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스포츠 중에 껌을 씹으면서 할 수 있는 종목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야구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경기 도중에 풍선껌을 크게 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타석에서 서서, 혹은 홈런을 치고 운동장을 돌면서도 풍선을 부는 껌의 달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국내 프로야구에도 떠오르는 선수가 있을 겁니다.) 게다가 MLB에서 가장 오래된 구장 중 하나인, 100년이 넘은 시카고 컵스의 고색창연한 야구장의 이름은 껌 회사인 ‘리글리(Wrigley)’의 이름을 땄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껌과 떼려야 뗄 수 있는 운명적인 인연을 가진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야구선수였습니다, 사실 아주 별 볼일 없는.
롭 넬슨은 미국 동부 뉴욕의 롱아일랜드에서 자랐고, 청소년기에는 제2의 화이티 포드(통산 236승 106패 2.75의 성적으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1950~60년대에 활약한 뉴욕 양키즈 좌완 투수)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포드의 투구 동작을 똑같이 흉내 낼 수 있었고, 특히 견제 동작은 판박이였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아이비리그의 코넬 대학을 나왔을 정도로 공부도 잘 했지만, 야구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그를 드래프트한 MLB 팀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1975년 넬슨은 엉뚱하게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야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껌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말이나 논리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운명적이고 업보나 혹은 신의 계시 같은 것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여정이었다고 합니다. 타향에서 외롭게 지내며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야구 외에는 아버지가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신문, 잡지 등을 읽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포틀랜드 매브릭스’라는 독립리그 팀에서 선수 트라이아웃을 한다는 소식을 ‘스포팅 뉴스’ 잡지에서 접했습니다. 팀이 있는 장소는 태어나 한 번도 가본적이 없는, 미국 서부의 오리건 주 포틀랜드. 남아공만큼이나 그에겐 멀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지명이었습니다.
주저없이 날아갔지만 까마득하게 날아가는 홈런을 얻어맞는 등 넬슨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넬슨은 마이너리그 출신이자 할리우드 배우로 유명해진 구단주 빙 러셀에게 간청합니다. 입장권도 팔고, 배팅볼도 던지고, 어린이 야구 캠프도 운영할 테니 팀에 남게 해달라고. 그리고 넬슨은 실제로 경기 전에 입장권을 팔고, 불펜 투수로 공을 던졌으며, 야구 캠프를 운영했습니다. 그러다가 선수로 등록돼 실제로 경기에 등판하기도 했습니다. 1975년에 단 두 경기(1선발), 1976년에는 10경기(3선발)에 나서 총 3패만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매브릭스의 마지막 시즌인 1977년 그는 딱 두 경기에 선발로 나섰는데, 한 경기가 시즌 최종전으로 넬슨은 승리 투수가 됩니다. 비록 싱글A 팀이었지만 그의 프로 생애에서 유일한 승리였습니다. 당시 그는 25세였습니다.
넬슨은 구단주와의 약속대로 어린이 야구 캠프도 열었습니다.
첫 번째 캠프에서 그는 11살짜리 토드 필드라는 꼬마와 친해졌습니다. 실은 그녀석의 누나인 페기를 소개받기도 하면서 가까워진 사이. 그런데 하루는 토드가 씹는담배 파우치(주머니) 에서 꺼먼 담배를 한 움큼 입에 넣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꼬마가 씹는담배를 하는 광경에 깜짝 놀란 넬슨은 토드를 다그쳤다가 엉뚱한 대답을 들었습니다. 프로 선수들처럼 검은 니코틴 침을 뱉는 모습을 흉내 내기 위해 담배 파우치를 주워 거기에 검은색 말린 감초뿌리를 넣어 씹다가 뱉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넬슨은 늘 가지고 다니던 노트와 펜을 꺼내 뭔가 정신없이 적기 시작했습니다. 씹는 풍선껌의 아이디어가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운명이 겹쳐집니다.
당시 월급 300달러에 자동차도 없었고 가구도 하나 없는 빈 아파트에 살던 롭 넬슨이 가진 것이라고는 딱 아이디어, ‘빅리그 츄(Big League Chew)’라고 이름까지 붙인 ‘씹는담배 파우치에 넣은 풍선껌’이라는 상상력뿐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팀 동료이자 투수 선배인 짐 바우튼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뉴욕 양키즈 출신의 바우튼은 1970년 ‘볼 포’라는 자전적 책을 내서 엄청난 구설수에 올랐던 인물이었습니다. (올 초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책입니다.) 숨겨졌던 충격적인 많은 사실들이 폭로되면서 야구팬은 물론 일반 미국인들과 사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지만 '배신자'로 낙인 찍힌 바우튼은 당시 프로리그에서 완전히 매장됐습니다.
