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필 "박종팔은 죽마고우"

2003년 여름 전WBA슈퍼미들급 챔피언 박종팔과 라이벌전을 벌여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킥복서 이효필(48·사진). 그러나 이후 타이슨과의 대결이 무산되면서 그는 격투팬들로부터 '실언을 일삼는다'는 비난을 사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레슬러 노지심, 호주의 킥복싱 챔피언 폴 스팅 슬로윈스키와의 대결 또한 모두 없던 일이 됐기 때문이다. 급기야 올 초 최홍만에게 "격투 선수로서 준비가 안 됐으니, 차라리 나와 승부를 벌여 이긴 사람이 K-1에 나가자"고 했을 때 팬들의 냉소는 극에 달했다.
그러나 26일 만난 그는 당시의 제안은 주목을 받기 위해서가 아닌 모두 진심이었다며 시합이 무산된 데에는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에는 제가 운동선수에, 프로모터까지 모든 걸 도맡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타이슨과의 대결을 추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끼에게 도움을 청해 추진을 해봤지만, 타이슨 측에서 50억원이 넘는 돈을 요구하는 바람에 결국 시합이 무산될 수밖에 없었죠."
돈 문제 외에도 시합방식 조율 또한 문제였다. "노지심 선수는 프로레슬러이기 때문에 종합격투룰을 고집하죠, 저는 또 입식타격룰로 하자고 그러죠. 좋은 시합이 될 것 같아 아이디어를 내봤지만, 경기방식에 관한 이견으로 그 때마다 이뤄질 수가 없었습니다."
최홍만과의 대결 제안은 격투가로서의 자신감과 후배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선배의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최홍만 선수는 대단한 선수입니다. 탄탄한 근육과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펀치력 등이 일품이죠. 당시는 최홍만 선수가 격투기라고는 모르는 햇병아리였습니다. 솔직히 그와 정정당당하게 붙어서 정말 격투기란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최홍만 선수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합 추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현재 계획하는 일은 두 가지. 첫째는 국내 헤비급 입식타격계 최강자로 꼽히는 이면주, 이번 코마 헤비급 그랑프리 준우승을 차지한 일본의 니무라와 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그 자신도 '솔직히 말해서 버거운 상대'라고 인정하는 호주의 폴 스팅 슬로윈스키도 대전 카드로 고려 중이다. "애초 이면주 선수와는 일반 수준의 대전료 외에 큰 돈을 얹어주면서 경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코마 경기를 통해 그의 경기력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웃돈 없이, 통상적인 대전료 수준에서 경기를 하자고 제안 중입니다. 만약 이루어지지 않으면, 니무라나 슬로윈스키와 시합을 가질 예정이에요."
그가 이번 시합개최를 자신할 수 있는 이유는 정식 프로모터가 생겼기 때문이다. 극동프로모션의 최영찬 대표이사는 "프로모터를 통한 정식계약이 될 것이기에 만약 시합 발표 이후 취소가 되면 법적 분쟁이 일게 된다"면서 "이효필 선수는 오로지 운동만 하고, 시합 개최와 관련된 모든 것은 극동 프로모션에서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 그는 내년부터 신인 발굴을 위한 토종 입식타격대회를 주최한다. 대회명은 '왕중왕'을 가린다는 의미의 '킹맨'(King Man). 그는 대표이사의 직함으로 진행 상황 전체를 총괄한다. "선수와 프로모터, 모두를 해봤기 때문에 최대한 선수의 입장을 고려한 대회로 만들 것입니다. 국내 격투기가 아직 왜 세계적 수준에 이르지 못한지 아십니까. 운동만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못해서 그래요. 일년에 3회, 총 상금 10억 규모의 대회를 추진 중입니다. 현재 80%정도 완료됐습니다."
'킹맨'의 후원은 '뉴월드모던주택'이란 국내의 한 건설업체가 맡았다. "한 연구기관의 보고서대로 격투기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 것입니다. 그런데 국내 대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기업들의 후원이 있어야 해요. 격투기하는 사람들이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이번에는 다행히 뉴월드모던주택측에서 큰 뜻을 품고 투자를 해주셨습니다."
그는 유도와 레슬링, 복싱 등 수많은 올림픽 메달이 증명하듯 우리 국민은 '격기'에 타고난 소질을 지녔다고 설명한다. 현재 세계적 격투가가 나오지 못한 이유는 입식타격과 종합격투기라는 신흥 종목에 맞는 지도자들의 기술과 훈련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금 우리 격투계의 가장 큰 문제는 배가 고프다는 것이에요. 입식타격단체들만 70여 개가 난립해있죠. 통합을 해서 규모를 갖춘 대형 대회가 나와야 합니다. 3~4단체가 체계적으로 경쟁을 벌인다면 지도자들의 기술향상 또한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와 관련해 이면주에 대해서도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는 "격투가라고 한다면 상대를 KO시킬 수 있는 자신만의 주특기가 있어야 하는데 이면주는 그게 없다"면서 생각 같아서는 자신이 지도를 맡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안되는' 복싱스킬 수련보다는 킥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의 주특기는 알려진 바대로 "로킥"이라고 강조한다. 레미 본야스키, 어네스트 호스트의 회초리와 같은 로킥에 비해 날렵함은 떨어지지만, 타이어를 터트릴 만한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로킥의 생명은 타이밍이라면서 최상의 타이밍은 상대의 왼발이 들릴 때라고 말한다. "아침에 청계산 산행과 함께 조기 축구를 하는데 축구야말로 로킥 타이밍을 익히는 데 최상의 운동입니다. 왼쪽 다리에 힘을 싣고 오른발로 움직이는 물체를 차는 운동이니까요. 파워 훈련은 타이어와 샌드백을 하루에 1000번 넘게 차는 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2003년 재기(?)이후 이어진 지금까지의 활동. '언론 플레이에 능하다'는 격투팬들의 곱지 못한 시선과 달리 그는 얻은 것이 많다고 말한다. 프로레슬러인 노지심과도 시합 제안 이후 둘도 없는 좋은 친구가 됐다. 박종팔과는 여전히 '죽마고우'다. "사람들은 종팔이 친구와 제가 라이벌전 이후로 말도 안할 거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우린 평생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거든요. 물론 라이벌전에서 제가 이겨 그 친구의 명예에 먹칠한 점은 사실이지만 종팔이 친구는 개의치 않아요. '우리 둘이 직접 이야기한 것 말고는 남들 말 듣고 화내지 말자'서로가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섭섭하면 직접 전화해서 따지거든요. 결국 우리 둘 모두 성숙해지는 시합이었죠."
세계일보 인터넷뉴스팀 이창호 기자 tabulara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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