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프를 좋아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모델이 있다. 바로 토요타 FJ 크루저다. 지난 2005년, 북미 국제오토쇼를 통해 데뷔한 FJ 크루저는 남다른 덩치와 레트로 디자인, 독특한 도어 품고 사내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했다. 약 13년이 흐른 지금, FJ 크루저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려고 한다. 파이널 에디션을 통해서다.
탄생 비화

이름이 암시하듯, 이 차의 뿌리는 랜드 크루저 FJ40이다. 정확히 말하면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토요타가 빚은 AK10 소형 화물차가 조상이다. 전쟁 후 사륜구동차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토요타는 AK10을 밑바탕 삼아 1951년 BJ(B형 엔진 품은 Jeep라는 뜻)를 생산한다. 미국 지프와 분쟁을 피하기 위해 1954년부터 ‘랜드 크루저’로 이름을 바꿨다.
랜드 크루저라는 이름을 알린 건 1960년 FJ40을 통해서다. BJ의 후속인 2세대 모델이다. 토요타의 해외 시장 진출 전략과 맞물려 세계로 뻗어나갔다. 튼튼한 트럭의 뼈대를 가진 만큼 내구성이 뛰어났다. 그래서 도로 환경이 안 좋은 국가에서 인기를 끌었다. 정통 지프 스타일의 겉모습에 직렬 6기통 3.9L 가솔린 엔진 얹고 1984년까지 도로를 누볐다. 우리나라에선 1968년 신진자동차가 조립‧생산한 바 있다.

40 시리즈가 역사 속으로 감춘 뒤, 토요타는 랜드 크루저의 크기를 키우고 고급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정통 지프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남았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 토요타의 제품 기획 담당 데이브 댄저(Dave Danzer)와 판매 및 운영 담당 요시 이나바(Yosi Inaba)가 머리를 맞댔다.
댄저는 도요다 아키오 사장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에 자리한 누미(Nummi, New United Motor Manufacturing)로 향했다. 1984년 문을 연 자동차 제조 공장으로 토요타와 GM이 2010년까지 공동 운영했다. 참고로 현재는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쓰고 있다. 이곳에서 픽업트럭 타코마의 뼈대와 브라질산 FJ40의 보디를 결합해 새로운 후속 모델을 테스트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아키오 사장은 FJ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지원을 제공했다. 디자인은 캘리포니아 뉴포트 비치에 자리한 캘티(Calty) 디자인 연구소가 맡았다. 캘티는 크라이슬러 출신의 베테랑 디자이너, 빌 체르고스키(Bill Chergosky)를 영입해 FJ의 실내 디자인을 맡겼다. 겉모습은 당시 24세의 젊은 한국 디자이너, 김진원 씨가 스케치했다.
첫 번째 결과물은 2003년에 나왔다.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무대 삼아 등장했다.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FJ40의 상징적인 요소를 간직한 채, 전통에만 안주하진 않았다. 예컨대 뒷좌석 도어는 BMW i3처럼 반대 방향으로 여는 구조였다. B필러도 없다. 도어 주변부를 특수 고강도 강철로 빚어 측면 충격에 대응했다. 얼굴엔 토요타 엠블럼 대신, FJ40이 쓰던 ‘TOYOTA’ 글자를 그릴 위에 새겼다.


대담한 스타일링 덕분에, 당시 같은 무대에 등장한 캐딜락 식스틴, 닷지 토마호크와 같은 미래적인 자동차보다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그대로 양산하기엔 비싼 가격표를 붙일 수밖에 없었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671×1,895×1,829㎜. 휠베이스는 2,690㎜다. 공차중량은 사륜구동 기준 1,946㎏. 라브4와 하이랜더 사이에 자리하는 중형 SUV다.

그래서 당시 FJ 프로젝트의 수석 엔지니어, 니시무라 아키오는 수술대에 올려 일부 부품들을 제거했다. 가령, 삽자루(shovel handle)에서 영감 얻은 기어레버와 착탈식 내부 조명, 접이식 앞좌석, 3 게이지 클러스터(나침반, 온도계, 경사계) 등을 과감하게 버렸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오프로드 성능이다.

2004년, 토요타는 모압(Moab)과 유타(Utah), 앤젤레스 내셔널 포레스트(Angeles National Forest), 모하비 사막(Mojave Desert), 루비콘 트레일(Rubicon Trail) 등 악명 높은 도로를 찾아 사륜구동 시스템을 완성했다. 이름은 A-트랙. 지상고는 240㎜까지 높이면서 바퀴와 범퍼 사이의 간격을 촘촘히 줄였다. 접근각과 이탈각은 각각 34°, 30°.

단순히 복고풍 디자인에만 목을 맨 건 아니다. 보닛 속에 V6 4.0L 가솔린 엔진(1GR-FE)을 얹었다. 최고출력 260마력, 최대토크 38.8㎏‧m을 뿜는다. 옥탄가 91의 일반유로도 제 성능을 낼 수 있는 심장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97㎞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7.8초. 사륜구동과 후륜구동 모델 모두 5,000파운드(약 2,300㎏)의 견인력을 갖췄다.


이번에 토요타가 공개한 파이널 에디션은 일본에서만 독점 판매한다. 기존보다 조금 더 담백한 맛을 뽐내는 게 특징. 모래 빛 띄는 컬러를 입히고, 네 발에 20인치 알루미늄 휠을 신겼다. 생산 대수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매월 200대 정도 판매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미국 시장처럼 단계적으로 이별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FJ의 바통 이을 콘셉트 카가 등장한 까닭이다. 이름은 FT-4X. ‘Rugged Waku-Doki(험로의 두근거림)’라는 수식어를 품었다. 도시 생활에 지친 소비자를 위한 토요타의 제안이다. 디자인을 맡은 이안 카타비아노(Ian Cartabiano)는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세계에 살고 있다”며 “물리적 움직임에 대한 갈망을 밑바탕 삼아 FT-4X를 빚었다”고 설명한다.

대개 자동차를 디자인 할 때 눈매와 그릴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토요타 디자인 팀은 뒷모습부터 그렸다. 아웃도어 여행의 시작은 트렁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멀티-해치’는 여닫는 방식이 특별하다. 미니 클럽맨처럼 양문형으로 열 수 있고, 일반적인 해치백처럼 위쪽으로도 열 수 있다. 손잡이는 은행 금고처럼 돌린다.

옆모습은 X자 형상을 기반으로 골격을 짰다. 두툼하게 살찌운 네 바퀴 펜더와, 18인치 알로이 휠 등 탄탄한 이미지를 풍긴다. 또한, 왼쪽 C필러에 자리한 쪽창문은 분리할 수 있고, 운전자의 취향에 따라 색다른 컬러를 입힐 수 있다. 뒷좌석 도어 손잡이는 토요타 C-HR처럼 차체 표면에 교묘히 숨겼고, 운전석 사이드미러엔 고프로(GoPro®) 히어로5 카메라를 심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때마다 영상으로 담을 수 있다.

속살엔 아웃도어에 걸맞은 휘황찬란한 아이템으로 가득 채웠다. 가령, 센터페시아에 자리한 오디오 박스는 탈착식이다. 야외에서 블루투스 스피커처럼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오렌지색 대시보드는 젖은 모자나 장갑 등을 손쉽게 말릴 수 있다. 도어 양쪽엔 파란색 물통과 도어 손잡이를 합쳤고, 센터콘솔엔 두툼한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 침낭을 올렸다.

글 강준기 기자
사진 토요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