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조선왕조는 신분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1980년 전후해 국내 역사학계에는 조선시대 신분구조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논쟁은 이성무(한국정신문화연구원 명예교수)의 ‘조선초기양반연구’에 대한 책을 한영우(서울대 명예교수)가 서평 형식으로 비판하면서 시작됐다. 한 교수는 “조선초기 사회신분은 크게 양인과 천인으로 나뉘었고 양인은 또 양반, 중인, 양인으로 분화돼 있었다”는 이 교수의 주장에 대해 “양반과 중인은 양인 내부의 계층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을 뿐 독자적인 신분 범주로서 명확히 형성돼 있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조선 초기의 신분계층 구조와 신분 이동은 개방적이었다가 중기 이후 폐쇄적으로 변했다”고 덧붙였다. 조선시대 신분구조에 대한 논쟁은 한 교수에 대한 이 교수의 재비판이 이뤄지고 한 교수의 또 다른 비판이 이어졌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일단락됐다.
지난 7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한국고문서학회(회장 이영훈) 주최 ‘고문서를 통해 본 동아시아 근세사회’라는 주제의 국제학술회의에서는 조선시대 신분계층 구조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김성우 대구한의대 교수는 ‘조선시대의 신분구조, 변화, 그리고 전망’이라는 논문 발표를 통해 “조선왕조 초기의 주요 정책 기조는 국가적 평등사회의 유지에 초점이 맞춰졌다”면서 “조선왕조는 개국과 함께 신민에 대한 균등한 의무와 권리를 강조하고, 지배층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제민정책・국역체제・양천제’를 천명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제민정책(齊民政策), 국역체제(國役體制), 양천제(良賤制) 등 세 가지 국가운영원리를 자동차에 비유해 각각 지시등, 엔진, 프레임에 비유했다. 양천제는 조・용・조(組・전세, 庸・가호세, 調・인정세)를 납세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양인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을 천인으로 나누는 포괄적인 인민편제 방식으로 당시 전체 국가 구조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레임에 해당하고, 국역체제(세금을 부담하는 사람에 대해 국가 운영 참여의 기회와 권리를 제공하는 장치)는 에너지를 끌어들여 작동을 가능케 하는 엔진이며, 국가의 지배를 받는 모든 백성들은 모두 동등하다는 원칙의 제민정책은 전체의 방향을 제시하고 지시하는 지시등에 해당한다. 부병제와 과전법은 이들 장치와 연결돼 국가라는 자동차를 실제로 움직이는 바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실제 사회・관습적 영역에서는 양천제 대신 사족(士族)・상인(常人) 관계가 더 큰 위력을 발휘했으며 국가의 영향력의 강도가 점차 떨어지고 사족층(양반)이 성장하기 시작한 15세기 후반부터는 양천제가 급격하게 해체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연산군(1494〜1506)대 이뤄진 세 징수방식의 변화는 상층부 양인들의 위상 강화를 불러왔고 이들은 그들의 지위에 걸맞는 대우를 국가에 요구했다. 이들은 ‘양반’이라는 배타적 ‘양인’층을 확립하고 문무반 관직 독점권, 군역 면역권과 같은 사회적 특혜들을 차례로 획득해 나갔다. 양천제가 반상(班常)제로 전환된 직접적 계기는 임진왜란. 국가는 이정법(개별 가호 대신 면리 등 지역별로 세액을 할당) 등의 시행으로 직접적인 백성 지배를 포기하고 반상제를 통해 간접지배 방식을 택했다. 반상제가 지배적인 신분구조로 자리잡은 17〜18세기 ‘지배양반’의 비율은 5%, 중인과 서얼층은 10〜15%, 평민과 노비층은 80〜85% 정도였다. 이같은 반상제는 국가의 지원 아래 지배 양반(嫡派)들과 끊임없이 투쟁하던 서파(庶派)들이 ‘만민 평등, 기회 균등’이라는 근대 서구 시민사회의 원리를 빌어 쟁취한 1894년 ‘갑오개혁’ 때에서야 비로소 종지부를 찍게 됐다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일본의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는 2003년 조선사회는 신분제 국가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해 조선사회가 강고한 신분제에 기초한 사회임을 의심치 않는 우리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면서 “전근대 한국사회의 전통적 사회구조와 엘리트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새로 시작돼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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