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한국인들]③조선족동포의 생활상

연길은 연변에서도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다. 이곳 중심가는 유흥업소들이 뒤덮고 있다. 한 집 건너면 한 집씩 노래방(단란주점)이고 대주점(술집)이고 안마방이다. 노래방은 한국으로 치면 단란주점이다. 몇해 전부터 크게 늘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온 조선족들이 주로 차렸다. 이런 틈을 노려 연변의 축구스타 고○○이 차린 ‘고○○ 노래방’이나 한국 인기가수가 관여한 ‘설○○ 노래광장’까지 개업해 있다.
유흥업소들은 주로 한국에서 온 관광객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유흥업소가 난립해 지나친 경쟁을 벌이면서 업소마다 이윤이 줄고 한국에서 온 손님도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연길 M노래방에서 일하는 최모(22)양은 “멀쩡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한달에 700위안 이상 벌기가 힘들지만 노래방에선 1500위안(한국돈으로 20만원 정도) 정도는 쉽게 손에 쥘 수 있다고 해 나가게 됐다”면서 “요새는 손님이 많이 줄어 돈벌이가 잘되는 편은 못 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온 조선족들이 유흥업에 앞다퉈 나서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주로 식당 종업원이나 육체노동자로 일하다 보니 별달리 경영 노하우를 배워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변대학 동북아연구원 박승헌 원장은 연변의 불경기 이유에 대해 “한국 기업들이 처음에는 연변을 중국 내륙이나 북한으로 들어가는 발판으로 생각해 투자를 했지만, 최근에는 베이징(北京)이나 상하이(上海)로 곧바로 진출하고 있고 북한 시장은 가망이 없는 것으로 보고 철수를 서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때 5년간 778만명에 달하던 백두산 관광객은 물론 대기업 주재원이나 사업차 찾는 사람들도 꾸준히 줄고 있다. 연변 외자의 60%를 차지하던 한국 투자는 외환위기를 정점으로 감소 추세다.
연변의 불경기는 더욱 많은 조선족을 해외로 내몰고 체류기간도 크게 늘리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연길에서 태어나 줄곧 살고 있는 한모(32)씨는 “요새 한국행이 부쩍 늘어난 것은 연변에서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해서이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일확천금을 노려서만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조선족들이 처음부터 돈벌이가 잘되는 한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일거리를 찾아 외국으로 진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가 나빠서라는 것은 젊은이들이 한국 아닌 유럽과 동남아시아 각지로 떠나는 경우에서도 알 수 있다. 연길의 림모(31)씨는 “일거리를 찾아 프랑스, 스페인, 말레이시아, 북한 안 다녀본 곳이 없고 기회가 되면 한국에도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모(32)씨도 얼마 전 부인을 사이판으로 보냈고 자신도 곧 같은 곳으로 떠날 예정이다.
조선족들의 한국 체류기간도 크게 늘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2〜3년에 머물던 것이 최근에는 7〜10년으로 늘었고 이제는 아예 한국으로 떠나면서도 돌아올 날을 기약하지 않는다. 최모(56)씨는 “경기가 워낙에 좋지 않기 때문에 얼마간 돈을 모아온다고 해도 금세 까먹고 만다”며 “조선족의 한국 체류가 길어지는 것은 사업 밑천만 마련하겠다는 목표가 평생 먹고살 돈을 챙기겠다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른바 코리안 드림에 성공한 사람들이 조금씩 나오면서 연변 조선족들은 어지간한 푼돈벌이에는 관심 보이지 않는 현상도 나타난다. 최근 들어 연길에는 건설 경기가 생기면서 아파트들이 하나 둘 들어서지만 입주하는 사람 대부분은 한족이라고 조선족들은 귀띔했다. 한 조선족 주부는 “한족들은 어린아이라도 가만히 앉아서 노는 법이 없고 하다못해 해바라기 씨라도 봉지에 담아 팔면서 한푼 두푼 모으지만, 조선족들은 큰 돈벌이가 아니다 싶으면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연변의 중소형 새 아파트들은 모두 한족 차지가 되고 만다는 게 조선족들의 설명이다. 이런 경향은 한국에서 한몫 잡아서 돌아오는 사람이 여지저기 생기면서 ‘나도 크게 한번 벌고 만다’는 심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란 게 대체적인 평가다. ◇연길시내 한 식당에서 조선족 손님이 한국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 있다. 연변 대부분의 가정과 상점에서 한국 방송을 시청한다.
