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지창과 세 꼭지 별. 혈통 있는 두 가문의 ‘화끈이’들이 맞붙었다. 마세라티 기블리 S Q4와 메르세데스-AMG E 43 4매틱이다. 두 모델은 닮은 구석이 많다. 5m에 달하는 차체 길이와 4개의 도어, 400마력 대 V6 3.0L 가솔린 트윈터보 심장, 매콤한 안팎 디자인 등이 그렇다. <로드테스트>가 마련한 링 위에서 두 맞수가 ‘으르렁’대며 한 판 붙었다.

마세라티는 몇 년 전만 해도 소량생산 부티크(Boutique) 브랜드였다. 그러나 이제 대량생산 제조사로 거듭나는 중이다. 먼 산처럼 아득해보였던 그들이 문턱을 낮추고 소비자를 유혹한다. 그 중심에 기블리가 서있다. 남다른 외모과 고성능 엔진, 1억 원 초반 대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독일제 세단의 틈바구니를 정 조준했다.
메르세데스-AMG E 43 4매틱도 겨눈 과녁은 비슷하다. ‘43’이라는 숫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래 AMG 63과 AMG 65는 소수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가격도 비쌀뿐더러 어지간한 담력으론 다루기 힘든 흉흉한 성능을 뽐낸다. 그래서 벤츠는 엔진의 힘과 가격은 줄이되, AMG의 짜릿함은 듬뿍 담아 AMG 43을 빚었다.
출생의 비밀

기블리의 시작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등장한 2도어 스포츠카다(코드네임 AM115). ‘펜두상어’처럼 길쭉한 콧날과 매끈한 지느러미 등 이탈리안 감성으로 똘똘 뭉쳤다. 디자인은 조르제토 주지아로(Girogetto Giugiaro)가 맡았다. 페라리 250GT 캘리포니아와 알파로메오 쿠페 2000, 피아트 850 스파이더 등을 빚은 ‘감성파’다.

1973년, 기블리는 7년 남짓 짧은 생을 끝으로 종적을 감췄다. 이후 1992년, 약 20년 만에 2세대에게 바통을 넘겼다. 코드네임은 AM336. 이번엔 람보르기니 쿤타치와 미우라, BMW 1세대 5시리즈를 빚은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가 디자인을 주도했다. 문 두 짝 품은 쿠페에 V6 2.0L 가솔린 트윈터보 심장 얹어 뭇 남성의 감성을 촉촉이 적셨다.

2세대 역시 7년 동안 살다가 떠났다.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의 전신이자 기블리의 실질적 후계자인 3200GT에게 1998년 바통을 넘겼다. 오늘 소개할 기블리는 2013년에 등장한 3세대(코드네임 M157). 그것도 멋스러운 4도어 스포츠세단의 탈을 쓰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기다림이 컸던 만큼, 영화 분노의 질주 새 시리즈를 기다리는 일보다 드라마틱했다.

E-클래스의 출발은 기블리와 사뭇 다르다. E-클래스란 이름을 쓴 첫 모델은 1984년 선보인 코드네임 W124였다. 그러나 벤츠는 1947년 나온 코드네임 170V의 136시리즈를 E-클래스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이 족보에 따르면 지난 6월 국내에 나온 E-클래스는 10세대다. 우아한 안팎 모습과 첨단 안전장비를 무기로 벤츠의 중심 타선을 두둑이 살찌웠다.
각 브랜드의 개성 물씬한 외모


태생이 다른 만큼, 풍기는 분위기도 천차만별이다. 기블리는 TV 속 연예인처럼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졌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970×1,945×1,455㎜. 휠베이스는 3,000㎜다. 사이즈는 구형과 같은데, 비결은 눈매와 그릴, 범퍼 등 세 군데에 숨어있다. 얼굴 화장을 집중적으로 고친 셈이다. 게다가 공기저항계수도 Cd 0.31→0.29로 7% 개선했다.
눈동자는 이른바 ‘어댑티브 풀-매트릭스 LED’. 오토 하이빔 모드를 시종일관 켜도 상관없다. 앞차 또는 마주 오는 차를 빼고 사방으로 빛을 뿌린다. 콧날엔 12개의 수직 장식을 10개로 줄였다. 게다가 테두리를 도톰하게 매만져 기존보다 그릴로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상당하다. 압권은 범퍼. 그란루소와 그란스포트 등 두 개의 표정으로 거듭났다.


오늘 만난 기블리는 화끈한 그란스포트 버전이다. 3개 구역으로 나눈 숨구멍에 CFRP(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을 덧발라 존재감이 남다르다. 옆태도 기블리의 자랑거리 중 하나. 길쭉한 보닛과 매끈한 지붕 등 선조의 가치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네 발에 자리한 21인치 알루미늄 휠과 CFRP 도어손잡이도 유별나다.


