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인의 예(藝)-<23>김윤겸 '영남기행화첩'] 여름날 둘러본 영남 명승 열네곳.. 선비들 휴가 여운, 화폭에 담다
진주 찰방 부임 후 영남지역 둘러봐
부산 태종대서 거창·함양 계곡까지
실경의 감흥 농익은 화력으로 표현

그 첫 그림인 몰운대(沒雲臺)는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인근, 바다로 비죽 튀어나온 땅이다. 원래는 섬이었지만 낙동강 토사가 쌓여 육지와 연결된 곳으로 언덕 전체가 소나무 숲을 이루고 있다. 수묵으로 형태를 잡고 옅은 채색으로 푸른 기운을 담은 솔숲은 오늘날의 풍경과 꼭 닮았다. 언덕 위에 사람 둘이 섰고, 저 멀리 대마도가 보일 정도로 시야가 탁 트였다. 감기듯 말린 나선형 파도가 더위도 함께 쓸어간다. 두 번째 그림 ‘영가대’는 부산 진성 앞쪽에 있던 조선통신사 일행의 출발지이나 지금은 흔적없이 사라진 곳이다. 부산 풍경은 다섯 번째 그림 ‘태종대’에서도 볼 수 있다. 신선바위, 망부석, 병풍바위 등 특색있는 바위모양의 태종대 모습이 생생하다. 그림 오른쪽은 치솟은 기암괴석으로 왼쪽은 파도치는 바다로 과감하게 양분했다. 절벽 아래 너른 바위에 하염없이 달려와 부딪히길 반복하는 파도를 선비 둘이 넋놓고 바라보는 중이다.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 싶은 이들이다.

이어 화가는 지금의 거창군 북상면 월성계곡 사선대를 가리키는 ‘송대’로 안내한다. 계곡물이 바위 곳곳을 희롱하듯 넘나들고, 중앙의 넓은 바위에서는 복건 쓰고 지팡이 짚은 유학자, 유건에 푸른 옷을 입은 유생 등이 자연이 준 특혜를 만끽하는 중이다. 거창 금원산의 ‘가섭암’은 시리게 푸른 색조가 유난하고, 인근 유안청 계곡을 그린 ‘가섭동폭’은 맑은 물의 흐름을 바라보고 앉은 인물의 태도가 더 인상적이다. 거창은 월성계곡 장군바위를 그린 ‘순암’까지 총 4폭에 등장한다.

함양은 제9면과 12~14면에 등장한다. 화림계곡 월연암을 묘사한 ‘월연’은 너른 바위 틈으로 굽이치는 계곡물 뿐, 화첩 중 유일하게 나무도 사람도 없는 그림이다. 열두번째 그림인 ‘사담’은 지금의 함양 연화산으로 추정되는 곳인데 계곡 사이 바위에 오른 세 사람은 정작 물이 아닌 딴 곳을 보고 있다. 물거품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휴전면 용유담 아래 부분을 그린 ‘하룡유담’은 두 갈래로 나뉘는 물길 사이에 오로지 혼자 뻗은 키 큰 소나무가 시선을 잡아끈다. 화첩의 마지막 그림 ‘극락암’은 휴가의 끝자락만큼이나 긴 여운을 드리운다. 왼편 절벽 위에 서상면 옥산리 백운산에 있던 절로 전할 뿐 지금은 사라진 극락암 앞으로 안개에 사로잡혀 한없이 아득한 산들이 펼쳐진다. 딱 이대로 시간이 멈춘듯한 광경이다.

그는 사물을 극도로 단순화시켜 간단하고 짧은 필선으로 묘사하고, 투명한 담채를 살짝 곁들여 추상미가 풍기는 그림을 그렸다. 딱히 출세하고자 했던 이가 아니었기에 그는 여행의 감동을 담아 풍경을 그리는 기행사경(紀行寫景)에 몰두했다. 간송미술관에 있는 ‘동산계정도’는 현재 전하는 김윤겸의 실경 작품 중 연대가 밝혀진 가장 빠른 시기, 서른일곱 살의 작품이다. 멀리로 삼각산 인수봉이 보이는 곳에 은거하던 선비 신평천과 그의 계곡 위 정자를 그린 그림이다. 산등성이를 두 세개의 묵선과 옅은 담채로 아련하게 그리고 붓을 뉘어 쌀 모양 점(미점·米點)으로 먼 산을 표현했으며 잔가지를 생략한 굵은 줄기로 나무를 그리고 태점(苔點)을 찍어 이끼를 표현하는 등 실제 경치를 압축해 개성 있고 과감하게 보여주는 수법은 청년기부터 만년까지 계속되는 김윤겸의 특징적 화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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