이런 상황에 중국 정부도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조선족들은 입을 모은다. 연변자치주정부 조선족 고위 공직자는 “연변자치주가 속한 지린(吉林)성을 비롯해 조선족이 많이 사는 동북3성은 국경 변방이라고 해서 워낙 투자가 없던 곳”이라며 “1990년대 중국이 개혁개방을 확대하면서 베이징과 상하이의 기업들만 규모를 불리고 지방 중소기업은 무너져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연길에서는 담배 회사와 맥주 공장만 그럭저럭 운영될 뿐 나머지 중소기업들은 상당수가 문을 닫은 실정이다. 고위 공직자는 “상황이 이런데도 중국 정부는 한국을 통해 적잖이 흘러들어오는 외화에만 마음을 놓고 있다”고 했다. 연변 시민들은 “연변 경제 사정이 이런 이상 조선족의 한국행과 가정해체는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한반도가 통일을 이뤄 연변과 국경을 마주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고 가정해체도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연변=이범준 기자 weiv@segye.com달라진 연변 조선말 연변 조선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아듣기가 매우 어렵다. 한국 연예인들이 흉내내는 연변 사투리는 연변 조선족들이 한국어를 따라하면서 만들어진 변형된 조선어에 가깝다. 조선족끼리 하는 본격적인 연변 조선말은 보통 한국인이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수준이다. 중국어와 비슷한 억양을 쓰는 데다 군데군데 중국어를 섞어 쓰는 게 이유다.
다만 이들이 매일 우리나라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서 한국 표준어를 대부분 알아듣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사람에게는 서울말에 가까운 언어를 쓰는데 그게 연예인들에게 연변 사투리로 잘못 알려졌다. 그리고 방송을 통해 한국어를 배우다 보니 50대 조선족 남성이 ‘〜대요. 〜구요’ 하는 식으로 20대 한국 여성 말투를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알아듣기 힘든 중국식 조선어 사투리는 젊은층으로 갈수록 심하다. 한반도에서 살다가 중국으로 이주한 1세대나 이들에게 말을 배운 2세대는 한국이나 북한에서 쓰는 말에 가까운 억양이 남아 있다. 그러나 3세대가 넘어가면 중국어식의 조선어를 만들어 쓰게 된다고 한다.
현지 취재과정에서 젊은이 여럿을 한꺼번에 만났다. 한명씩 기자에게 하는 말은 알아들었지만 그 밖에 서로가 주고받는 말은 되묻지 않는 이상 명료하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60세가 넘은 노인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간단하게 끼어들 수가 있었다.
연변 지역을 벗어나면 우리말을 전혀 못하는 조선족이 더 많아진다. 번역일을 하는 한모(28ㆍ여)씨는 “중국에선 연변을 벗어나 헤이룽장(黑龍江)성, 랴오닝(遼寧)성에 사는 조선족 젊은이들은 조선말을 하는 경우가 드물 정도”라면서 “한국인과 국제결혼을 하려는 조선족 여성 중에도 간단한 조선말을 못해 통역과 번역을 부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경우 주법에 따라 시내 모든 간판이 한글을 먼저 쓰고 한자를 병기한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한족들은 조선말을 말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알아듣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결국 중국에서 조선어는 조선족의 말이 아닌 연변지역의 말로 축소돼 가는 중이다.
연변=이범준 기자 weiv@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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