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Nostalgia] 'B.실바가 연상시키는' 에얄 베르코비치 - 84

이형주 기자 2017. 10. 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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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 'B.실바가 연상시키는' 에얄 베르코비치 - <84>

지난 8월 26일 잉글랜드 본머스에 위치한 골드샌즈 스타디움에서 AFC 본머스와 맨체스터 시티 간의 2017/18시즌 프리미어리그 3라운드 경기가 펼쳐졌다. 이날 선발 출전한 다비드 실바와 베르나르두 실바 콤비는 환상적인 패스를 선보이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경기를 본 前 BBC 리포터 이안 치즈만은 자신의 SNS에 "D.실바&B.실바 콤비는 나로 하여금 알리 베나르비아&에얄 베르코비치 콤비를 연상시킨다"고 말해 맨시티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연령이나 맨시티 커리어를 비교해봤을 때 D.실바를 베나르비아, B.실바를 베르코비치에 비견하면 알맞아 보인다. 두 선수 중 베르코비치는 어떤 길을 걸었을까?

베르코비치는 1972년 이스라엘 레그바에서 태어났다. 1989년 자국 명문팀인 마카비 하이바에서 프로경력을 시작했다. 베르코비치는 1990/91시즌 2관왕을 비롯해 훌륭한 커리어를 쌓았다.

베르코비치가 클럽팀, 그리고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자 지켜보는 팀들이 늘어났다. 구체적인 행동에 나선 팀이 사우샘프턴 FC였다. 사우샘프턴은 1996/97시즌 베르코비치를 임대로 영입했다. 베르코비치는 빅리그 데뷔는 처음임에도 자신의 실력을 뽐냈다. 1996년에는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 상대로 2골 3어시스트로 6-3 대승을 이끌기도 했다.

베르코비치는 맹활약으로 인해 프리미어리그로 눌러앉게 됐다. 1997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는데 이 때는 임대가 아닌 완전 이적이었다. 베르코비치는 이적 후 빠르게 웨스트햄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로 자리잡았다.

1997년 8월 프리미어리그 2라운드 토트넘 핫스퍼와의 런던 더비에서 득점한 것을 비롯 웨스트햄 소속으로 79경기에서 12골을 기록했다. 웨스트햄에서 베르코비치는 1997/98시즌 스트라이커 존 하트슨과 환상적인 호흡으로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눈빛만 봐도 통했던 두 선수는 훈련장에서의 다툼으로 멀어지게 됐다. 두 선수가 훈련 중 몸싸움을 벌이는 선수가 그대로 카메라에 잡혔다. 하트슨은 발로 베르코비치의 얼굴을 가격했고 베르코비치는 하트슨의 발을 걷어찼다. 이로 인해 하트슨은 구단 징계를 받게 되고 베르코비치는 팀을 떠나버리게 된다.

베르코비치가 둥지를 새롭게 튼 곳은 스코틀랜드의 셀틱 FC였다. 베르코비치의 활약이 셀틱에서도 훌륭했지만 그는 잉글랜드를 그리워했다. 베르코비치는 셀틱에서 2년 간 머물렀는 데 중간에 블랙번 로버스로 임대를 떠나 팀의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공헌하기도 했다.

베르코비치는 2001년 챔피언십(2부리그) 맨시티행을 이적했다. 베르코비치는 2001년 8월 챔피언십 1라운드 왓포드 FC전에서 1득점을 올리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베르코비치는 이후 부상으로 인해 잠시 전력에서 제외됐다. 이 시기 알리 베나르비아라는 또 다른 플레이메이커가 맨시티에 도착했다.

베르코비치와 베나르비아 간의 공존 문제가 대두됐다. 하지만 케빈 홀록이 뒤를 받치고 두 선수가 이타적인 플레이를 펼치자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맨시티는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확정지었다.

오랜만에 복귀한 프리미어리그에서 베르코비치가 환상적인 실력을 뽐냈다. 2002/03시즌 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1로 꺾는데 일조했다.

이후 맨시티는 두 명의 플레이메이커를 중용하는 전술에서 한 명의 플레이메이커만을 기용하는 전술을 주로 택했다. 이에 베르코비치는 베나르비아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베르코비치는 출전할 때마다 맹활약하며 팬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행복한 날들만 이어질 것 같았던 맨시티 생활은 종료됐다. 2004년 1월 베르코비치는 케빈 키건 감독과 마찰을 겪으며 포츠머스 FC로 이적했다. 역설적이게도 베르코비치의 포츠머스 데뷔전은 맨시티전이었다. 이 경기에서 베르코비치는 팀의 4-2 승리를 이끌며 복수에 성공했다.

이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웨스트햄에 해리 레드납 감독이 부임했다. 레드납은 웨스트햄 시절 영국 언론 를 통해 베르코비치를 "특별한 축구선수"라 극찬한 바 있었다. 이 때문에 베르코비치의 입지가 한층 강화됐다. 베르코비치는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베르코비치는 2004/05시즌 출전 횟수가 극히 줄었다. 크리스탈 팰리스 등 많은 잉글랜드 클럽들이 이적 제의를 했다. 하지만 이를 다 거절하고 고국의 마카비 델 아비브로 이적한 뒤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EPL 최고의 순간

1996/97시즌 프리미어리그 11R에서 사우샘프턴과 맨유가 맞붙었다. 이날 주인공은 단연 베르코비치였다. 베르코비치는 이날 무려 2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6-3 대승을 이끌었다.

◇플레이 스타일

현재 맨시티에서 맹활약 중인 B.실바를 연상시키는 선수였다. 드리블과 돌파, 패스에 능했다. 前 리버풀과 뉴캐슬의 감독 그레엄 수네스는 영국 언론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빼어난 패서다. 특히 위험 지역에서 찔러주는 패스는 최고 수준"이라며 극찬하기도 했다.

◇프로필

이름 – 에얄 베르코비치

국적 - 이스라엘

생년월일 - 1972년 4월 2일

신장 및 체중 - 170cm, 64kg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국가대표 경력 – 78경기 9골

사진=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total87910@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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