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기기 맛이 다르다

[한겨레] △ (사진설명) (위)서울 대학로 TJ미디어의 질러넷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래)종로2가에 위치한 금영의 악쓰는 하마 노래방의 내부. 노래방의 풍경과기술은 점차 닮아가지만 기기 속 보이지 않는 소리의 대결은 더 치열해진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젊게 질러” 태진, “네박자로” 금영우리 나라 국민 가운데 그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고 단정하겠다. ‘금영’양과‘태진’군. 만인의 연인이다. 2005년 전국 3만5천여개의 노래방에선 누구든태진(올 1월 태진은 ‘TJ 미디어’로 이름을 바꿨지만) 아니면 금영을 만나게된다. 단란주점 등까지 치면 대략 7만 업소. 한반도 통틀어 1000명당 1곳 꼴이다.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중반, 국민은 외로울 때도 즐거울 때도 구분없이 노래방을 드나들었다. 노래방 기기 하나가 한달에 최고 500만원의 수익을올리던 시절이다. 태진과 금영은 지치지 않고 노래를 반주해줬다. 살아오면서 한번도 만점을 받아본 적 없는 이들에게 무시로 100점을 줬고 들러리 인생에게팡파르를 울려주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1990년대 말 금융 환란을 ‘경상’만입은 채 이겨낼 수 있었던 데에도 구겨진 우리네 일상을 위무하던 노래방의 공이10분의1 가량 있었다면 억지일까.노래반주기 양대산맥태진, 좀더 빠른 리듬 젊은측 즐겨찾아금영,울림있는 사운드 중년층 안식처로두 업체 시장 95% 차지찜질방에경마오락실에 자리를 찔끔 내주지만여전히 우리와 동고동락 한다지금 전국 노래방 기기의 50%는 금영이, 45%는 태진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우리가 그들을 안다 말할 수 있는가. 사실 태진과 금영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서로 경쟁적으로 반주 실력을 뽐내되 양대 산맥으로서 상호 보완하며 지금까지발전해온 탓이다. 태진의 윤재환 사장은 “금영과 태진이 시소를 하기 때문에,시장도 커졌고 고객의 만족도도 더 커진 것”이라며 “금영 없이 태진 혼자였다면노래방 문화나 시장 모두 망가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시각은 금영도마찬가지.◇ 금영방과 태진방 이 따로 있다. 기술은 결국 닮게 되어 있지만, 금영팬은 애면글면 금영 기기만을 찾고, 태진 쪽은 바득바득 태진 기기만을 찾는실정이다. 노래방 기기들이야말로 감성과 직접 교감을 하는 터라, 미세한 차이가기호를 가르고 문화를 구별짓기도 하는 것. 기기도, 팬들도 자존심 싸움이대단하다. 태진은 ‘질러존(노래방 명칭)’으로 대변되는 젊은이들의 아지트와연동하고, 금영은 금영하고만 거래하는 프랜차이즈 ‘송대관 네박자 노래방’이상징하는 중년층의 안식처로 이어진다. 금영은 원곡에 충실해 30~40대 이상이적응하기 편하고, 노래에 좀더 속도를 보태고 웨이브도 많이 넣는 태진엔젊은이들이 훨씬 더 매력을 느낀다.
◇ 금영과 태진 은 사실 노래방 기기업계의 후발주자다. 미디음악(컴퓨터가 만든 기계음) 세대다. 밴드가 연주한 기본음만 녹음해 재생하는낡은 방식의 아싸 시대와 엄연히 구분된다. 노래방을 잉태한 건 아싸였지만,청년으로 키운 건 태진과 금영이다. 후속 브랜드 개발과 마케팅에 실패하며주춤하던 아싸를 젖히고 94년부터 태진이 1위 업체로 등극하고, 그러자마자 바로뒤쫓아오는 금영과 ‘시소 게임’을 하면서 가능해졌던 것이다. 미디 음악의 틀아래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가 개발되면서 금영과 태진의 차이도 미세하지만뚜렷해진다.
