종

사실 5000만원으로 육종사업을 하기는 쉽지 않다. 육종견은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고급 사료를 먹어 사료값만 1년에 35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그밖에 다른 경비까지 더하면 1년 경비는 5000만원은 훌쩍 넘는다. 오수개육종사업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오수지역 향우회나 지역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지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액수가 1000여 만원에 달한다. 지난해부터는 DNA 검사나 연구비조로 임실군의 지원금이 1억원으로 대폭 증액돼 사정은 나아졌다.

육종은 티베탄 마스티프를 순종교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선 오수개 모델과 가장 가까운 형태의 티베탄 마스티프를 들여왔다. 교배를 통해 나온 새끼 중 몸집이 작고 색깔이 황색이며 털길이가 중간인 녀석을 골라냈다. 그리고 이를 다시 교배를 통해 모델과 가까운 녀석을 골라낸다. 그리고 다시 교배를 실시한다. 1년에 한 번 교배를 하는 까닭에 지금까지 7대가 태어났다. 현재 사업소에 있는 오수개 후보견은 어미개 70마리와 강아지 26마리, 앞으로 태어날 강아지 60여 마리다.

선발 작업은 윤신근 박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오수개연구위원회 소속 전문가들이 한다. 이들이 선별 작업을 통해 '이 암컷과 이 수컷을 교배시켜야 한다'고 정하면 정 소장이 교배를 담당했다. 하지만 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원하는 상대가 있다. 아무리 발정기에 수컷과 암컷을 한 곳에 가둬놓아도 어느 한쪽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배는 불가능하다. 강제로 교배시키는 방법도 시도해봤지만 암컷의 몸부림에 수컷이 다치는 일도 허다했다. 결국 정 소장은 지난해 인공수정기술을 배웠다. 반드시 지정된 수컷 암컷의 자견이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남다른 애정과 노력을 쏟아부어서일까, 육종사업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육종의 'ㅇ'자도 모르던 그는 이제 오수개 육종사업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복원되고 있는 오수개는 모델의 약 80% 정도에 도달했다고 한다. 좀더 모델에 가깝게 품종을 개량한 뒤 2007년 말까지는 오수개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다. 이후에는 오수 지역 주민들에게 오수개를 분양하고 품종을 고정시킬 예정이다.

오수개 복원 계획을 처음으로 내놓았던 심재석씨는 "'1000년 전의 혼을 일깨워 향후 1000년을 준비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며 "오수개 복원이 성공한다면 오수지역이 오수개로 먹고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힘으로 이뤄지고 있는 오수개 복원사업이 열매를 맺을 때가 다가오고 있다.

<임실/정재용 기자 jj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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