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트렌드] 日 패션업계 판흔든 '프리마 아프리'

정욱 2017. 8. 17.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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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 = = 메루카리 홈페이지
일본 도쿄에 사는 스가모토 유코 씨(23)는 1~2주에 한 번씩 퇴근 후에 스마트폰 방송을 한다. 싫증난 옷을 팔기 위해서다. 지난달 28일에도 스가모토 씨가 방송을 시작하자 사이즈, 가격 등을 묻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날 스가모토 씨는 5벌의 블라우스를 20분 만에 모두 팔았다. 일본에서는 인터넷, 특히 스마트폰을 이용한 중고 제품 거래가 날로 확산되고 있다. 프리마켓 애플리케이션, 일본어로는 '프리마 아프리'라 부르는 앱 덕분이다.

패션 관련 '프리마 아프리' 중 가장 인기 있는 앱은 '메루카리(mercari)'다. 라틴어로 '매매'를 뜻하는 단어에서 비롯됐다. 지난 2013년 서비스를 시작해 약 4년 만에 누적 다운로드 건수가 5000만건을 넘었다. 월간 거래 규모만 100억엔(약 1000억원)으로 성장했다. 특히 지난달 6일부터 시작한 '메루카리 채널'이 인기다. 가장 큰 차이는 '동영상'을 활용한다는 것. 지금까지는 소비자들이 사진과 글을 올려서 물건을 팔았다. 그러나 메루카리 채널에선 실시간 라이브 등을 통해 자신이 입어본 장점 등을 소개하면서 판매한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프리마 아프리' 이용자 중 50% 정도가 중고로 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옷을 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부터 팔 생각을 하고 옷을 사는 셈이다. 메루카리 영업 담당자는 "요즘 고객들은 옷을 사서 계속 입는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현명하게 돌려 입겠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루카리를 비롯한 스마트폰 앱이 일본 패션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대형 브랜드 의류회사가 제품을 기획해 만들고 이를 사서 평생 입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메루카리가 중고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있다면 에어클로짓은 '공유경제'를 패션으로 끌어들였다. 지난 2015년부터 정액 렌탈 서비스를 시작한 '에어 클로짓'은 현재 재고만 300여 브랜드에 10만벌 정도다.

서비스의 특징은 바쁜 직장인 여성들을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대신 처리해주는 것이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스타일리스트가 어울릴 만한 옷을 3벌 골라 집으로 배달해준다. 반납 기한은 없다. 싫증이 나면 세탁할 필요도 없이 무료 배송으로 반납하면 된다. 레귤러 회원의 경우 월 9800엔(약 10만원)을 내면 횟수에 상관없이 빌릴 수 있다. 12만명에 달하는 회원을 확보했고 인기에 힘입어 최근엔 도쿄 시내에 매장까지 냈다.

유통시장에서도 주도권은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사이트가 '조조타운'. 유행을 앞서는 제품들이 많다는 입소문과 함께 젊은 층이 주로 찾는다.

조조타운 운영사인 '스타트 투데이'의 시가총액은 지난 11일 기준으로 1조700엔(약 10조원)을 넘어섰다. 일본 백화점의 선두 주자들인 미쓰코시이세탄홀딩스(4419억엔)와 다카시마야(3679억원)를 합한 것보다 2000억엔 이상 많다. 한국 기준으로 치면 현대중공업(9조5481억원)보다 규모가 더 큰 셈이다.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들은 의류 생산 시스템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오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스태프 유니폼, 하카타 유명 라멘체인 '잇푸도'의 새 유니폼 등은 전통적인 의류업체에서 생산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 의류 생산을 중개해주는 '시타테루'사의 작품이다. 2014년 창업한 시타테루는 일본 전역의 250여 개 봉제공장과 제휴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그리고 각 공장별 강점과 업무량 등을 파악해 발주처와 공장을 연계해준다. 창업 3년 만에 시타테루에 주문하는 기업이 벌써 4000곳을 넘었다. 40세에 회사를 세운 고노 히데카즈 사장은 '클라우드 소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업을 시작했다. 그 덕분에 소형 봉제공장들이 다시 일거리가 늘자 고용을 늘리는 등 최근 3~5년 새 시작된 앱들로 인해 일본 패션업계 밸류체인의 모든 과정에서 혁신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기존 업체들은 고전하고 있다. 일본 대표적인 종합어패럴 업체인 산요쇼카이가 수년째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실적에 직격탄을 맞은 것은 지난 2015년 45년간 지속된 영국 버버리와의 라이선스 계약이 끝나면서다. 자체 브랜드인 '산요코트'나 라이선스 브랜드인 '폴스튜어트' 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대세를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산요쇼카이를 비롯해 일본의 4대 대형 종합 어패럴 업체들이 최근 3년간 문을 닫은 매장만 1500여 개에 달한다.

궁지에 몰린 기존 업체들은 과거에 상상하기 힘들었던 시도에도 나서고 있다. 오사카의 한큐우메다본점에서는 작년 봄부터 여성복 판매장에서 의류업체 직원과 백화점 직원이 동시에 손님을 맞는다. 백화점 직원은 고객에게 어울릴 만한 옷을 복수의 브랜드에서 추천하고 각 브랜드 담당자들이 해당 제품에 대해 설명하는 식이다. 고객 입장에선 다양한 옷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어 호응이 높았고 백화점은 올 4월부터 대상 매장을 더 넓혔다.

[도쿄 = 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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