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없는 미녀] 최면속의 사랑

[한겨레] 버림받는 것이 두려운 여자 그 여자를 독점하고픈 남자김인식 감독은 매력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데뷔작〈로드무비〉에서 거친 질감으로 그려낸 길의 풍경과 거대한 폐허처럼 묘사된공장과 채석장의 이미지는 이야기의 빈 틈을 메워내기에 손색없을 만큼 강렬했다.
두번째 연출작 〈얼굴없는 미녀〉 역시 매혹적인 이미지가 돋보이는 영화다.
영화의 첫장면에서 미친듯이 자판을 두드리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지수(김혜수)가 남편의 목소리에 문득 현실로 돌아오면서 처참하게 피투성이가되는 상상 속 장면은 섬뜩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얼굴없는 미녀〉는 1980년 방영됐던 텔레비전 드라마 〈형사〉 시리즈 가운데화제가 됐던 한편의 에피소드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원작이 최면이라는 도구로환자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정신과 의사가 당하는 ‘징벌’을 그린 권선징악드라마였던 반면, 영화는 상처받은 두 사람의 단절과 집착을 그린다. 누군가로부터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심한 정서적 불안을 보이는 경계선 성격장애를앓고 있는 지수와 정신과 의사 석원(김태우)은 둘 다 과거의 사랑으로부터 받은깊은 상처를 품고 있다. 병원을 그만두기 직전 응급실에 실려온 지수를 잠시상담했던 석원은 1년 뒤 우연히 지수를 다시 만난다. 둘은 석원이 개업한 병원에서다시 만나고 최면요법으로 지수의 과거 속에 들어간 석원은 지수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최면이 끝나면 다시 의사와 환자로 돌아오는 관계에 그는 고통을 느낀다.
영화는 고립돼 있으며 무미건조한 주인공들의 현재와, 상처를 만들어낸 과거의기억을 강렬한 이미지로 바꾸어내면서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어 놓는다. 공허하기짝이 없는 풍요를 드러내는 지수의 집안 풍경과 섬처럼 주변으로부터 동떨어져있는 듯한 석원의 사무실은 비현실적인 공간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석원이근무하던 병원을 찾아오는 죽은 아내의 애인과, 지수의 눈에 보이는 석원 아내의환영 등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며 과거와 현재,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허문다.
문제는 각주 없이 던져지는 강렬한 이미지들이 등장인물들의 불안함이나 고독감을보여주는 데까지는 이르지만 그들의 심층을 파고드는 데까지 연결되지는 않아보인다는 점이다. 최면에 빠진 지수의 육체에서 빠져나온 석원이 지수와 갖는관계는 이것을 ‘미친 사랑’이라고 해야 할지 일종의 ‘자위행위’라고 해야 할지난감하며, 다른 여자가 있는 지수의 남편과 지수가 맺는 관계의 지점도어정쩡하다. 결국 모두가 각자의 공간에서 괴로움에 허덕이지만 그 절망감은 서로맥락이 잘 닿지 못한 채 지수나 석원이 착란을 일으킬 때 그들의 방에 떠다니던화려한 집기들처럼 둥둥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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