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Nostalgia] '비행 청소년'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 - 90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 '비행 청소년'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 - <90>
비행 청소년이라는 말이 있다.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일삼으로 탈선하는 청소년을 비유하는 말이다. 비행 청소년은 이후 더 나쁜 길로 빠져 범죄의 길로 향할 가능성도 있다. 옛 프리미어리거 중 비행 청소년이었으나 축구를 만나 갱생한 인물이 있다.
하셀바잉크는 1972년 당시 네덜란드령이었던 수리남에서 태어났다. 하셀바잉크는 3살 때 자전거에 치여 오른 다리가 부러지고, 6살 때는 부모님의 별거로 어머니와만 살게 되는 등 어린 시절부터 굴곡이 많았다.
사람이 어린 시절 역경을 만나면 두 가지 유형으로 대처한다. 첫 번째 유형은 다시는 이 역경을 겪지 않겠다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유형이다. 두 번째 유형은 역경에 무너지고 자포자기하며 나쁜 길로 빠져드는 유형이다. 하셀바잉크는 비극적이게도 두 번째 유형에 가까웠다.
7살에 게스타그 볼하르딩 오버윈트라는 유스팀에서 골키퍼로 커리어를 시작할 정도로 하셀바잉크는 운동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잔스체 FC란 유스팀에서 라이트윙으로 포지션을 변경하며 필드 플레이어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았다. 문제는 비행이었다.
하셀바잉크는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가지며 거리 갱단에 들어갔다. 이후 좀도둑질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소년원에 3달 간 수감이라는 엄벌을 받기도 했다. 이는 도어 윌스카르트 스테르크라는 유스팀으로 둥지를 옮긴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셀바잉크는 1군 팀 선수의 시계를 훔쳤고 그로 인해 팀에서 방출됐다.
하셀바잉크는 방출 이후에도 갱단 친구들과 어울렸다. 여기에 상습적인 지각까지 더해지며 몸담는 구단마다 골칫거리로 자리했다. 하셀바잉크에게 희망은 없어보였다. 그의 커리어가 끝나는 듯 했다.
위기의 상황에서 하셀바잉크를 끌어올려준 것이 형제 카를로스였다. 동생 카를로스가 뛰고 있던 AZ 알크마르에서 하셀바잉크가 입단 테스트를 보게 됐다. 여기서 합격점을 받은 하셀바잉크였다. 또한 알크마르는 유럽 스카우터들이 관찰하고 있던 팀이었다. 하셀바잉크는 이후 부진과 비행에도 불구하고 이 알크마르 시절 덕분에 계속해서 기회를 얻게 됐다.
결국 1995년에는 해외 진출에도 성공하게 됐다. 하셀바잉크가 옮긴 팀은 포르투갈 1부리그의 승격팀 SC 캄포마이렌세였다. 당시 하셀바잉크는 트라이얼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하지만 그간의 비행으로 인해 캄포마이렌세 측에서는 그와의 계약을 함구하고 싶어했다.
이에 그를 언론에 본명 대신 지미로 소개했다. 이 별칭 지미는 이름으로 굳어져 지금까지도 그는 제럴 플로이드 하셀바잉크가 아닌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로 알려지게 된다. 캄포마이렌세 그리고 FC 보아비스타를 거치며 하셀바잉크의 재능은 인정을 받게 됐다. 이로 인해 많은 잉글랜드 클럽들이 그의 영입을 위해 달려들었다. 결국 하셀바잉크를 데려간 클럽은 리즈 유나이티드였다.
하셀바잉크는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이었던 1997/98시즌 1라운드 아스널전에서 득점을 올리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후 부진을 거듭하며 크리스마스까지 5골을 득점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질 하셀바잉크가 아니었다. 하셀바잉크는 후반기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모든 대회에서 26골을 득점하는 기염을 토했다.
두 번째 시즌이었던 1998/99시즌의 활약은 더욱 빛났다. 하셀바잉크는 이 시즌 36경기에서 18골을 기록했다. 이로써 하셀바잉크는 같은 수의 골을 기록한 마이클 오언, 드와이트 요크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리즈는 맹활약을 한 하셀바잉크를 잡기를 원했다. 하지만 양 측의 협상은 결렬됐고 하셀바잉크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됐다.
사실 1999/00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전력은 엄청났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을 필두로 하셀바잉크, 호세 몰리나, 호안 카프데빌라, 가스파르 갈베스, 카를로스 가마라, 산티아고 데니아, 카를로스 아길레라, 산티아고 솔라리, 라덱 베이블,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 키코 등 스타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스타들도 방만한 팀 경영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헤수스 힐 회장과 팀 수뇌부가 과다한 지출을 해 12월 영입 금지령을 받았다. 또한 구단의 돈이 마르면서 선수들의 주급을 연체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당연히 팀이 잘 돌아갈리 없었고 결국 강등당했다. 하셀바잉크가 분전했으나 팀의 강등을 막을 수는 없었다.
