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 벌써 30년! 만화거장이라니..허영만

2003. 7. 1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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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이 뽑은 "나의 베스트4"<각시탈> “74년 데뷔하면서 3년 안에 ‘뜨지’ 못하면 직업을 바꾼다는 각오로정말 열심히 그렸다. 내 작품도 오래되면 감정이 식기 마련인데, 허영만이린이름이 시작된 작품이어서 늘 마음에 남아 있다.”<무당거미> “데뷔한 뒤 정동 문화체육관에서 권투경기를 보러 갔는데 내가 봐도이상한 판정이 나왔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페더급 경기 그대로 주인공의체급을 페더급으로 설정했다. 그리면서 스스로 가장 재미있었던 만화다.

시리즈중에서는 <스트레이트냐 훅이냐>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다.”<망치> “작가로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공도 가장 많이 들였고…, 연재하던매체가 일본 만화를 정식 수입 시작하는 바람에 항의성으로 연재를 중단해버리는등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가장 그림을 왕성하게 그릴 때가 바로<망치>를 그릴 때였다.”<오! 한강> “당시 문공부에서 반공만화 제안을 받았을 때 ‘어용’이란 소리를들을 수도 있지만 이 기회가 아니면 ‘이데올로기 만화’라는 것을 영원히그려보지 못할 것 같았다. 스토리작가 김세영씨와의 최고작이어서 더욱 애착이가는 작품이다.”치열한 자기관리, 끝없는 변신과 도전이강토 각시탈과 함께 놀라운 정상의인기애니영화제 개막작에 "망치" 선정 겹경사"나이드니 과장 보기싫어 정보담은생활 그릴 터" 1974년, 스물일곱살의 청년 만화가가 한 소년신문의 만화 공모전을 통해데뷔했다. 이미 만화를 그린 경력은 10년 가까웠지만 만화판의 왜곡된 시장구조에저항하던 스승과 행보를 같이 하느라 등단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비로소 자기이름을 걸고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두번째 작품에서 훗날 자신의분신이 된 주인공 ‘이강토’를 등장시켰고, 늦은 데뷔를 한풀이하듯 데뷔 석 달만에 세번째 작품 <각시탈>로 순식간에 장안의 만화팬들을 사로잡았다. 만화판에‘허영만’이란 이름 석 자가 우뚝 서는 순간이자, 그의 ‘30년 전성시대’가열리는 순간이었다.

만화가 허영만(57)씨가 올해로 데뷔 30년째를 맞았다.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고향 여수를 떠났던 만화가 지망생은 이제 ‘거장’이란 수식어가 자연스러운 한국최고의 만화가가 됐다. 최근에는 경사스런 소식이 한가지 더해져 데뷔 30주년을더욱 뜻깊게 했다. 허씨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망치>가 만화계최대의 축제인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발(SICAF・시카프)의 올해애니메이션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이다.(관련기사 30면). 여기에 김영사에서조만간 허씨의 신작 만화를 펴낼 계획이고, 하반기에는 ‘허영만 평론집’이출간될 예정이어서 올해는 이래저래 ‘허영만의 해’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 허씨는 ‘30주년’이란 단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모습이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광장동 화실에서 만난 허씨는 “만화를 많이그렸다는 게 꼭 좋은 것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자신이 그린 엄청난원고량-11만페이지 이상으로 추산된다-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며, “과거의그림을 보면 창피할 때가 많다”고 아쉬워했다.

“만화는 끊임없이 변해야 되요. 항상 새로운 걸 독자들에게 던져줘야만 합니다.

그게 잘 안될 때면 ‘나는 그저 화공(畵工)이 되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들고, 그러면 다시 마음을 잡아 의욕을 살리고…, 그렇게 반복하는 거죠.” 겸손함이전에 철저한 프로의식을 느끼게 하는 대답이다.

허영만. 그는 언제나 ‘최고’였다. <비트> <퇴역전선> <미스터Q> <아스팔트사나이> 등이 영화 또는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사오정 시리즈를 유행시킨 <날아라슈퍼보드>는 애니메이션으로는 방송사상 최초로 시청률 1위에 올랐고,‘이데올로기 만화’로 유명한 <오! 한강>은 서울대 학생회가 선정하는 대학신입생 필독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늘 흐름을 이끌었다. <태양을향해 달려라>로 70년대 스포츠 만화 열풍을 선도했고, 오토바이 만화 <동체이륙>과마라톤 만화 <2시간10분>으로 한국만화에 늘 부족했던 ‘전문성’이란 개념을인식시켰다. <고독한 기타맨>과 <비트>로 만화가와 스토리작가의 협업체제를본격적으로 구축한 것도, 90년대 이후 <세일즈맨> 등으로 비현실적인 영웅만화대신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잔잔한 만화 붐을 지핀 것도 그였다.

