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수도, 런던 도로 풍경을 보면 새빨간 페인트를 뒤집어 쓰고 거대하기 그지없는 몸뚱이에 사람들을 많이도 실어 나르는 신기한 버스가 있다. 언뜻 보면 생김새도 제법 귀여워서 관광객들과 런던 시민들에게 `도로의 명물`이자 마스코트로 자리매김한 기특한 녀석이다.

더블 데커 (Double-decker) 버스로 명명되는 이 버스는 보다 많은 승객 수용에 초점을 맞춰 복층 구성으로 제작된 2층 버스다. 여타 유럽 국가나 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영국의 대표적인 대중교통 수단이다.

 

이 묘한 생김새를 지닌 자동차 기원은 거의 모든 육지 교통수단이 그렇듯, 마차에 그 유래가 있다. 흔히 합승마차(Omnibus)라 명명되었던 복층 구조의 마차는 보다 많은 승객들을 태우기 위한 묘안이었다. 마차를 끌던 말들은 힘이 배로 들었지만 마차로 수익을 얻는 사람에게는 수익을 배로 벌어들일 수 있었다.

 

마차의 시대가 끝난 이후, 2층 버스가 등장했던 초기에는 운전사가 독립 구성으로 마련된 운전석에 앉았다. 승객들은 뒷편에 마련된 입구를 통해 승차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차장 누나`라고도 불렸던 버스 차장(Bus Conductor)이 자리하여 승객들에게 요금을 받았다.

실제 승객들은 후방에 마련된 개방형 입구를 통해 승차하던 방식을 선호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금지될 수 밖에 없었다. 가령 승객들이 버스를 타려고 뜀박질을 한다던가, 높이 뛰어오르다 밖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2층 버스는 런던 관광의 명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런던 시민들에게는 주로 통근용 교통수단으로 여겨진다. 2층 루프가 없는 오픈 탑 모델이 주로 관광객들을 위한 교통 수단으로 사용되곤 한다.

런던의 명물이긴 하지만 2층 버스는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전국구 교통수단이다. 특히 북미에서 볼 수 있는 연결식 버스보다 길이가 짧고 승객 수용력도 더 높다. 그리고 땅덩어리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 좁은 길이나, 코너가 많은 영국에서 운전하기가 훨씬 수월하여 운전사들이 선호하는 편이다.

여담으로, `Phyllis Thompson` 여사는 영국에서 최초로 2층 버스 운전사 자격을 거머쥔 여성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녀는 버스 회사인 Messrs.Felix Motors사에서 근무했고, 이후에는 동커스터 지역에 있는 하트필드에서 운전 기사로 활약했다.

 

런던에 있는 버스들은 대부분 2층 버스로, 빨간 2층 버스는 런던을 너머 영국의 상징으로까지 자리매김한 아이콘이다. 특히 그 아이코닉한 이미지에 가장 어울리는 모델은 바로 AEC사의 루트마스터(RouteMaster) 모델이다.

AEC 루트마스터는 런던 대중 교통 개발을 맡는 'London Transport Executive`에서 디자인되었고, 본격적인 제작 및 생산은 AEC (Associated Equipment Company)와 `Park Royal Vehicles`에서 실시했다. 1954년 첫 생산된 루트마스터는 하프캡 방식의 바디 타입에 엔진을 보닛 아래에 얹고 뒤가 개방된 구조를 지녔다.

거꾸로, 도어가 장착된 출입구를 차량 앞 쪽에 배치하고 엔진을 뒤에 장착한 프로토타입도 존재했다는 것이 재미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본격적인 상용 운행은 1956년에 실시되었고, 루트마스터는 근 50년 동안 런던 시내를 열심히 돌아다니다 2005년에 명예로이 퇴역했다. 특히 아기자기한 디자인은 루트마스터가 오랜 시간 동안 런던 시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이었다. 루트마스터는 버스 민영화 과정에서도 당당히 자리를 지켰고, 런던 이외 지역의 버스 사업자들에게도 사랑 받아오며 명맥을 유지했다.

오리지널 모델이 현역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루트마스터는 여전히 런던 2층 버스의 아이콘으로 간주되며, 상징적 지위를 지켜내고 있다. 루트마스터야 말로 영국인들에게 2층 버스 `그 자체`인 셈이다. 여전히 `15H` 루트에서는 이 구식 2층 버스가 운용되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루트마스터는 콩코드, 로버 미니,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런던 지하철 지도, WWW, K2 전화 박스 등이 선정된 `영국 최고의 디자인 아이콘`에도 선정되어 다시금 영국 도로 역사의 빨갛고 커다란 획을 그었다. 이러한 높은 상징성을 인정받아 `레고 크리에이터` 시리즈로 상품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날이 중요성이 대두되는 안전, 그리고 매연을 뿜어대는 구식 엔진 덕에 환경론자들에게 루트마스터는 눈엣가시였다. 따라서 시대의 흐름에 굴복하며 아쉽게 현역에서 물러나야 했다.

 

전통, 그리고 시민들의 추억이 담긴 루트마스터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얹은 신형 모델에게 뒤를 맡겼고, 2015년 10월에는 중국 BYD가 제작한 매연을 전혀 내뿜지 않는 완전 전기 2층 버스가 운용되기 시작하여 전동화 시대에 발맞추고 있다.

 

영국 수상을 네 차례나 역임했던 윌리엄 글래드스턴(William Gladstone)은 "런던을 구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2층 버스 꼭대기에서 런던을 내려다보는 것이다"고 말했다. 런던을 가게 되면, 부디 빨간 2층 버스 꼭대기에 앉아 런던 경치를 바라보라는 그의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