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북한 10대뉴스

입력 2003. 12. 7. 08:05 수정 2003. 12. 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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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북한의 2003년은 밖으로 핵 위기의 돌파구를 찾으려 노력하고안으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를 다진 한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 선거와 제11기 1차 회의, 정권창건 55돌 등 굵직한정치일정을 치르며 일심단결과 결사옹위 정신을 강조, 대내 결속력을 재확인했고 북핵 다자협상 테이블 안팎에서는 동시행동 원칙 관철에 주력했다.

북한은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우방궈(吳邦國)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상무위원장과의 평양회담을 통해 양국간 우의를 다지는가 하면 러시아의 핵 6자회담참여 속에 입지를 넓혀나가는 저력을 보여줬다.

핵 위기 속에서도 남한에서 열린 대구유니버시아드와 민족평화축전에 대규모 참가단을 보내고 경의선ㆍ동해선 연결식과 개성공업지구 착공식에 임하는 등 남북 교류협력에서는 적극적이었다.

다음은 연합뉴스가 선정한 2003년 북한 10대 뉴스. ▲ NPT 탈퇴 선언 북한은 1월10일 정부 성명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담보협정"의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난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2002년 10월 재점화된 북핵 문제가 2002년 12월 핵동결 해제 선언에 이어 새 국면을 맞게 됐다. 북한은 다만 핵무기를 만들 의사는 없다고 못박았다. 국제사회의 NPT복귀요구에 북한은 폐연료봉 재처리 등으로 맞섰다.

▲ 북핵 다자회담 북한은 중국의 중재로 4월23-25일 열린 북ㆍ미ㆍ중 3자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뒤 미국과 양자 담판을 주장하다가 한국과 러시아, 일본이 가세한 6자회담을 수용했다. 그러나 8월27-29일 6자회담에서도 핵폐기와 불가침조약 체결 중심의 동시행동원칙을 관철하지는 못했다. 10월25일 `서면불가침담보"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며 입장변화를 보였지만 제2차 6자회담 개최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 재추대 9월3일 최고인민회의 제11기 1차 회의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임기 5년의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되고 국가지도기관 인사가 단행돼 `제2기 김정일 시대"가 열렸다.

국방위원회의 경우 조명록 총정치국장이 제1부위원장에 재선됐고 연형묵 자강도당책임비서가 부위원장이 됐다. 내각에서는 박봉주 화학공업상이 홍성남 총리의 후임으로 기용됐고 2명의 부총리와 5명의 상이 교체됐다.

▲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 8월3일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 선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포함해 모두687명이 선출됐다. 제10기와 비교해 절반에 해당하는 대의원이 교체됐다. 최영림 중앙검찰소장, 김창주 전 부총리와 군 차수인 박기서, 리하일, 최인덕, 전재선이 빠진반면 김령성 내각 책임참사와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새로 등장했다. 함께 시행된 지방인민회의 선거에서는 2만6천650명이 뽑혔다.

▲ 정권창건 55돌 기념행사 북한 정권창건 55주년 기념행사가 9월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당ㆍ정ㆍ군 고위간부가 참석한 가운데 김일성광장에서 열렸지만 관심을 모았던 무력시위나핵 관련 중대선언은 없었다. 하지만 개인화기로 무장한 육ㆍ해ㆍ공군 2만여 명의 열병식과 시민 100만 명이 동원된 군중시위를 통해 북한은 `핵무기보다 강한 일심단결"을 내외에 과시했다.

▲ 동해ㆍ경의선 철도연결식 남북은 6월14일 한반도 동서 양쪽의 군사분계선(MDL)에서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연결식을 가졌다. 1906년 개통된 경의선은 51년 6월12일 운행이 중단된지 52년만에,동해선도 50년만에 연결된 것이다. 이 상징적인 궤도 연결로 실제 열차가 다니지는못하지만 철조망과 지뢰를 걷어내고 민족의 동맥을 잇는 모양새를 갖추면서 경의선ㆍ동해선 철도연결 공사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 김정일-우방궈 회담 제2차 북핵 6자회담의 개최여부가 관심사가 된 가운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0월30일 평양에서 우방궈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회담을 하고 동시행동 원칙에 따라 일괄협상을 진행하는 조건으로 후속회담에 참가할 용의를 표시했다. 또 대북 안보에 대한 문서보장과 인도주의적 지원 재개를 요구하고 중국의 방중 초청을 수락했다. 회담은 또 양국 친선관계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 대구 유니버시아드 참가 북한은 2003대구유니버시아드를 앞두고 남한 보수단체의 집회를 문제삼아 불참을 시사했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유감" 표시로 8월20일 520여 명의 선수ㆍ응원단을보냈다. 대회기간에도 시민단체와의 마찰로 철수 위기를 맞는가 하면 응원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들어간 플래카드를 노상에서 철거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10월말 제주 민족평화축전에도 190명이 참석했지만 개런티 문제가 논란이 됐다.

▲ 금호지구 경수로 공사중단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에 따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의해 97년부터추진된 북한 금호지구 경수로 건설공사가 KEDO 이사국간 합의로 12월1일부터 1년 간중단됐다. KEDO는 중단기간 만료 전에 공사재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지만 부시 행정부는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북한은 이에 대해 북미 합의가 완전 파기됐다면서 보상을 요구하는 동시에 현장의 장비와 자재 등의 반출을 막겠다고 밝혔다.

▲ 개성.금강산지구 규정 발표 6월28일 개성공업지구 및 금강산관광지구의 개발규정 및 기업창설규정이 발표됐다. 이는 2002년 11월 발표된 이들 지구 관련법의 하위규정으로, 개발방법과 자유로운 투자, 기업활동을 위한 편의보장을 내용으로 담았다. 이 규정발표는 핵 위기 속에서도 경제개혁의 고삐는 늦추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6월30일에는 개성직할시 판문군 평화리 1단계 사업지구 부지에서 개성공단 착공식이 거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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