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내연녀가 따라준 소주..청산가리 살인의 진실

박보희 기자 2017. 11. 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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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디브리핑: 청산가리 소주 살인사건의 전말]

[편집자주] 디브리핑(debriefing). 사전에 받는 브리핑(briefing)과 반대로 사후에 받는 보고를 말합니다. 관심을 끌었던 사건이 일단락된 뒤 또는 진행되는 도중에 머니투데이 법조팀(the L)이 사건을 쉽게 요약 정리해드리는 코너입니다.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은 부당하지 않다."

불륜은 결국 비극으로 끝났다. 지난달 23일 대법원은 A씨에게 무기징역을 최종 선고했다. A씨의 죄명은 살인. A씨는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법원은 3심에 걸쳐 일관되게 A씨가 소주에 청산가리를 타 내연남의 부인 B씨을 살해했다는 결론을 바꾸지 않았다. 이른바 '청산가리 소주 살인사건'은 피해자가 사망한지 2년9개월만에 그렇게 마무리됐다.

A씨가 B씨를 살해하는 장면을 본 목격자도, CCTV 영상도 없었다. A씨는 끝까지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 A씨가 내연남의 부인인 B씨를 살해했을 것이라는 정황은 있지만 직접증거는 없었다. 그럼에도 법원은 A씨의 범행을 확신했다. 이유가 뭘까?

◇ 사인은 소주에 탄 청산가리…자살일까 타살일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수사 결과 확인된 그날의 상황은 이렇다.

사건 당일 밤 11시 A씨는 소주를 사들고 B씨의 아파트 앞으로 찾아가 B씨를 불러냈다. 밤 11시37분 A씨 차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던 이들은 46분 함께 차에서 나와 B씨의 집으로 들어갔다.

A씨가 집 밖으로 나온 것은 한 시간 쯤 지난 새벽 12시46분, 11층 높이의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내려온 A씨는 자신의 차를 타고 B씨의 아파트에서 떠났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B씨의 집으로 돌아온 A씨는 10분 쯤 B씨의 집에 머물렀다가 계단으로 내려와 자신의 타를 타고 B씨의 아파트에서 떠났다.

B씨의 남편이 집에 온 것은 새벽 4시20분쯤. 집에 들어간지 6분쯤 후 남편은 A씨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A씨가 B씨의 집에 도착한 것은 새벽 4시47분. 남편은 쓰러진 B씨를 업고 나와 A씨의 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 새벽 5시11분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심정지 상태였던 B씨는 40분간의 심폐소생술에도 깨어나지 못했다.

B씨의 사인은 청산중독으로 드러났다. 부검 결과 B씨의 혈액에서 치사량을 초과하는 청산가리와 알코올이 검출됐다. 집에서 발견된 소주병에서도 청산가리가 발견됐다. 검찰은 B씨가 청산가리가 희석된 소주를 마시고 10분 안에 사망한 것으로 결론을 냈다.

경찰은 A씨를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A씨는 무죄를 주장했다. A씨는 "B씨에게 사과하고 헤어지라고 하면 헤어질 생각으로 찾아갔고, 소주를 마시고 헤어졌다"며 B씨가 자살했을 가능성과 B씨의 남편이 B씨에게 청산가리 소주를 먹였을 가능성도 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집 안에서도, 발견된 소주병에서도 A씨의 지문이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실제 A씨가 B씨에게 청산가리 소주를 먹였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는 상황. 하지만 법원은 A씨를 살인범으로 인정했다.

◇"간접증거들이 모여 확신이 생겼다면 범죄 사실 인정 가능"

법원은 먼저 A씨의 범죄 동기가 충분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A씨와 B씨 남편은 이미 1년여간 불륜을 이어오던 사이로 B씨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 A씨는 B씨에게 남편과 자신의 불륜 사진을 보내는 등 거듭 이혼을 요구하고 있었다. 딸을 생각해 이혼만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 B씨는 남편과 헤어져주는 댓가로 A씨에게 집을 담보로 3억5000만원이라는 거액의 돈까지 줬지만, A씨와 남편의 불륜은 계속됐다.

검찰이 압수한 A씨의 휴대폰과 컴퓨터에서는 A씨가 청산가리를 사기 위해 이메일과 문자를 보낸 기록이 복구됐다. A씨는 "얼마든지 원하는 금액을 줄 테니 청산가리를 판매하라" "청산가리 삽니다. 원하시는 가격에 삽니다"라고 수차례 메일과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또 '청산가리 구입 방법' '청사가리 죽이기' '청산가리 타살' 등의 내용을 자주 검색한 사실이 드러났다.

깔끔하게 정리된 현장 역시 A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A씨는 B씨의 자살을 주장했지만 소주병에서는 B씨의 지문도 나타나지 않았다. 법원은 자살을 하는 B씨가 소주병에 남은 자신의 지문을 지우고 흔적을 지웠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남편이 집에 도착해 B씨를 병원에 옮기기까지 10분도 채 안되는 시간 동안 B씨에게 청산가리가 든 소주를 먹이고 현장을 정리했다는 것 역시 설득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A씨의 심리생리검사(거짓말탐지기) 분석 결과 역시 A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당신은 소주에 청산가리를 당신의 차 안에서 탔습니까"라는 분석관의 질문에 A씨의 입은 "아니오"라고 답했지만, A씨의 다른 신체에서는 '거짓말'을 가리키는 반응이 나타났다.

법원은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거에 의해야 한다"면서도 "이같은 심증이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해 형성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위반되지 않는한 간접증거에 의해 형성되기도한다"며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 범죄사실에 대한 완전한 증명력을 갖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상호 관련하에 종합적으로 고찰해 증명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지만, 끝까지 무죄를 주장한 A씨는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세상과 격리됐다.

박보희 기자 tanbbang1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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