◇ 호랑이 담배 피며 노래 부르던 시절 이었을 것이다. 1991년. 노래방혁명이 시작되던 그해 여름. 쭈뼛쭈볏 500원 동전을 꺼내며 커피 한 잔을 뽑듯노래를 뽑았던 곳. 혁명의 시작은 부산이었다. 가정 등에 팔았던 컴퓨터자동반주기만 있었던 시절, 부산로열전자가 가사를 입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어아싸의 컴퓨터 자동반주기에 입혀 부산 동아대 앞 100평 가게에 들여놓으며 처음‘노래방’이란 간판을 붙였다. 어울려 노래 부르며 춤을 췄던 대학가의 잔디가 두눈을 부릅떴고, 술도가에서 장단을 맞춰주던 젓가락의 허리는 여전히 꼿꼿했지만,노래방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됐다. ‘아싸’는 일순 전 국민을 가수로만들었다.
◇ 소리없는 소리의 대결 은 더 치열해진다. 이젠 휴대폰 벨 소리가 당시노래방 혁명가였던 아싸의 소리를 낸다. 태진은 섬세한 터치가 두드러지지만금영은 울림 있는 사운드를 특장으로 내세운다. 금영의 김인근 경영기획실장은“우리는 소리의 원천으로서는 업계 최고급에 속하는 일본 롤랜드사의 음원을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내세운다. 96년도엔 육성 코러스를 넣고 시디형반주기에서 하드디스크형 반주기로 전환하면서 태진을 젖혔던 금영의 필살기다.
賻? 태진은 미디 음악조차 넘어서며 지난해부터는 라이브 음악을 그대로 채취해또다시 재등극을 노린다. 지난해 5월 회사 1층에 마련한 30억원짜리 스튜디오에서함춘호, 이성열(기타), 신현권(베이스) 등 최고의 세션을 불러 직접 연주한 음악을담아내는 것. 안 그러면 미디 음악 기술이 워낙 뛰어나 외려 기능이 떨어진다.
대부분의 노래방은 속절없이 태진과 금영을 모두 구비해 입맛 따라 노래를부르도록 할 수밖에 없다.
◇ 사투리는 쓰지 않지만 지역 대결도 만만치 않다. 서울 출생의 태진은주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처음 부산에 둥지를 틀었던 금영은 지방에서 자신들의공고한 성을 구축해뒀다. 젊은 세대는 태진을, 기성 세대가 금영을 선호하는 것역시 소리를 넘어 문화의 차이에서 노정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작은다툼일 뿐 두 회사는 내처 달린다. 노래방 서비스로 아침의 신곡을 저녁에 부를 수있도록 인터넷 망이 기기와 연결됐고, 자신의 노래를 벨 소리, 컬러링,미니홈페이지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게 가능한 시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예전의 노래방이 있던 자리를 하나하나 꿰찬 찜질방, 경마오락실 등으로주저 없이 발걸음을 돌리는 국민들에게 서운한 감정도 못내 없지 않다는 금영과태진. 신곡 시장을 포함해 전체 노래방 관련 산업이 2조원선에서 포화상태에다다랐다는 경제적 진단과 여전히 가장 낮은 단가로 유흥을 즐길 수 있는 ‘국민오락’로서 변치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진단 사이에서 끙끙 갈등한다. 등허리에음표처럼 땀이 맺힐 때까지 노래를 불러제꼈던 서민들의 21세기 놀이 문화를 위해,또 하나의 새 혁명을 꿈꾸면서.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아싸’ 에서 ‘팅가팅가’ 까지 변신과 진화4천만 놀이터 ‘노래방’ 15년 풍속도 1991년 여름 부산 대학가에서 처음 문을 연 노래방은 단군 이래 최고의 빠른속도로 한국인들의 놀이문화를 변모시킨 주인공이다. 학생은 시험 끝나고노래방으로, 직장인은 회식 끝나고 노래방으로 달려가며 전국민의 뒷풀이 문화로성장한 노래방은 한 때 도우미, 주류 판매 등 불법 변태영업의 온상으로손가락질받기도 했지만 지금도 하루 200만명이 노래방에서 한 곡조 뽑으며스트레스를 푼다. 4천만의 놀이터, 노래방 풍속도의 변천사를 알아본다.
