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적토마"고정운"

현역 시절 지치지 않는 체력과 빠른 스피드로 `적토마`란 별명을 얻었던 축구선수 고정운은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뚝심으로도 유명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몸이 약했다고 한다. 177cm인 키에 당시 체중은 불과 63kg였다. 당연히 몸싸움엔 약할 수밖에 없는 체격이었다. 20일 밤 0시 55분 MBC `스포츠 매거진`의 `맞 長! 카운트다운` 코너에선 추억의 스타가 돼버린 고정운(39)과 프로야구 투수 이상훈(34)을 인터뷰했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두 사람을 묶어 소개하는 이 코너에서 두 사람이 함께 묶인 이유는 두 사람 모두 `말`이 별명이기 때문. 현역시절 고정운은 `적토마`, 이상훈은 `야생마`란 별명을 가졌다. 고정운은 경기 스타일, 이상훈은 긴 갈기머리와 화끈한 경기 운영방식 때문에 그와 같은 별명을 얻었다. 그라운드를 호령했던 고정운의 과거 모습은 프로축구 시절과는 완전히 달랐다. 고정운은 과거 하수구에 빠진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고등학교 시절 축구시합을 하는데 경기장 바깥쪽에 하수구멍이 있었어요. 몸싸움을 하는데 제가 밀려서 그만 빠져버렸죠." 체력에 한계를 느낀 그는 이곳저곳 정보를 수집했다. 모교인 건국대 야구선수부원들에게 들은 `매일 맥주 2캔 마시기`를 실천하기도 하다가 결국 찾은 방법이 웨이트 트레이닝. 1년 사이에 13kg이나 몸무게가 늘 정도로 성과를 거뒀다. 고정운의 선수시절은 화려했다. 93-95년 팀(천안 일화)의 3연속 우승을 이끌었고, 한국 프로축구 최초로 40골 40도움을 기록했다. 13년동안 기복없는 활약을 보였던 고정운은 99년 9월 교통사고로 오른쪽 무릎연골과 십자인대를 다쳤다. 부상 뒤 당시 중국 충칭팀을 이끌던 이장수 감독(현 FC서울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자신의 의지를 밝혔지만 결국 이감독에게 들은 말은 "빨리 은퇴하라". 결국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고정운은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리고 올 1월 FC 서울 사령탑을 맡은 이장수(49) 감독은 `애제자` 고정운을 코치로 불러들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6년까지 천안 일화(현 성남 일화)에서 코칭스태프와 선수로서 서로의 신뢰를 쌓았고, 특히 93~95년은 3연속 우승이룬 황금기였다. 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주장을 맡았던 고정운은 이 감독의 영향을 그대로 이어받아 선수지도에도 나서 `고 감독`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내기는 이상훈도 마찬가지. 1992년 LG트윈스에 입단한 그는 94년 팀을 우승시키고 이듬해엔 20승으로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1998년 일본 주니치 드래곤스에 입단, 다음해 선동렬과 함께 팀을 센트럴리그 우승팀으로 만들었다. 2000년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하며 한국인 최초로 3개 프로리그를 섭렵한 선수가 된 그는 2002년 LG트윈스에 재입단하며 그 해 부산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2004년 SK 와이번스에 이적된 그는 6월에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훌쩍 한국을 떠나고 다시 일본을 떠나 메이저리그를 밟은 것처럼 은퇴도 야생마다웠다. `18.44m를 던질 수 없는 그 날까지 마운드를 떠나지 않겠다`는 게 평소 이상훈의 의지. 그는 바로 그 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런 후회없이 마운드를 떠났다고 털어놓았다. 방송에선 이상훈이 4인조 밴드 `What!` 활동을 하는 모습이 처음과 끝을 장식했다. 2004년 11월 `What! 데뷔 콘서트-음악으로부터의 출발` 공연을 시작으로 록가수로 데뷔한 그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80년대 한국 프로스포츠에 열광했던 이들이라면 오랜만에 보는 `적토마`와 `야생마`의 모습이 무척 정겨웠을 듯하다.[TV리포트 김대홍 기자] paranthink@yahoo.co.kr방송 전문 인터넷 신문 TV리포트제보 및 보도자료 tvreport.co.kr <저작권자 ⓒ 도끼미디어 TV리포트>
Copyright © TV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