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올해의 방송인 오유경, "여자 아나운서는 소모품?"

2005. 9. 13.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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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글 김용호 기자/사진 임진환 기자>

KBS 2TV의 고급 시사정보 프로그램 '생방송 시사투나잇'의 여자아나운서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 일간지의 남자기자가 내뱉은 프로그램의 여자 아나운서에 대한 폭언은 여자 아나운서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깊게 고민하게 했다.

그리고 '시사투나잇'은 새로운 진행자를 맞았다. 오유경 아나운서였다. 그녀의 당당함은 일단 논란을 일단락시켰다. 오유경 아나운서는 지난 3일 열린 올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아나운서 부문 올해의 방송인상을 수상했다. 수상 소감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아나운서가 되기가 힘들었지만 좋은 방송인이 되는 것은 더 힘들다"고 말했다.

최근 아나운서들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또한 예능 오락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나운서들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있다. 최근 오유경 아나운서를 만났다. 11년차 고참 아나운서인 그녀가 후배들에게 의미있는 조언을 들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지난 한국방송대상에서 아나운서 부문 올해의 방송인상을 수상했다. 먼저 축하드린다.

▲ 입사할 때부터 꿈꾸던 상이었다. 아나운서가 진행자로서 받을 수 있는 상 중에서는 가장 큰 상이고, 황수경 황정민 전인석 아나운서에 이어 KBS에서 4년 연속 수상하게 된 것도 의미가 있다. 아무리 방송국 안배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방송협회의 원칙이 있기는 했지만, 한 방송국에서 4년 연속 수상하게 할까, 사실 반신반의 했는데 결정되고 나니 더 보람이 있다.

- 개인적으로 상을 받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아나운서실에서 추천해 주신 것, 심사위원들께서 잘 봐주신 것이 일단은 가장 직접적인 이유겠다. 그리고 '생로병사의 비밀', '시사투나잇' 등 프로그램이 주는 무게감. 가족의 지원 등이 행운의 열쇠가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입사 후부터 지금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아나운서보다는 내 역할을 잘 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었는데, 결실을 맺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력해온 것에 대한 일막 일장을 끝내는 느낌도 든다. 나의 11년간의 아나운서 생활을 정리해 볼 기회인 것 같다.

- 최근 들어 아나운서의 역할이 변하고 있다. 연예오락 쪽에서 활동하는 아나운서도 많다.

▲ 많이 변했다. 예전 김병찬 손범수 아나운서가 전형적인 아나운서의 역할을 변화시켜 오락 프로그램이라는 영역을 개척했다. 아나운서가 뉴스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가깝게 다가서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요즘은 아나운서가 너무 연예 오락 쪽으로 나가면서 교양 아나운서의 폭이 좁아지고 말았다. 결국은 교양과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뿌리가 되고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오락은 아나운서에게 가지와 같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가 빛날 수 있는 것이다. 고사되어가는 교양프로그램과 뉴스의 르네상스를 가져와야 한다는 숙제가 생겼다.

- 정말 신세대 아나운서들은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 더 치중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 요즘 젊은 아나운서는 타고난 끼가 대단하다. 스타를 꿈꾸는 아나운서도 있다.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인기는 물거품이다. 왜냐하면, 인기인이라는 것은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오고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인기'를 목표로 하게 되는 노력은 때로 실력을 쌓는 일과는 거리가 멀 경우가 있다. 그래서 아나운서는 인기를 쫒으면 안된다. 인기가 따라온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인기를 목표로 하면 안된다.

- 스타를 꿈꾸는 아나운서들에게 선배로서 한마디 충고를 해준다면?

