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미쳐 날뛰는 생활툰」-쉽고 재미있는 생활툰에 던지는 질문
웹툰산업과 시장이 성장할수록 비판과 토론, 대응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테지만 거기에 플랫폼이 직접 나설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아무튼 확실한 건 ‘김닭’이 댓글 상에서 벌어지는 폭로전 때문에 죽어가는 사이 플랫폼은 그 트래픽으로 돈을 계속 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글을 쓸 때 옆에 두고 곱씹는 문구가 있다. “‘비평’은 ‘이것이 이래서 잘못되었고 저것은 저래서 잘못되었다’며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과 권력 작동을 통해 발생하는 배제에 도전하고 이를 폭로하는 작업이다. 즉 옳고 그름을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사건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은폐되는 것, 당연시되는 것, 은폐와 당연시하는 태도로 발생하는 폭력과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권력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이다.”(<양성평등에 반대한다> 43쪽) 이 문장이 말하는 바 비평은 절대적 윤리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물론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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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ng 작가의 만화 「미쳐 날뛰는 생활툰」의 한 장면. / 네이버웹툰 |
작품 속 명랑 캐릭터와 현실의 우울
위 인용문에서 말하는 ‘비평’의 정의는 근본적으로 사건이든 작품이든 다른 방면의 시각을 허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사건이나 대상에 대한 절대적이고 유일한 해석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이 존재한다면 오히려 그 (주류의) 해석이야말로 뭔가를 은폐하는 권력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평이란 칼럼일 수도 있고, 에세이일 수도 있고, 웹툰일 수도 있다. 비평은 특정 형식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대상 안에서 발현된 권력 구조와 은폐된 폭력을 폭로하는 작업, 그 자체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웹툰 <미쳐 날뛰는 생활툰>은 범람하는 생활툰에 대한 깊이 있는 비평을 내놓는다. <미쳐 날뛰는 생활툰>은 한 웹툰 작가지망생의 삶이 본인이 그린 생활툰으로 인해 망가져 가는 과정을 그린다. 작중 주인공 ‘김닭’은 미대생으로 판타지 장르의 만화를 그리기 위해 수년 동안 세계관 구성, 캐릭터 준비를 하다가 돌연 그만두고 장르를 바꾸어 생활툰을 그리기 시작한다. 보다 쉽고 빠르게 만화를 그릴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가볍게 시작한 연재였지만, 연재 회차가 거듭될수록 소재는 고갈되고 ‘김닭’의 인간관계도 궁지에 몰린다. 주변 인물들을 과하게 희화화하기도 하고, 학내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자기중심적인 관점으로 웹툰에 재현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김닭’은 자신에게 친화적이었던 사람들을 잃어간다.
사람들은 떠났지만, 여전히 연재를 이어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김닭’은 이윽고 일상을 지어내 웹툰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만화를 창작하는 게 아니라 만화에 전시하기 위해 다른 일상을 창작해내는 것이다. 생활툰 특유의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이어야 하다 보니 생활툰 속에 재현되는 주인공은 늘 엉뚱하고 귀엽기만 한데, 사람들을 모두 잃고 자취방에 홀로 처박혀 외출하지도 않는 실제의 ‘김닭’은 깊은 우울감 속에서 산다. 캐릭터와 실제 삶의 간극 사이에서 ‘김닭’이 그리는 생활툰은 정말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미쳐 날뛰는 생활툰>은 생활툰을 둘러싼 다양한 권력들의 작동 양상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가장 먼저 창작자인 작가가 일상을 재현하는 권력이 있다. 펜이 무기라는 것은 비단 글 쓰는 이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김닭’의 펜도 무기로 작동한다. ‘김닭’은 학교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웹툰으로 재현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악의적인 사람으로 몰아가고, 주변 인물의 단점 또는 약점을 부풀려 희화화한다. 함께 만화가를 꿈꾸던 친구는 ‘꿈을 포기한 사람’으로 쉽게 매도해버리면서 정작 ‘김닭’ 자기 자신은 꿈을 좇아 꿋꿋하게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 부각시킨다.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히 동의 받지 않은 채 창작된 ‘김닭’의 웹툰은 김닭의 주변 사람들에게 폭력이 된다.