팀이 강등되면서 하셀바잉크는 다시 새 팀을 찾아야하는 처지가 됐다. 이적할 맘이 없었던 하셀바잉크는 여러 팀을 물색하다. 첼시행을 확정하게 됐다. 그리고 이는 신의 한 수가 됐다.
하셀바잉크는 당시 첼시의 클럽 레코드인 1,500만 파운드(한화 약 217억 원)의 거금으로 팀에 입성했다. 하셀바잉크는 입성하자마자 첼시가 채리티 실드를 들어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시즌 초 당시 감독이던 지안루카 비알리가 경질됐다. 그리고 그의 대체자로 익숙한 인물이 첼시에 부임하게 됐다. 바로 라니에리였다.
사실 영국 언론 <데일리 미러>에 따르면 하셀바잉크는 "당시 비알리의 경질을 내게 충격이었다"며 아쉬워했다. 또한 <데일리 미러>에 따르면 하셀바잉크는 "라니에리와 그의 피트니스 코치 로베르토 사시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AT 마드리드 시절부터 라니에리 및 그의 사람들과 궁합이 맞지 않은 셈이었다.
하지만 경기장 안에서의 호흡은 달랐다. 라니에리는 경기장 안에서 그의 잠재력을 폭발시켰고, 하셀바잉크 역시 라니에리 감독의 기대에 부앙했다. 2000/01시즌 하셀바잉크는 EPL 35경기에서 23골을 기록하며 다시 한 번 득점왕에 오르게 됐다.
2001/02시즌 들어서는 영혼의 파트너 아이두르 구드욘센과의 호흡이 돋보였다. 하셀바잉크는 구드욘센과 환상 호흡을 자랑하며 토트넘전 해트트릭을 포함해 29골을 득점했다. 팀의 FA컵 결승행도 견인했으나 부상으로 결승전에서 제 기량을 못 펼쳤고 팀도 패배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부상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결국 하셀바잉크는 2002년 수술도 감행하게 됐다. 이 때 지안프랑코 졸라가 맹활약했다. 하셀바잉크는 붙박이 주전에서 졸라와 로테이션을 하게 되는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나올 때마다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03/04시즌을 들어 하셀바잉크의 입지는 더 줄었다. 라니에리는 젊고 재능있는 스트라이커인 아드리안 무투와 에르난 크레스포를 중용했다. 이에 하셀바잉크의 역할은 서브로 국한됐다. 결국 하셀바잉크는 시즌 후 이적을 택했다.
이적을 추진할 때 풀럼 FC, 글래스고 셀틱, 레인저스 FC 등이 그의 영입을 위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하셀바잉크는 모두 반려한 뒤 미들즈브러 FC와 2년 계약을 맺었다. 이 시기 미들즈브러의 보강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시즌 전 예상으로는 미들즈브러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UEFA컵 진출로 만족한다. 물론 하셀바잉크의 활약은 꾸준했다.
2005/06시즌에도 하셀바잉크의 활약은 이어졌다. 하셀바잉크는 44경기에서 18골을 득점하며 제 몫을 했다. 특히 팀을 UEFA컵 결승전까지 이끈 모습이 돋보였으나 결승전 세비야 FC에 패배했다. 시즌 후 새로 부임한 감독 가레스 사우스게이트가 세대교체를 천명하면서 그는 찰튼 어슬래틱으로 또 한 번 이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찰튼 이적은 실패로 귀결됐다. 하셀바잉크는 그간의 활약과는 다르게 찰튼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또한 이전 소속팀이었던 첼시와 보상금 문제로 소송에 얽매이게 되면서 경기력이 더 나빠졌다. 결국 하셀바잉크는 찰튼에서 단 2골에 그치며 한 시즌 만에 팀을 떠나게 됐다.
하셀바잉크는 이후 카디프 시티로 합류했다. 카디프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운 그는 2008년 미련 없이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이후에도 축구 관련 프로그램 출연 등을 하며 축구와의 인연을 놓지 않고 있다.
◇EPL 최고의 순간
2001/02시즌 프리미어리그 29라운드에서 첼시와 토트넘이 맞붙었다. 하셀바잉크는 전반 24분 중거리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후반 24분에는 예스퍼 그론카예르의 크로스를 헤더로 득점했다. 후반 36분 하셀바잉크는 왼발 감아차기 득점으로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후반 45분 프랭크 램파드의 득점까지 더한 첼시는 런던 더비서 4-0 대승을 거뒀다.
◇플레이 스타일
강한 슈팅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 그의 슈팅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손꼽혔다. 스피드도 준수했고, 몸싸움에도 능했다. 공격수로서 갖춰야할 능력을 대부분 갖춘 만능형 스트라이커였다.
◇프로필
이름 –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
국적 - 네덜란드
생년월일 - 1972년 3월 27일
신장 및 체중 - 183cm, 86kg
포지션 – 스트라이커
국가대표 경력 – 23경기 9골
사진=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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