▲ 특히 여자 아나운서들에게 "공주가 되기보다는 여왕이 되어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소위 말하는 '공주'가 많다보니......(웃음) "스타가 되기보다는 주인공이 되어라"라는 말이다. 공주는 누군가 만들어 주는 환경에 의해 되어지는 것이고, 타고난 것이다. 여왕은 자신이 개척해 나가야 할 막중한 임무가 있고, 늘 고달픈 업무에 시달려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힘은 공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왕에게 있지 않은가? 스타는 스포트라이트에만 의존한다. 하지만 무대의 주인공이 늘 스타인 것은 아니다. 후배들이 그런 부분에 의미를 두었으면 한다. 물론 아나운서실에서 스타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스타만 있는 아나운서실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 뉴스는 전문 기자가, 교양 프로그램은 외부 전문인사가 선호되는 상황에서 아나운서들의 자리가 많이 위축이 된 것 같다.

▲ 그것은 아나운서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스템의 문제로 보인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심화되는 현상인데, 기자들이 직접 방송하는 것을 선호한다. PD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에게 캐스팅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언론은 왜 숙련되지 않은 진행자들에게 질타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전문성 부분에 대해서도 아나운서들은 기자들보다 현장 감각이 모자란다고들 한다. 하지만 정작 프로그램을 보면 기자들도 역할이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기자들 중에서도 예쁘고 젊은 여기자가 앵커를 한다. 연륜과 경력을 쌓은 여기자가 아니다. 결국 그들도 아나운서들이 하고 있는 역할 이상은 아니다. 그러면 진행능력이 더 뛰어난가? 시스템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최근 아나운서들의 전문성 부분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전문성 부분에서 진행 능력이라는 것은 배제되고 있는 분위기라는 것에 놀랐다.

▲ 물론 끊임없이 공부해야하지만, 아나운서의 진행능력 또한 전문성이다. 다들 좁은 관문을 통과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 전문직종이 많지 않다. 아나운서는 그중의 하나이다. 노동부 직업분류표에도 전문직으로 되어 있다.

외부 인사가 진행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막고 싶지 않다. 방송은 열려있는 공간이 아닌가. 하지만 방송진행능력에는 여러 종합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내용적 전문성을 갖춘 외부인사가 진행능력까지 훈련이 되어서 바바라 월터스 같은 진행자가 된다면 박수를 쳐 줄 일이다. 그런 앵커의 존재를 시청자도 바란다고 생각한다. 단 아나운서들에게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오히려 아나운서들에게 기회는 차단된다. 조직 이기주의로 말 할 것은 아니다. 큰 틀 안에서 진행자를 만들어내야 한다.

- 아나운서들에게 기회가 차단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 전문성 있는 여자 아나운서의 출현을 방송국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아나운서들은 기능인으로서의 진행자 이상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위기의식을 느끼고 공부를 하지만 지원이 없다. 황수경, 손미나, 신윤주, 김병찬 아나운서 등 많은 아나운서가 해외 연수를 다녀왔지만 아무도 회사에서 지원받아 가지 못했다. 얼마전 황수경, 손미나 아나운서가 유학 갔다가 복귀했다는 기사가 뜨자 인터넷 댓글에, 요즘 KBS가 경영난에 시달린다더니 돈도 많다...라고 써 있더라. 오해다. 다들 휴직하고 개인비용으로 다녀왔다. 아나운서들이 내공을 쌓기 위해 투자하는 것에 방송국이 가치를 두고 있는지 의문이다.

- 9시 뉴스의 진행만 보아도 여자 아나운서들의 역할은 한정되어 있다. 젊고 예쁜 아나운서들이 선호되고 나이가 들면 다른 아나운서로 교체된다.

▲ 시스템의 개선과 개인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후배들이 뉴스를 지명도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커리어를 얻는 것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것을 커리어로 활용한 예가 없다. 9시 뉴스를 끝내고 다른 프로그램에서 앵커로 활동하고 있다면 그것이 훌륭한 커리어가 된다. 하지만 뉴스진행으로 유명해지고 보통은 다른 길로 간다. 현재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정세진 아나운서에게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그녀는 젊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자신의 역할에 대해 개인을 뛰어넘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 오유경 아나운서도 '시사투나잇'에서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 여자 아나운서의 역할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는 듯 보인다. 자리도 왼쪽이고 멘트도 더 많이 한다.