작가를 움직이는 댓글들
댓글 역시 웹툰에 작동하는 권력의 일환이다. ‘김닭’이 생활툰을 연재하기 시작한 초반부에 댓글은 작가를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작동한다. ‘작가님 죽지 마세요. 한 명의 팬이 여기 있습니다’라거나 ‘작가님 존경합니다’ 같은 댓글들에 ‘김닭’은 더 신이나 만화를 그리고, ‘(소재 고갈되어) 돌려막기 하냐’는 댓글에 머리를 싸맨다. 댓글들은 익명성 뒤에 숨어 작가를 움직인다. 보람찬 응원이 되었다가 서늘한 칼날이 되기도 하면서 ‘김닭’을 점차 조여간다. 이 댓글들은 익명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작가에게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김닭’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큰 권력으로 작동한다.
‘김닭’과 댓글은 <미쳐 날뛰는 생활툰> 전면에 드러나 있는 권력이지만 이 작품에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플랫폼의 권력이다. 플랫폼은 마치 ‘빅브라더’처럼 ‘김닭’을 주목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작품의 퀄리티가 괜찮은 편인지, 연재는 성실히 하는지 플랫폼은 ‘김닭’ 주변을 배회하며 늘 감시(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느껴지게)한다. 고료 한푼 받지 않는 아마추어 작가가 왜 정식 작가처럼 연재해야 하는가. 언제 연락이 올지, 연락이 오는 기준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정식 연재’라는 희망고문은 ‘김닭’을 조여오는 또 다른 족쇄가 된다. 주변 사람들의 비난과 오해 역시 ‘김닭’에게 스트레스가 되지만, 댓글과 플랫폼은 그보다도 더 작가를 한없이 들뜨게도, 절망에 몰아넣기도 하는 핵심 권력으로 작동한다. 이런 과정에서 ‘김닭’은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심각하게 고립된다.
고립으로 인하여 이미 실제 삶의 모습은 다소 붕괴되고 있었지만, ‘김닭’이 완벽히 무너졌던 건 플랫폼에서였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 그러나 결국 만화가를 꿈꾸는 ‘김닭’이 다시 돌아가야 할 곳도 플랫폼이다. 생활툰에서 판타지로 장르를 바꾼다 한들 여전히 플랫폼의 권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을 마음대로 그려 넣거나 우스꽝스럽게 재현하는 문제는 당연히 사라지겠지만 플랫폼의 권력망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여기서부터는 생활툰, 아니 웹툰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아마추어 작가도 정규 작가처럼 연재해야 한다’거나 하는 시장의 암묵적인 규칙은 플랫폼을 기준으로 정해지고, 콘텐츠 생산자는 대부분 자신의 속도나 리듬이 아니라 플랫폼의 리듬대로 자신을 끼워맞춰야 한다. 플랫폼은 논쟁에 있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웹툰의 댓글창에서 논쟁이 일어나거나 특정 작가에 대한 연재 중단 청원이 일어날 때다. 웹툰산업과 시장이 성장할수록 비판과 토론, 대응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테지만 거기에 플랫폼이 직접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확실한 건 ‘김닭’이 댓글 상에서 벌어지는 폭로전 때문에 죽어가는 사이 플랫폼은 그 트래픽으로 돈을 계속 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떤 작품이든, 아무리 정교하게 쓰인 글이어도 그 안에는 생략된 문제현상들이 숨어 있다. 그것들을 발굴하여 질문하는 것이 비평의 역할이라고 할 때, <미쳐 날뛰는 생활툰>은 ‘쉽고 재밌고 귀여운’ 생활툰(과 그리고 그 독자들)에 뼈아픈 질문을 던지는 좋은 비평이다. ‘김닭’의 갈등은 자신과 관련한 모든 것을 단일 시각으로만 읽으려고 할 때 시작되었다. 유일한 시각에 매몰되지 않고 사건에 대해 다른 관점이 파고들 수 있는 틈새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그리고 그 틈새를 통해 새로운 문제의식을 꺼낼 때 확장된 물음이 가능해진다. 생활툰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 독자~작가~주변 인물 간의 문제로, 그리고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시 플랫폼의 영역으로 지변이 넓어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비평이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히 누군가를 질타하는 일은 오히려 쉽다. 어렵고 핵심적인 것은 그 너머에 있다. 비평은 무엇이고 왜 하는가. 아직 탐구하는 중인 내게 <미쳐 날뛰는 생활툰> 같은 웹툰은 단비같이 고마운 작품이다. ‘비난하지 말고 비판을 하자’는 구호를 지나 이제는 낙인 아닌 비평으로 넘어서야 할 때다.
<조경숙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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