1991, 아줌마 동전 바꿔 주세요 초창기 노래방은 오락실의 기계처럼 500원짜리 동전을 넣어 한곡 씩 부르는형태였다. 100원으로 한 십분 너끈히 즐길 수 있는 오락실에 비해 훨씬 비싼 즐길거리였지만 노래방은 불과 1년만에 전국에 1만여곳이 생겨났다. 동전 노래방의시대는 한 시간에 5000원하는 시간제 노래방에 밀려 금방 몰락했다. 시간제노래방의 탄생은 안 그래도 설움받던 2절 가사에 ‘조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주어진 시간에 ‘더 빨리, 더 많이’ 부르고자 하는 열망은 1절 뒤 간주의 시작과동시에 정지 버튼의 작동으로 이어졌다. 92년 여름 노래방의 청소년 출입이전면금지되면서 교사들은 70년대 극장, 80년대 당구장에 이어 노래방 단속에바빠졌다. 그러나 청소년 10명 가운데 3명이 노래방을 출입을 했고, 초기왜색문화의 유입이라는 노래방 비판은 ‘직장인 음주 줄이는 건전한 회식문화’라는 긍정적 반응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1996, 전국민의 가수화, 전국토의 노래방화 90년대 중반은 바야흐로 노래방 전성시대였다. 시험 끝난 학생들, 1차 회식을마친 직장인들, 명절 때 모인 가족들은 노래방으로 달려갔고 야유회의 첫 준비품목은 기타에서 노래방 기계로 바뀌었다. 노래방 기계가 집 안으로 들어왔으며대기업들은 앞다퉈 사원 후생 복지 차원으로 휴게실에 노래방 기계를 설치했다.
‘노래방 면접’도 새로운 채용 풍속도였다. 또한 노래방 선곡은 신세대와구세대를 가르는 결정적 잣대였다. 40대 직장 상사들이 후배들에게 ‘꼰대’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최신 유행곡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랩을 연습해야 했다.
반면 노래방을 통해 구세대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뽕짝’ 음악이 세대간 화합의매개체로 신분상승하기도 했다. 영턱스클럽의 ‘정’처럼 뽕짝(구세대)과댄스(신세대)를 섞어놓은 노래들이 인기곡으로 떠올랐다. ‘노래방에서 떠야노래가 뜬다’는 불문율은 ‘정’처럼 단순하고 따라부르기 쉬운 대중가요를양산시켰다. 노래방에서 고독한 음치들을 위한 ‘노래교실’도 성업을 이룬시절이었다.
2000, 노래방 도우미에서 스와핑 장소까지 구제금융 사태 이후 실직자들의 대표적 창업직종이 된 노래방은 2000년대 들어3만개를 넘어갔지만 공급포화 상태에서 노래방은 정체와 퇴락의 길을 걷기시작했다. 살림 어려운 주부들의 돈벌이 욕구와 노래방의 불황 타개책이 맞물려90년대 말 등장한 노래방 도우미는 노래방을 불법 퇴폐영업의 주범으로추락시켰다. 초창기 때부터 논란이 됐던 불법 주류 판매가 기승을 부리기시작했으며 한 노래방 주인은 노래방의 주류 판매 금지 위헌 소송을 냈다가패소했다. 맥주 ‘카스’의 로고타입을 따라 만든 저알콜 탄산음료 ‘캐시’가한잔 걸치고 노래방을 찾은 손님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접대부를 두고 주류를팔면서 손님들을 눈속임하기 위해 ‘노래빵’, ‘노래바’ 등의 편법적 간판을달고 영업하는 유흥주점이 2000년대 중반까지 등장했고 노래방이 스와핑 장소로제공된 사실까지 보도되자 2004년부터 노래방 주인들의 자정결의대회가 이따금열리기도 했다.
