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을 다룬 게임, 마법으로 읽히는 현대사회 - '매지카'
[게임의 법칙-45] ◆조작성: 신의 마법과 인간의 마법이 가진 차이
일전에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마법이라는 말은 사실 조금 각도를 틀어 생각해보면 작동 원리를 알 수 없으면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어떤 기술을 가리키는 이야기일 것이다. 현대의 기술들이 이룩하는 어마어마한 성과는 마치 게임 '호라이즌 제로 던'에서 첨단기술을 사용할 줄 아는 주인공을 주술사로 생각했던 것처럼 고대인들의 눈으로는 마법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의 마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야 한다. 하나는 문학적 상상 속에서의 마법으로, 지시와 선언을 통해 실현되는 마법이다. 성경 창세기의 '빛이 있으라'가 대표적일 것이다. 이러한 마법은 상상과 신화의 영역에 존재하며, '빛이 있으라'의 과정은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아니 과정 자체가 없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두 번째 마법의 의미가 오늘 우리가 풀어보고자 하는 의미다. 마법의 두 번째 의미는 '인간이 사용하는 마법'이다. 마법이라는 행동의 주체가 신이 아닌 인간으로 내려온 뒤, 마법이 무언가를 이뤄내는 과정은 일종의 비밀 전승을 통해 특정 계층에만 허용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마법사들이 길드를 이루고 마법에 대한 학습을 전승하는 이유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모종의 비약을 섞고 주문을 외우며 무언가 복잡하고 신비로운 도형을 그린다는 점에서 이 마법은 신화의 영역을 벗어나 인간이 다루지만, 평범한 인간은 알 수 없는 영역에 위치한다.
인간이 마법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묘사는 그러나 고전적인 매체로는 완벽하게 전달이 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마법의 생성과 사용을 주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사용을 외부에서 비춰주는 방식으로밖에는 묘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임 매체에 이르러 마법이라는 개념은 비로소 주체적 체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마법을 중심에 넣은, 그리고 매우 재미있고 의미 깊게 다룬 게임이 존재한다. 2011년에 발매된 게임 '매지카' 다.

제목처럼 판타지 세계관에서의 마법을 중심으로 다루는 게임 '매지카'의 주인공은 모두 마법사다. '오더'라는 이름의 마법사 길드 소속인 주인공은 칼과 둔기 같은 무기도 쓰긴 하지만 주력으로는 마법을 다루는 캐릭터다. 그런데 '매지카'에서의 마법은 다른 게임이나 소설, 만화와는 다른 독특한 구조를 통해 나타난다.
게임 세계관에는 총 10개의 원소력이 존재한다. 불, 물, 번개, 냉기, 대지, 비전력, 생명, 보호막의 기본 8개와 조합을 통해 나타나는 증기·얼음의 두 개를 합쳐 총 10개 원소는 '매지카'에서 마법의 기반이 되며, 플레이어는 이들 원소를 조합해 마법을 만들어 사용해야 한다.
각각의 원소들은 독자적인 속성과 함께 원소 간의 상성을 띠면서 조합의 다채로움을 만들어낸다. 불 속성과 물 속성을 한 번의 주문에 섞으면 증기라는 새로운 원소가 탄생한다. 번개 속성은 공격 마법으로 사용되는데, 만약 적이 물 속성 공격으로 젖어 있는 상태라면 추가로 50%의 데미지를 더 입힌다. 대지 속성으로 주문을 가득 채우면 지진을 일으키기도 하고, 비전력과 냉기를 섞으면 원래 스프레이 형태로 나가던 냉기 공격이 광선 형태로 변하게 되는 등 '매지카'의 원소 기반 조합식은 일반적인 판타지 세계관의 단순한 상성 구성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복잡성을 띠고 있다.

