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디자이너 인물열전 8편. 오늘은 최근 기아자동차에 합류한 새 디자이너 이야기다. 주인공은 올렉 손(Oleg Son). 하얀 머리와 부리부리한 눈매, 말끔한 수트 등 남다른 외모로 눈길을 끈다. 그는 30년 동안 PSA 그룹에서 몸 담은 베테랑 디자이너.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차도 남다른 내공으로 가득하다. 30년 동안 정든 집에서 떠나, 새 도전에 나서려고 한다.
나이는 1961년생으로 젊지 않다. 그래서 궁금했다. 현재 현대‧기아차 디자인 팀엔 소위 ‘거물급’이라고 부르는 많은 베테랑들이 자리한 까닭이다. 하지만 기아차가 맡긴 직책을 보고 단번에 수긍했다. 앞으로 중국 전략 모델 디자인을 담당한다. 그는 2008년부터 4년 동안 중국 상하이에서 PSA의 디자인 거점을 꾸린 바 있다. 자동차 디자인뿐 아니라 현지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올렉 손은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군 복무를 마치고 ‘자동차 디자이너 등용문’으로 손꼽는 RCA(영국 왕실예술대학)에서 운송 디자인을 전공했다. 당시 시트로엥 디자인 총괄은 올렉 손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봤다. 그래서 학비 지원과 함께 지원사격 했다. 1988년, 졸업 후 시트로엥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첫 발을 내딛었다. C2와 C3의 실내를 빚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결국 2003년 시트로엥 총괄 디자이너까지 올라간다. C4 피카소와, 시트로엥 GT 등이 올렉 손의 작품이다. 이름이 암시하듯 그의 디자인은 평범하지 않다. 트렌드를 쫓기보다 독특한 개성을 가득 담아 라인업을 꾸린다. 이후 2008년부터 중국 상하이에 자리한 PSA 디자인 총괄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중국인들의 까다로운 입맛 사로잡을 전용 모델을 빚어냈다.

올렉 손은 “30년 넘는 유럽 시장 경험보다 중국 시장에서의 경험이 디자이너 삶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말한다. 실용성을 챙기기보단 C6 등 프랑스에선 할 수 없던 럭셔리 세단을 그렸다. 4년간의 경험을 마치고, PSA는 그를 다시 유럽으로 불렀다. 시트로엥의 고급 시리즈인 DS의 디자인 총책을 맡기기 위해서다.
PSA에겐 푸조와 시트로엥이 있지만, 프리미엄 브랜드는 없었다. 그래서 2009년, DS를 선보였다. 초창기엔 시트로엥 배지를 붙였지만, 2014년부터 독립 브랜드로 거듭났다. DS는 DS3와 DS4, DS5 등 세 가지 라인업으로 나눈다. 고급 승용차인 만큼, 올렉 손이 중국에서 선보인 ‘프리미엄 터치’와 전략이 필요했다.


물론 DS가 하루아침에 태어난 이름은 아니다. 1955년 등장한 DS19가 뿌리다. 이 차는 세계 최초의 양산형 앞바퀴 굴림 모델이자 모노코크 차체 품은, 트락시옹 아방(Traction Avant)의 후속 차종이다. 비행접시처럼 납작한 차체와 매끈한 엉덩이를 뽐내며 영광을 이었다. 출시 하루만에 1만2,000대의 주문을 받기도 했다.
특히 DS19는 알제리전쟁을 해결한 장본인, 샤를르 드 골(Charles Andr Marie Joseph De Gaulle) 장군의 의전차로 각광받았다. 방탄유리 덕분에 피격 순간 장군의 목숨을 구하며 더욱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덕분에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차’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차’, ‘시대를 앞서간 자동차’로 손꼽혔다.

DS19를 빚은 디자이너는 이탈리아의 조각가, 플라미니오 베르토니(Flaminio Bertoni). 트락시옹 아방도 그의 작품이다. 자동차를 스케치할 때 흰 도화지가 아닌, 검은 종이에 흰색 연필을 쓰는 독특한 스타일을 가졌다. 특히 DS19가 뽐낸 범퍼 일체형 라디에이터 그릴은 훗날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PSA는 베르토니의 진정한 후임으로 올렉 손을 낙점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DS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꾸린 뒤, 이 달 11일 기아자동차에 둥지를 틀었다. 중국기술연구소 기아차 디자인담당 상무 역할이다. PSA 시절 가꿔왔던 중국 시장 경험이 기아차를 유혹했다. 올렉 손은 이곳에서 디자인 전략과 방향성을 점검한다. 또한, 중국인들의 취향을 저격할 자동차를 빚을 예정이다.

‘디자인 기아’를 외친 기아자동차. 단단하고 기계적인 독일식 디자인에 영향을 받았다. 폭스바겐 출신 피터 슈라이어 덕분이다. 그런데, 올렉 손이 추구하는 철학은 180° 다르다. 그래서 흥미롭다. 화려한 곡선으로 양감을 만들고, 톡톡 튀는 장비로 감성에 호소한다. 과연 그가 선보일 기아자동차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30년 동안 정든 집을 떠나 새 도전에 나서는 올렉 손.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글 강준기 기자
사진 기아자동차, PSA 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