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박찬욱 '친절한 금자씨'서 복수3부작 완결

<뉴스엔=김용호 기자>영화 ‘친절한 금자씨’가 처음 좋았던 부분은 영화 초중반에 이르기까지 박찬욱 감독이 별다른 야심을 부리지 않은 듯 보였다는 점이다.흥행 성공에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이라는 감투까지 써버린 ‘올드보이’ 이후, 이렇게 가볍고 펑키한 영화로 유쾌함을 추구하기가 그렇게 쉬운 선택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영화의 중반에 이르러 박찬욱감독은 기괴한 방식으로 자신의 미학적 야심을 털어낸다.영화 중반, 금자씨가 손님들을 폐교의 교실 안으로 초대하면서부터 펼쳐지는 이질적인 시퀀스는 영화의 형식적, 내러티브적 일관성은 물론 이전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미덕들까지도 모조리 깨부순다.금자씨의 유쾌한 행적을 좇으며 영상언어에 의존하던 전반부에 비해, 영화는 후반 대사 언어가 중심이 되어버린다. 사실 이 영화 내에서 사건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이 중심으로 부각되면서 매력적인 금자씨는 실종되어 버린다. 그 대신 수많은 낯선 사람들이 끼어들어 다분히 연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버린다. 영화의 후반부는 완전히 다른 영화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결국 박찬욱 감독은 자기가 하고 싶은 두 가지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에 억지로 우겨넣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금자씨 실종사건’의 문제점은 돌아온 금자씨가 변했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 금자씨의 인간관계는 타산적이고 계획적이었다. 친절한 금자씨라는 것 자체가 계산이었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정말로 친절한 금자씨가 되어버린다. 이는 금자씨 캐릭터를 왜곡시켜 버린다. 결국 영화가 추구하는 결말로 가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영화 속에 커다란 구멍이 난 듯하다.박찬욱 감독은 대사 절제의 미덕을 알고 있다. 김기덕 감독이 아예 대사를 생략해 버리는 경우라면 박찬욱 감독은 대사를 절약한다. 경제적으로 단 한 두 마디로 상황을 압축시킨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올드보이’에서 시작했고 ‘쓰리 몬스터’에서 증명된 일이기도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실제로 대사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대사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번 ‘친절한 금자씨’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동어 반복되는 대사는 유치해진다.박찬욱감독은 ‘올드보이’가 나왔을 때 “‘복수는 나의 것’이 차가운 영화라면 ‘올드보이’는 뜨거운 영화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친절한 금자씨’는 어떤 온도인지 모르겠다. 미지근한 영화라고 하면 맞나? 복수에도 온도가 있다면 차가운 복수나 뜨거운 복수나 결국 자기 파멸로 돌아온다는 의미라면 금자씨는 복수를 한 인물치고 가장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 ‘복수는 나의 것’의 송강호나 ‘올드보이’의 최민식의 결말과는 다르다.영화의 나레이션 기법은 좋았다. 이것이 사실은 영화의 키치성을 부각시킨 것인데, 그것이 묘하게 복수라는 소재 자체의 진부함을 덜 키치하게 만드는 좋은 효과가 나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점으로 꼽고 싶다.이영애도 좋았다. 이영애라는 배우는 원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현대 도시여성의 차갑고 히스테리함과 동시에, 전혀 반대인 현대 도시여성답지않은 상냥함과 다정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마지막에 몇 초 안되는 시간동안 웃고 우는 표정을 반복하는 장면은 지금까지의 이영애 캐릭터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최민식은 ‘한국의 멜 깁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연한 대부분의 영화에서 고문을 당한다.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고문을 당하는데, 이번에는 복수의 표현에 대한 상상력 부족으로 보인다. 금자씨는 원수를 앞에 두고 처리 방법을 고민한다. 이것은 금자씨의 고민임과 동시에 창작자 박찬욱의 고민이기도 한다. 결국 방법을 찾지 못하는 금자씨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다. 이는 꼭 창작자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복수 3부작을 만들겠다는 박찬욱의 미장센 표현능력이 뛰어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다른 소재를 같은 테크닉으로 찍는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과는 반대이다) 같은 소재를 다른 테크닉으로 찍는다. 그것은 점점 만화적이 되어간다. 만화적 편집효과는 확실히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향이다. 잔혹한 범죄 장면에서 아이러니와 쿨함을 추구하게 되었다.분노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쿨하게 바라보는 것들은 개그펀치적인 요소가 있다. 이것은 결국 블랙 코미디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과연 박찬욱이 그렇게 유머러스한 터치가 가능한 감독인가 하는 데에는 의문이 든다.결국 ‘친절한 금자씨’는 박찬욱 감독의 장점과 한계가 여실하게 드러난 일종의 부조리극이 되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안녕 금자씨”, 꼭 ‘은하철도999’의 마지막 장면 같다.yhkim@newsen.co.kr손에 잡히는 뉴스, 눈에 보이는 뉴스(www.newsen.co.kr)copyrightⓒ 뉴스엔.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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