하지만 허영만이란 작가가 진정 경이로운 점은 그의 변함없는 인기 유지에 있다.

다른 어떤 대중문화 장르에서도 그처럼 오랫동안 정상의 인기를 지속해온 스타는없었다. 50대 후반의 작가가 새로운 작품을 꾸준히 내면서 최고 대우을 받는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이 놀라운 생명력은 물론 그의 치열한 자기관리에서 나온다. 생활이 불규칙한다른 만화가들과 대비되는 철저하고 규칙적인 생활, 작품의 리얼리티를 높이기위해 별도의 ‘취재 담당’을 고용하는 투자마인드까지. 여기에 결코 대충대충넘어가는 법 없는 깐깐한 성미와 일희일비하지 않는 뚝심도 한몫을 했다. “저는늘 2등이에요. 70년대에는 이상무 선생, 80년대에는 이현세씨가 최고였고,지금까지도 1등은 못해봤습니다. 속으로는 부러웠지만 등수에 동요되지 않는 법을나름대로 개발해 마음을 단련했어요. ‘인기는 5위권에만 들면 된다, 나는 내 길을가자’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나 지금의 그를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과감하게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승부근성이었다. 평탄해보이는 그의만화인생에도 몇차례 고비가 있었고, 그 때마다 그는 ‘최고작가’라는 위치에안주하는 대신 과감하게 변신의 승부수를 던지며 고행길을 택했다. 데뷔 전에는일본만화를 베끼던 화실을 과감히 뛰쳐나와 자기 스타일을 살렸고, 88년에는23명까지 불어났던 문하생을 6명으로 줄이며 작품성으로 승부를 걸어 생명력을강화했다. 다른 인기작가들은 문하생 수십명을 거느리며 1년에 수백권씩 만화를찍어내는 ‘공장식 시스템’을 구축할 때였다. “만화공장을 차렸으면 돈은 더벌었겠죠. 인원이 늘어나다보니 그림을 그리지는 못하고 관리에만 신경쓰게되고…, ‘내가 사장이 되어가나 보다’ 싶어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어요.” 94년에는 후배 인기작가들과의 경쟁속에 위기감에 빠지게 되자 경기도 마석으로화실을 옮겼다. 맑은 공기와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기분을 바꾼 뒤 작품량을 대폭줄여 잡지 연재에만 매달렸다. 내용도 신세대풍 재미보다 살아가면서 느끼는감정을 담기로 했다. 그 결과물인 <세일즈맨> <오늘은 마요일>이 인기를 모으며그는 자신감을 되찾았다.

1년 동안의 ‘마석 시대’를 접고 서울로 돌아오며 시작한 허씨의 ‘광장동시대’도 올해로 10년째가 됐다. 그사이 다시 한번 그는 조용히 슬럼프를 겪었다.

변함없이 작품은 인기 정상이어도 그로서는 독자들과의 나이차가 점점 벌어지면서생기는 감각의 차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가 찾아낸돌파구가 요즘 연재중인 ‘요리만화’다.

“나이가 드니까 만화 특유의 과장보다는 정보가 있는, 생활이 담겨 있는 만화를그리고 싶어져요. 억지로 젊은 사람들 감각 따라가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어른들생각을 그대로 보여주자고 방침을 세웠습니다. 아직도 그리고 싶은 만화가 많으니계속 그려야죠. 지금까지 보아주셨듯이 계속 저를 보아주시기 바랄 뿐입니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사진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허영만 연보%% 990003%% 1947년 전남 여수 출생1966년 여수고등학교 졸업, 만화계입문1974년 <집을 찾아서>로 정식 데뷔. <각시탈>1977년 <태양을 향해달려라>1983년 <변칙복서>1984년 <무당거미>1986년 <퇴역전선><고독한 기타맨> <오! 한강>1988년 <망치> <벽>1990년 <날아라슈퍼보드>1992년 <아스팔트 사나이> <48+1>1994년 <비트> <세일즈맨><미스터Q>1995년 <오늘은 마요일>1996년 <안개꽃 카페>1998년<사랑해>2000년 <타짜>ⓒ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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