2005, 카페같은 노래방, 인터넷 노래방, 핸드폰 노래방… 노래방을 찾는 직장인의 발길이 시들해지면서 노래방들의 살길 찾기도수만갈래로 퍼져나갔다. 대표적인 예가 주로 지하에 있던 노래방을 지상으로끌어올린 ‘수노래방’. 인테리어를 카페처럼 환하고 깨끗하게 꾸민 이 노래방이젊은 ‘가객’층에게 크게 어필하면서 어둡고 지저분하던 노래방 분위기가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초창기 20인치 텔레비전에서 전성기 멀티큐브로 발전했던모니터는 40인치 이상의 PDP 화면으로 바뀌었으며 비누거품 자판기, 드럼 자판기등 갖가지 아이디어 상품이 노래방 모퉁이를 차지하게 됐다. 또한 기계의 발전도급속도로 진행돼 음질 향상은 물론 자신이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를 인터넷에서벨소리로 내려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노래부르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옮겨받아인터넷 개인 홈피에 올릴 수 있는 ‘팅가팅가 노래방’ 서비스 등이 젊은 층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노래방의 초기투자비용이 높아지면서 노래방의부익부빈익빈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대학로에서 지난해 노래방을 연 한 업주는“쾌적하고 좋은 시설을 찾아 단골 노래방을 만드는 젊은 고객들이 늘어나면서시설이 낙후된 근처 노래방들은 일주일 걸러 한 군데씩 문을 닫는 것같다”고말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기기 1대당 2만5천곡 담아…1달에 1〜2차례 신곡 ‘업데이트’‘노래방’ 이것이 궁금하다 올 여름이면 노래방이 생긴 지 햇수로 정확히 15년째가 된다. 노래방에 대해궁금했지만 묻지 못했던 사안 5가지를 추려봤다.
◇ 도대체 몇 곡을 담나= 2005년 노래방 기기는 대략 한 대당 2만5천곡을담을 수 있다. 80년대 말 가정용 노래 반주기에는 200곡 수준, 93년 업소용기기에는 600곡 정도가 실렸다. 초창기에 견줘 4배 이상이 늘어난 것이다. 얼마나많은 곡을 사람들이 부를까. 노래방 고객의 7% 가량만 인기순위 10곡을 단골로찾을 뿐, 50% 정도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최소한 500곡이 필요하다. 고객의 80%정도가 3000곡에 이르는 다양한 노래를 찾는다.
◇ 태영과 금영의 시작은= 24년 전 자동차 오디오, 스피커 등을 만들기위해 세웠던 태진음향이 지금 ‘TJ 미디어’(태진)의 모태다. 윤재환(50) 대표의추억 하나는 전성기 노래방 산업의 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993년 지역의 한유흥업소에서 전 직원 수십여명이 갑자기 윤 대표 앞에 도열했는데, 노래방 기기때문에 장사가 잘 된다는 단 하나의 이유였다.
금영은 1989년 설립된 게임오락기 회사로 시작했다. 부산에 자리한 탓에 91년부산 안에서 삽시간에 노래방이 퍼지는 걸 지켜봤다. 그때 직원이 채 10명도안됐지만, 지금은 150여 명에 이른다.
◇ 신곡은 어떻게 새로 넣는지= 세 달에 한 차례씩 넣는 게 관례였다가,이젠 보통 한 달에 한 두 차례씩 신곡(칩)을 넣는다. 직접 기술자가 노래방으로간다. 지금은 태진이나 금영 본사와 기기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매일 업데이트도가능한 곳이 적지 않다. 신곡 업데이트 기술 발전과 더불어 태진과 금영이 따낸노래방 기기 관련 특허만도 34개. 방송국 합창단의 실제 코러스에 누구든 노래 할수 있다는 환상세계도 ‘코러스 88’ 기종(금영)의 육성 코러스 삽입 기술이개발되면서 가능해졌다. 기술발전이 거듭될 때마다 노래방 시장은 폭발했다.
◇ 시장 규모는= 순수 노래방 기기 시장만 1000억원에 이른다. 기기는60만원대부터 10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이 안에는 일체의 저작권료가 들어가 있다.
