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Nostalgia] '고글 쓴 남자' 에드가 다비즈 - 68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 '고글 쓴 남자' 에드가 다비즈 - <68>
녹내장이라는 질병이 있다. 눈에 발병하는 질병으로 안압의 평균치를 유지하지 못 해 발병한다. 이로 인해 시신경과 혈액 공급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면 실명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이전 프리미어리거들 중 녹내장으로 앓고 있어 눈을 보호하기 위해 FIFA 허가 하 고글을 쓰고 필드를 누빈 선수가 있다.
다비즈는 1973년 수리남의 파라마리보에서 태어났다. 수리남의 독립이 1975년에 이뤄지는 까닭에 다비즈가 태어날 당시 수리남은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 부모님이 다비즈가 태어난 뒤 네덜란드 본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그는 네덜란드를 더 친숙히 여기며 자라났다.
다비즈의 축구 실력은 어릴 때부터 발군이었다. 이에 많은 클럽들이 접근했다. 하지만 다비즈의 선택은 네덜란드 명문팀인 AFC 아약스 암스테르담이었다. 다비즈는 어린 나이에도 맹활약을 펼치며 1996년 팀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공신이 됐다. 미드필드에서 거칠 것이 없던 그의 모습으로 인해 핏불이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다비즈는 1996년 AC 밀란으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지만 부상과 불화로 인해 1년 만에 팀을 유벤투스 FC로 옮겼다. 다비즈는 유베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지네딘 지단 등 팀 동료들과의 호흡도 좋았다. 이에 6년 간 숱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마르셀로 리피 감독 역시 그를 극찬했다.
하지만 다시 다비즈의 입지가 좁아졌다. 실력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동거녀 폭행 같은 개인사가 있었다. 2000년에는 금지약물 검사에서 양성으로 출장 정지도 받으며 구단의 신임을 잃었다. 출전 시간 때문에 리피 감독과도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다비즈는 AS 로마로의 이적을 계획했으나 무산되고 팀에 남게 됐다. 이로 인해 구단과 더욱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흘렀다. 당시 다비즈는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의 핵심이었는데 대표팀 감독이었던 딕 아드보카트가 다비즈의 폼 저하를 우려했다.
이에 FC 바르셀로나의 사령탑 프랑크 레이카르트에게 다비즈 임대를 제안했고 성사됐다. 다비즈는 프리메라리가 입성 후에도 무시무시한 활약을 펼쳤는데, 이로 인해 전반기 6위까지 떨어졌던 바르셀로나가 후반기 2위로 반등할 수 있었다.
이후 인터 밀란으로 이적하며 또 한 번 세리에 A 무대를 뒤흔든 다비즈였다. 하지만 인테르에서도 역시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 등 팀 내 일원들과 불화를 겪으며 미운 오리 새끼가 됐다.
이 때 다비즈에게 손을 내민 것이 토트넘 핫스퍼였다. 다비즈 입장에선 연이은 불화로 세리에 A 무대에 진절머리가 난 상황이었고, 프리메라리가에서도 활약해서 호기심이 적었다. 이 때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이 제의를 했기에 수락했다.
토트넘에 입성한 첫 시즌인 2005/06시즌 다비즈는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로 자리잡았다. 당시 토트넘은 플랫형 4-4-2 포메이션을 주로 사용했는데 다비즈는 왼쪽 윙어 위치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윙어 같은 움직임을 가져가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간 다비즈가 해왔던 대로 미친 듯한 활동량을 보이며 경기장을 누비고, 과감한 몸싸움, 정확한 태클을 했다. 즉 중앙 미드필더로써 하던 일들은 똑같이 하되 왼쪽 윙어 위치로 자리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다비즈의 이러한 모습이 팀내 큰 플러스 요인이 됐다.
왼쪽 윙어 위치에서 중앙 미드필더 같은 플레이를 펼쳤음에도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은 레프트백과의 궁합에 힘입은 바 컸다. 당시 토트넘은 레프트백은 대한민국 대표팀의 이영표였는데 드리블이 훌륭해 상대 진영 깊숙한 곳에서 수비수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선수였다.
이영표가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상대 수비수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이에 박스 주변에서 공격수들에게 기회가 났다. 풀백의 적극적인 공격은 수비의 부실화라는 부작용은 낳을 수 있었지만 토트넘은 없었다. 이영표가 올라간 자리를 다비즈가 메워줬기 때문이었다. 두 선수는 그야말로 찰떡 궁합이었고 팀에 보탬이 됐다.
이에 다비즈의 프리미어리그 첫 시즌은 빛났다. 다비즈는 2005/06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만 무려 31경기에 출전하며 핵심 역할을 했다. 14R 위건 어슬래틱전에서는 득점까지 성공했다. 토트넘인 마지막 38R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 1-2 패배로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하지 못 하고 5위에 머문 것만이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06/07시즌 들어서는 실망스런 모습이었다. 토트넘 팀 자체의 무게 중심이 왼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옮겨갔다. 때문에 다비즈를 레프트윙으로 기용하기 보단 중앙 미드필더로 많이 썼다. 그런데 그 위치에서 영입 선수인 디디에 조코라의 활약이 돋보여 다비즈의 출전 시간이 줄었다. 게다가 다비즈 자체도 고령이 돼가는 나이의 영향을 받았다.
다비즈는 2006/07시즌 모든 대회 합쳐 13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에 다비즈는 여러 가능성을 모색했고 2007년 1월 친정팀 아약스로 복귀하며 짧았던 프리미어리그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다비즈는 7년 정도 더 활약하다. 2013/14시즌 바넷 FC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다비즈는 최근 FC 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간의 레전드 매치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전 세계의 축구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EPL 최고의 순간
2005/06시즌 프리미어리그 12R에서 위건과 토트넘이 맞붙었다. 전반 8분 터진 로비 킨의 득점으로 토트넘이 앞서나갔다. 후반 32분 킨이 자신의 진영에서 다비즈에게 패스했다. 다비즈는 공을 몰고 하프라인을 넘어 상대 박스 안까지 전진했다. 다비즈가 슈팅을 했고 득점이 됐다. 이로 인해 토트넘은 후반 43분 리 맥클로치에게 실점했음에도 2-1로 승리했다.
◇플레이 스타일
싸움닭 같은 선수였다. 볼 탈취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상대 선수와의 충돌도 마다하지 않았다. 체력이 좋아 경기장 곳곳을 누볐다. 운동 능력으로 인해 팀원들에게 큰 이점을 가져다주는 선수였다.
◇프로필
이름 – 에드가 다비즈
국적 - 네덜란드
생년월일 - 1973년 3월 13일
신장 및 체중 - 170cm, 68kg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국가대표 경력 –74경기 6골
사진=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total87910@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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