AMG E 43 4매틱은 겉모습으로 풍기는 자극이 적다. 앞뒤 범퍼와 그릴 속 크롬 핀 장식, 대구경 브레이크, CFRP 사이드미러를 빼면 AMG 라인 곁들인 일반 E-클래스와 구분이 쉽지 않다. 물론, 400마력 대 흉흉한 성능을 의뭉스럽게 감추고픈 벤츠의 의도일 수도 있다. 화끈한 재미를 원하되 시선을 끌고 싶지 않은 소비자의 취향을 저격했다.





외모에서 느낀 실망감은 문을 열자 훌훌 날아갔다. 몇 가지 포인트 더했을 뿐인데, 평범한 비즈니스 세단에서 운전대 탐나는 자동차로 변신했다. 눈에 띄는 모든 곳이 화려하고 웅장하다. 따뜻한 나무와 가죽 장식 대신 ‘반짝이’ 알루미늄과 크롬, 스웨이드, 빨간 실을 곁들여 완성했다. 시트는 마사지도 제공하고 사이드 볼스터는 무려 10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반면, 기블리의 속살은 운전대부터 남다르다. 스티어링 휠 뒤쪽에 자리한 서슬 퍼런 패들 시프터부터 주무르고 싶다. 전통적인 아날로그 계기판과 두툼한 기어레버, 스웨이드로 치장한 천장 등 ‘남자다움’이 물씬하다. 그렇다고 디지털과 담 쌓은 건 아니다. 8.4인치 멀티 터치스크린을 중앙에 심고 아래에 공조장치 버튼을 옹기종기 모아 놨다.
모두 V6 3.0L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 얹어

AMG와 마세라티. 목청 높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유명하다. E 43 AMG 4매틱은 V8 AMG와 달리 중‧고음 영역의 색채가 뚜렷하다. 또한, 기어 단수를 높일 때 들리는 “방~방” 사운드, 가속 페달에서 발 뗄 때 터지는 콩 볶는 소리가 흥분의 도가니로 밀어 넣는다. 하지만 기블리 S Q4의 남다른 악다구니에 AMG의 포효는 슬그머니 묻혔다.

기블리 S Q4의 보닛 속엔 V6 3.0L(2,979cc)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이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좌우로 구불구불 펼친 흡기관과 시뻘건 엔진 커버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이 엔진은 미국 크라이슬러의 인디애나 코코모 캐스팅 공장에서 알루미늄으로 빚은 V6 엔진 블록을 가져와 페라리 이탈리아 마라넬로 공장에서 완성한다.
파트너는 ZF 자동 8단 변속기. 보편적인 토크컨버터 방식이지만 불과 0.15초 안에 각 단을 오르내린다. 또한, M(Manual, 수동) 모드에선 타코미터 눈금이 레드존(6,500rpm)까지 치솟아도 자동으로 변속하지 않는다. 그만큼 운전자의 주도권이 크다. 5,750rpm에서 최고출력 430마력을 뿜고 2,500~4,250rpm에서 최대토크 59.2㎏‧m를 토한다.

메르세데스 AMG E 43 4매틱은 V6 3.0L(2,996cc) 가솔린 트윈터보 심장을 품었다. E 400 4매틱의 코드네임 ‘M276‘ 엔진을 밑바탕 삼아, 최고출력을 333마력에서 401마력으로 끌어올렸다. 최대토크는 53.0㎏‧m로 2,500~5,000rpm에서 뿜는다. 여기에 벤츠가 직접 만든 9G 트로닉 9단 자동변속기를 짝 지었다. 단, 엔진에 별도의 AMG 엔지니어 서명이 없다. 설계는 AMG가 하지만 제작은 메르세데스-벤츠 공장에서하기 때문이다.
소위 ‘제로백’이라고 부르는 0→시속 100㎞까지 가속 성능은 기블리 S Q4가 단 4.7초. 최고속도는 시속 286㎞를 뽐낸다. AMG E 43 4매틱은 각각 4.6초, 시속 250㎞(전자제한)다. 성능제원처럼 둘의 차이는 오십보백보였다. AMG E 43 4매틱은 촘촘한 기어비의 혜택을 톡톡히 봤다. 시속 45㎞에서 2단, 시속 80㎞에서 3단을 물어가며 속도에 살을 붙였다.