보통 노래방 기기 회사가 한 곡당 60만원 남짓 저작권(저작이용권 포함)료를 치른뒤 기계에 새로 담아 왔는데, 지금은 일정액을 설치되어 있는 기기 수에 곱해지불하는 추세다.
기기는 일본에 비하면 싼 편이다. 초창기엔 상대적으로 기기가 비쌌고 신곡 시장규모가 작았던 편인데 지금은 반대다. 신곡을 노래방에 제공하면서 기기회사가기계당 얻는 수익이 2만원(3달 기준)이 약간 안된다.
◇ 지금 일본은= 일본은 가라오케 문화를 세계적으로 전파한 나라다. 순수노래방기기의 내수시장 규모가 1조원에 달한다. 우리 나라의 10배다. 기기만도2000만원에 달한다. 우리 것과 기능은 거의 차이가 없는데 기본적으로 제조기술에대한 대우가 우리와 다른 셈이다. 다만 이렇게 비싼 탓에 기기를 노래방이대여하는 형태로 거래가 이뤄진다. 기기는 전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서 매달본사의 중앙 서버에 의무적으로 접속해 각 노래방이 신곡 등을 내려받아야 한다.
정보이용료라는 명목으로 대가를 지불한다. 일본의 시장 규모가 월등히 큰 것은레스토랑과 노래방이 합쳐진 가족형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포함해 노래방이 다른놀이공간과 어울린 복합놀이 공간으로 변모한 탓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박자는 꼭 맞추고 적당히 큰 목소리로노래방 100점 도전 예전 직장인들에겐 분위기 따라 부를 노래 몇 곡을 갖추는 게 필수였다. 요즘엔뽐낼 수 있는 노래를 더 쳐준다. 분위기 띄운다며 방방 뛴 ‘선수’에겐 탬버린을치지만, 멋지게 열창해 100점을 맞은 ‘선수’에겐 기립해 박수를 친다.
물론 음치한텐 벼락을 친다. 자신의 실력보다 조금이라도 더 도드라지게 부르는방법은 없을까. ▶ 실력을 포장해주는 기능으론 에코가 으뜸이다. 전문 용어로는잔향(리버브・reverb)인데 목욕탕 안의 울림과 같다. 지금의 반주기 수준으론 이런효과를 낼 수 없다. 하지만 앰프의 에코 기능과 기계 시스템 안에 있는 에코챔버기능을 적절히 조절하면 비슷한 맛이 난다.
▶ 노래방 한가운데에서 손가락 한 두 마디의 간격을 두고 45도 각도로 마이크를쥐면 좋다. 마이크 안의 콘텐서가 소리를 가장 잘 흡입하는 각도다. 노래방도극장과 마찬가지로 한가운데서 반주가 가장 잘 들린다. 그렇다고 술에 취해테이블에 올라간다 해서, 잘 들리진 않을 것이다.
▶ 노래 맛을 살리는 게 중요한다. 가사의 감정을 목소리로 표현해내려는 노력이필요하다. 이걸 못하니 음치 아니냐고 물을 것 같다. 그래서 먼저 애창곡을 몇곡으로 한정해 그것만 단련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동방신기부터 장윤정까지 다시도해보고 싶은 호기심을 누르는 항상심이 필요하다.
그러러면 뭐하러 노래방 가느냐고? 맞다. 되든 안되든 100점부터 맞고 보자. ▶ 박자를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음정이 틀려도 박자를 또박또박 맞추면점수가 높아진다. 호흡을 맞추면 노래도 비교적 정확해지기 마련이다.
▶ 가사가 없는 중간에 까불면 손해다. 랩이나 추임새 따위를 넣는다면 순진한노래방 기기는 정해진 프로그램을 거역하는 감점 요인으로 본다. 가수가 보통 자기노래를 불렀을 때 점수가 낮았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습관처럼 기교를 많이부리거나, 엇박자로 노래를 부르는 걸 기계가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 적당히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중요하다. 보통 노래방 기기는 소리의크기를 256 레벨로 분류해 놓는다. 100레벨 이상의 음량이 들어오지 않으면 가사를놓쳤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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