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스토리] 새벽출근·야근에 주말근무까지..과로사하는 사람들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조윤진 정예은 인턴기자 = 지난 6월, 경기도 한 우체국 휴게실에서 50대 집배원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반년 가까이 세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했다. 그는 뇌출혈로 숨지기 전날에도 빗속에서 택배를 배달했다.
지난해에는 40대 공무원 B씨가 자택에서 숨졌다. 사인은 심장 대동맥 박리. B씨는 죽기 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소독근무와 연말 서류정리 업무를 맡았다. 두 달 동안 거의 매일 오전 7시 40분 출근해 하루 14시간 정도 일했다. (*대동맥 박리 : 심장과 연결돼 몸 곳곳으로 혈액을 보내는 대동맥의 내벽이 찢어지는 현상)
동료와 유족들은 '사람 잡는' 업무 강도가 이들의 과로사 배경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사회는 얼마나 지쳐있을까. 과로 실태를 짚어봤다.
◇ 과로 권하는 사회…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비율 OECD 1위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 17일 직장인 1천486명을 대상으로 야근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직장인 중 78.9%는 야근한다고 응답했다. 일주일 평균 야근일수는 4일이었다.
야근 이유는 '업무가 많아서(56.2%, 복수응답)'가 가장 많았다. '업무 특성상 어쩔 수 없어서(38.7%)', '야근을 강요하는 분위기(30.3%)' 때문이라는 이들도 상당했다.

한국의 1인당 근로시간은 2015년 기준 연평균 2천113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근로시간 1천766시간보다 347시간 이상 높다.
과로사는 주로 야근이 많은 노동자, 교대근무자, 육체노동, 업무강도가 높은 직업군에서 발생한다. 많은 수의 직장인이 과로사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의미다.

학계에서는 초과근무 하는 사람일수록 질병 발병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2010년 핀란드 헬싱키대학 마리안나 비타렌 박사팀 연구 결과 하루 3~4시간 초과근무한 근로자가 정상 근무 근로자보다 관상동맥질환에 걸릴 위험이 60% 높았다. 관상동맥질환은 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수축하는 질환이다.
과로는 사망 위험성이 높은 뇌졸중으로도 이어진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8.5년간 53만 명을 추적조사한 결과 1시간이라도 초과근무하면 뇌졸중 발병 가능성이 증가한다고 밝혔다.
◇ 과로로 사망해도 입증하기 어려워...산재 인정 못받기도
지난해 산업재해 통계를 살펴보면 과로사의 대표적 유형인 뇌·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약 300명. 업무상 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808명)의 37.1%에 달한다.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비율은 2014년 기준 유럽연합의 5배다. OECD 회원국 중 1위다.

한국인 노동시간이 긴 이유는 노동법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노동법이 초과근무에 관대하다는 지적이다.
초과근무는 주 12시간 이하로 제한된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제59조에 따라 운수업, 통신업 등 공공성이 중요한 일부 업종은 예외다. 노사간 협의가 이뤄질 경우, 해당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주 12시간 이상 초과근무가 가능하다. 별도의 근무 시간 상한선이 없는데다 휴게시간도 변경할 수 있어 24시간 무제한 근무를 해도 위법이 아니다.

만약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할 경우 산재를 인정받기는 어렵다. 국내에서 과로사는 해외와 달리 의학적 용어가 아니다. 이에 사망진단서에 과로사로 기록되지 않아, 남은 유가족이 과로가 죽음의 원인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의 '2016년도 2분기 심의현황 분석'에 따르면 뇌·심혈관질환의 산재 승인율은 2012년 12.5%, 2013년 2.1%, 2014년 20.8%, 2015년 23.7%, 2016년 21.6%에 불과했다.
◇ 일본에 이어 과로사 방지 움직임 첫 발…'과로사방지협의회'운영 시동
2014년 '과로사 방지법'을 제정한 일본은 한발 앞서 과로사 방지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5년에는 과로사의 실태와 방지책을 보고하는 '과로사 백서'를 세계 최초로 발표했다.
지난해 5월에는 근로자가 퇴근 후 최소 8~11시간의 휴식을 보장하는 '근무간 인터벌제'를 도입하고 올해 1월 노동자의 연장근로 상한선을 낮추는 노동기준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한국 정치권도 과로사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과로사 등 예방에 관한 법률안(과로사 방지법)'을 대표발의 했다. '과로사'라는 표현을 법에 명시하고 고용노동부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과로사방지협의회'를 운영하는 것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근무여건 개선, 법정 노동시간 준수로 노동시간이 단축돼야 노동자의 삶도 나아지고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junep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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