게임을 진행함에 따라 원소력의 조합은 '매직크(magick)'라는 추가적인 마법으로 거듭난다. 마법책을 줍거나 보스 퀘스트를 마치면 알게 되는 매직크의 존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마법 주문처럼 각 원소들을 순서대로 조합하여 사용할 때 특수한 새로운 효과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마법들이다. Q/W/E/R/A/S/D/F의 키보드 좌측 8개 버튼을 사용하는 기본 원소의 조합을 마치 주문 외우듯 순서대로 입력할 때 발동되는 매직크는 단순 원소력의 조합 이상으로 강력한 효과를 내면서 비로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판타지 세계의 강력한 대마법사의 느낌을 주는 마법들을 펼쳐낸다.
◆조작 가능한 마법이 구현하는 게임 속 세계
'매지카'의 가장 큰 특징인, 이미 만들어진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원소력을 조합하여 마법을 창조해 사용한다는 개념은 게임 안에서는 비단 '매지카'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의 시조뻘인 '울티마' 시리즈에서도 마법은 각각의 속성을 지닌 룬워드 주문의 조합과 거미줄, 버섯, 인삼 등의 마법 재료 혼합을 통해 만들어지곤 했다. 하지만 '매지카'에서는 이 특징이 좀 더 뚜렷하고 중요하게 드러난다.
'매지카'에서 마법은 다른 게임들처럼 '메모라이즈(마법 주문을 미리 암기해두는 방식)'하거나 미리 조합해두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게임 안에서 그때그때 바로 원소 키를 눌러 조합식을 만들고 사용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원소의 개수도 10개로 적지 않은 데다 상성과 시너지 조합도 복잡한 게임에서 실시간으로 조합해야 하는 원소력 컨트롤을 요구하기 때문에 플레이어에게는 간만에 숙련도라는 개념이 마법 사용에 있어 달라붙는다. 말 그대로 플레이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주 쓰는 마법을 손이 익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재미있게도 실제 플레이를 통해 플레이어를 숙련된 마법사로 만드는 과정을 그려내는 효과를 보여준다. 초반에는 불 하나 끄는 것도 어버버하던 플레이어는 게임 플레이 시간이 누적되면서 자연스럽게 원소를 순서대로 조합해나가는 대마법사의 면모를 띠게 된다.
◆지식의 분화와 누적, '마법'화 하는 사회의 마법사들
'매지카'가 전달하는 마법의 구조는 그 어떤 매체보다도 서두에 언급했던 '인간의 마법'이 작동하는 방식을 잘 표현한다. 원소의 속성을 파악하고 이를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조합해내며 주어진 환경에 응전하고 전진하는 '매지카'의 게임 구조는 마법이라고 불리는 방식을 게임 특유의 구조 설계와 작동을 통해 플레이어 체험으로 마법의 구조 자체를 전달하며, 수용자인 플레이어는 구조를 받아 이를 활용하는 과정을 겪으며 점점 구조에 숙달한다.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징이 마법이라는 방식을 풀어내기에 꽤나 적합한 구조임을 알 수 있다.

'매지카'의 원소들이 갖는 근원법칙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은 그 누구도 하지 않는다. 게임 안에서 중요한 것은 그 원소력을 어떻게 활용하고 조합하느냐이지, 원소력의 근본 원리는 사실 알면 좋겠지만 몰라도 플레이에는 지장이 없다. 맥락은 다르지만 현대 지식사회에서 또한 많은 기술과 지식들은 그 근원을 몰라도 충분히 사용 가능한 형태로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 자동차 운전을 위해 내연기관의 원리까지는 몰라도 되는 시대, 인터넷으로 정보검색을 하지만 디지털의 원리와 네트워크 공학은 몰라도 되는 시대에 각 기술의 맥락을 다루고 제어하는 이들은 어쩌면 일반인들에게는 마법사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기술을 활용하는 우리 스스로가 마법사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그 방대한 지식과 기술을 모두 꿰뚫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의 활용 방식에 대해서 늘 교육받으며, 또 그 활용을 수시로 진행하며 스스로 숙련도를 쌓아나가기 때문이다. 컴맹인 친구를 위해 PC 부품을 사다 조립해주지만, 막상 각 부품의 내부 작동 원리를 물어보는 친구에게 '그건 나도 모르지'라고 대답해주는 과정 속에 '매지카'의 마법 구조가 떠올랐던 건 괜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 친구에게는 PC 조립을 수월하게 해내는 누군가가 마법사였을 것이니 말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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