만 36세로 당시로서는 은퇴시기를 훌쩍 넘긴 선수였지만 너클볼 투수 바우튼은 포틀랜드 매브릭스에서 재기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넬슨의 ‘풍선껌의 꿈’에 동참하게 됩니다. 바우튼이 종자돈으로 1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매브릭스 야구팀의 불펜에서 그렇게 의기투합한 2인이었지만 당장 껌을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의문이었는데 넬슨의 상상력은 멈춤이 없었습니다. 넬슨은 한 잡지에서 본, 껌을 직접 만드는 기구 광고를 본 기억을 더듬어 그 기계를 구입한 후 직접 껌 만들기에 돌입했습니다. 그것이 1979년 초였습니다.
꼬마 토드의 부모 집 부엌에서 실험을 시작합니다. 매뉴얼에 따라 만들기는 했지만 도저히 입에 넣을 수도 없는 맛부터 시작해 실패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어느 정도 맛을 낼 수 있게 되자 바우튼과 함께 리글리사의 자회사인 ‘애므럴 프로덕트’에 이 아이디어를 내놓자, 즉각 3년 계약을 맺습니다. 모든 수익의 5%를 받는 조건이었습니다. 물론, 바우튼과 그 수익을 절반씩 나누기로 했습니다. (지난 2000년 넬슨은 바우튼의 지분을 모두 사들였습니다.)
1980년대 처음 발매된, 핑크색 껌을 잘게 자른 줄 같은 껌이 봉지 안에 가득 들은 이 아이디어는 기대 이상의 성공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전성기를 이루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기 몰이를 했습니다. 특히 만화로 야구 선수 캐릭터를 그린, 씹는담배와 거의 유사한 주머니에서 나오는 껌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아이들은 풍선껌을 입안 가득히 담아 프로 선수가 씹는담배를 하는 흉내를 똑같이 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선수들의 엄마들도 아이들이 씹는담배를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점점 어른 리그나 심지어 빅리그에서도 풍선껌의 인기는 높아졌습니다. 특히 갈수록 씹는담배의 건강상 폐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고, 운동장이나 더그아웃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니코틴을 뱉어내는 모습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입의 모양은 똑같이 불룩하고 뭔가를 씹지만 지저분한 결과물 대신 커다란 풍선을 불어 눈길을 끄는 선수들이 많아졌고, 풍선을 만들어 동료의 모자 위에 붙이는 장난도 유행했습니다. (현재는 씹는담배는 미국 프로야구에서 공개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게 금지됐습니다.)

넬슨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0년 전 리글리사가 매각되자 넬슨은 독립을 결심했습니다. ‘빅리그 츄’를 가지고 대형 캔디 회사들과 협상을 하던 넬슨은 상대적으로 중소규모인 ‘Ford Gum’사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포드사는 매년 4500만 달러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데 그 중에 풍선껌의 수익이 35-40% 정도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빅리그 츄의 매상은 매년 10% 이상 신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동료들에게 ‘넬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롭 넬슨은 이제 60대 중반이 됐고, 풍선껌을 35년 넘게 불고 다닙니다. 야구장을 다니면서 '풍선껌 불기 대회' 심판을 보면서 홍보대사로 활동합니다.
사실 넬리가 풍선껌으로 빅리그를 정복했다는 표현은 약간 어폐가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와 계약을 맺은 껌 회사는 바주카와 더블버블입니다. 전체적인 판매량 등에서는 빅리그 츄의 라이벌인데 MLB와는 현재 그들이 계약하고 있습니다.
대신 ‘빅리그 츄’는 명예의 전당에 먼저 들어갔습니다. 1980년대의 야구관을 만들면서 이 풍선껌도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유머 감각으로도 알려진 넬리는 ‘50년 전에 명예의 전당을 꿈꾸던 소년은 빅리그에도 올라가지 못했지만, 대신 내 껌은 명예의 전당에 간다!’라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현재까지 ‘빅리그 츄’는 800만 파우치 이상 팔린 것으로 집계됩니다.
작은 주머니 12개가 담긴 파우치의 한 개의 가격은 $19.99+ 세금에 배달료가 따로 있습니다.
이 기사는 minkiza.com,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Wikipedia, Washingtonpost.com, WallStreetJournal.com 등을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