▲ 사실 멘트하는 퍼센테이지를 따져 보면 내가 많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기존의 방송구도에서는 남자가 많이 하기 때문에 체감상 많이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면도 있다. 또 여자 진행자가 선배고 남자가 후배인 구도도 낯설다고 한다. 새로운 시도니까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자가 난 척 한다고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그런 비판을 들으니 여자 아나운서들은 꼭 소모품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사실 경영상의 효율성도 중요하다.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이유는 있다. 하지만 방송은 한 사람 한 사람의 함량이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서툴러서 매력 있다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말이 어눌하면 진실해 보인다고 부가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기능을 연마해서 세련된 화술과 태도가 최고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을 칭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나운서는 말을 너무 매끄럽게 한다고 오히려 매력 없게 본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후배들 중에는 전형을 지키지 않고 연예인만 따라하는 경우도 있다. 보다 즐거운 방송을 위해서 연예인의 장점을 접목시키는 것은 좋다. 그러나 아나운서 본연의 원칙을 버리고 다른 것만 쫒으면 결국에는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 먼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 아나운서에 대한 질투 심리도 있는 것 같다. 보통 개편 때마다 아나운서실의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라고 하던데?

▲ 어떤 아나운서든 간에 대부분은 스포트라이트 받는 사람을 부러워하게 된다. 그것은 인지상정이다. 신입사원 때는 많이 울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이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향해 가면 된다. 그 길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최소한만 속상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남을 부러워한다고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만약 지금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고 있다면, 시간을 번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덜 바쁘면 그동안 공부도 할 수 있고 자신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되도록 노력을 하면 된다.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사실 지난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 중 "아나운서 되기도 힘들었지만 사실 좋은 방송인이 되는 것은 더 힘들다"고 말한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인터뷰 요청을 하게 됐다.

▲ 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문이 정말 좁다. 내가 대학생 일 때 아나운서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나와는 괴리감을 느꼈다. 하지만 문턱이 높다고 해서 그것이 목표일 수는 없다. 그것이 목표가 되면 방송국 생활이 허탈하고 적응을 못한다. 방송국 생활은 철저하게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이다. 특히 매순간 다른 사람의 평가가 중요한 '진행자'라는 역할은 성취감을 갖기 힘들다. 노력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부분과 노력을 덜 했는데도 결과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 괴리를 좁혀가는 것이 중요하다.

- 또 수상 소감 중 "아름다운 불도저"라는 표현도 인상적이었다.

▲ 그 말이 많이 화제가 되었다. 방송대상 수상을 축하해주러 인터넷 팬카페를 대표해서 한 분이 꽃다발을 들고 오셨는데 나와의 인터뷰 소감을 올리면서 표현해주신 것이다. 내가 앞으로 개척해야 할 부분이 많은데 그것을 잘 헤쳐 나가라고 독려해주신 거라 생각한다.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인용을 했다. 또 그날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함께 찾아 온 분이 있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자신이 중학생이었을때 아버지께서 몸이 많이 아프셨고 혼자 도시락 싸서 학교를 다니는 힘든 상황이었는데 새벽 5시에 내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용기를 얻곤 했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단다. 눈물이 났다. 방송의 보람이 그 말 한마디에 있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사람들이 나한테 전형적인 아나운서라고 한다. 그런데 시청자들께서 아나운서 하면 언뜻 떠오르는 얼굴 중에 정말 전형적인 아나운서가 몇 명이 있을까 생각을 해보면 의외로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젠 아나운서답다는 말이 어떻게 생각하면 욕처럼 들린다. 아나운서답다는 것이 칭찬이 될 수 있는 분위기를 원한다.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 아나운서실에서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많이 지켜봐주었으면 좋겠다.

인터뷰가 끝난 후 오유경 아나운서는 "이런 질문들을 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나운서들도 스스로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것을 용기있게 표현해 준 오유경 아나운서에게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녀의 말들은 현장의 아나운서들이나 아나운서라는 대상을 관심있게 바라보는 보든 이들이 함께 고민해보아야 하는 측면이 많다. 특히 최근 인기 있는 스타 아나운서에 열광하는 이들이 한번 깊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yhkim@newsen.co.kr/photolim@new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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