반면 기블리 S Q4는 촘촘한 기어비보다 넉넉한 엔진의 힘을 살렸다. 1단 기어를 시속 60㎞까지 끌고 가며 차례차례 다음 단으로 갈아탄다. 단, 시속 100㎞을 살짝 못 미쳐 3단 기어를 물어 정지가속 테스트에서 손해를 봤다. 그러나 감성적인 만족도는 기블리의 승리. 날것처럼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가 실내를 가득 메우며 절정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성질은 굽잇길에서도 드러났다. AMG E 43 4매틱은 전반적 균형이 환상적이다. 코너 바깥쪽 바퀴를 든든하게 짓누르며 콤파스 돌리듯 정직하게 궤적을 그려낸다. 똑똑한 조수들이 부족한 내 실력을 다독이며 달리는 맛이 썩 나쁘지 않다. 가진 패도 다양하다. 에코와 컴포트, 스포트, 스포트 플러스, 인디비주얼 등 입맛대로 움직임을 주문할 수 있다.

그러나 기블리 S Q4는 운전대를 쥐는 순간 느낌이 온다. 좀처럼 속내를 알기 힘든 ‘변칙파’다. 때로는 엉덩이를 크게 흔들며 심술도 내고, 때로는 단단하게 노면을 붙들며 안정감을 키운다. 그만큼 운전자가 가진 권력이 더 크다. 주행 모드는 노멀과 스포트, ICE(Increased Control & Efficiency, 효율을 최대한 뽑는 모드) 등 단 3가지.
두 모델 모두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을 품었지만 성격 차이가 뚜렷했다. 가령, AMG E 43의 4매틱은 엔진의 힘을 앞바퀴로 31%, 뒷바퀴로 69%로 나눈다. 반면, 기블리 S의 Q4 시스템은 주행 환경에 따라 앞뒤로 0:100 또는 50:50까지 나눌 수 있다. 반면 AMG E 43 4매틱은 고정이다.

시속 40→100㎞ 추월가속 테스트 결과도 흥미롭다. AMG E 43 4매틱은 4단에서 순식간에 2단을 내려 물고 3,000rpm부터 맹렬하게 가속한다. 그러나 정지가속 테스트와 다르게 다소 굼뜬 반응이 산통을 깼다. 변속기와 엔진 모두 크게 한 번 숨을 고른 뒤 속도를 붙였다. 터보차저 특유의 지연 현상도 유독 눈에 띄었다.
기블리 S Q4는 마찬가지로 4단에서 2단까지 내린 뒤 가속을 이어갔다. 두 차의 절대적 수치 차이는 크지 않지만, AMG E 43 4매틱보다 준비 과정이 빨랐다. 이를테면 터보 랙 현상이 작아 가속 페달을 밟음과 동시에 속도에 살을 붙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지가속 테스트와 마찬가지로 시속 100㎞ 부근에서 3단으로 변속해 기록에서 손해를 봤다.
<표1 시속 100㎞→0 제동 테스트 결과>

마지막은 시속 100㎞에서 완전히 정지하는 데 필요한 거리를 계산하는 제동 테스트. 기블리 S Q4는 44.3m 만에 멈춰 섰고, E 43 4매틱은 44.8m가 필요했다. 두 차 모두 영상 4.5°의 기온 탓에 고성능 여름용 타이어가 제 성능을 못 냈다. 절대 수치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감각적인 부분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보였다.

제동 초기 반응은 AMG E 43 4매틱이 앞섰다. 네 발을 노면에 짓누르며 안정감 있게 빗장 거는 모습이 일품이다. 반면 기블리 S Q4는 브레이크 페달의 유격이 상대적으로 크고 초기 반응도 AMG E 43 4매틱보다 늦다. 또한, 부드러운 서스펜션 탓에 앞머리를 깊숙이 숙이며 제동력을 끌어냈다. 결과는 기블리 S Q4의 승리.
기블리 S Q4와 AMG E 43 4매틱. 이탈리아와 독일 출신의 두 맞수를 저울질했다. 두 차는 서로 닮은 듯 다른 모습으로 각자의 매력을 어필했다. 메르세데스-AMG E 43 4매틱은 전 과목에서 1등급 받은 모범생처럼, 모든 분야에서 평균 이상의 능력을 뽐냈다. 하지만 고성능 세단에게 기대할 수 있는 감성적인 요소를 잃은 느낌이다.

마세라티 기블리 S Q4는 상대적으로 불편했다. 운전대는 여느 세단보다 크고 뒷좌석은 큰 덩치 치곤 좁았다. 그러나 예쁘고 아름다운 장신구와 웅장한 연주, 화끈한 굽잇길 성능 등 이성보다 감성적인 매력으로 똘똘 뭉쳤다. 오늘 하루 평범하고 싶지 않은 난, 기블리 S Q4와 남은 시간을 더 보내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