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톡톡] 들쑥날쑥 사라진 메모리 반도체 시장..더이상 '치킨게임' 없다

황민규 기자 2017. 9. 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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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초호황입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대표적인 메모리 반도체 기업은 분기마다 실적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습니다. 십수년간 이어졌던 치킨게임(죽기살기식 경쟁) 끝에 '살아남은 자’들의 화려한 파티가 시작된 것입니다.

지난 1994년 이후 D램 연간 비트그로스 추이./ IC인사이츠 제공

이 파티는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상승 국면이 있다면 머지 않아 하강 국면에 돌입하는 사이클(cycle·주기) 산업의 숙명이지만, 최근 메모리 반도체 흐름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올해 '비트그로스'는 세계 반도체 역사상 최저치 전망”

최근 세계 시장조사업체들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통용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는 분석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의 최대 수요처인 PC, 모바일 시장이 지난해부터 완연한 정체기에 돌입한 상황에서도 메모리 가격이 고공행진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메모리 가격 상승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메모리 반도체의 '수급불균형'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D램익스체인지, IHS 마킷 등 시장조사업체가 발표하는 자료를 살펴보면 모바일, PC 시장에서의 메모리 수요는 지난해와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의 원인이 100% 공급자 진영에서 발생한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한국 반도체 기업의 주요 수출 품목인 D램의 경우 1년 사이에 제품 가격이 무려 두 배 이상 뛰어올랐고, 아직도 하락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D램은 시간이 갈수록 값이 떨어져야 정상입니다. D램 업체들이 매년 첨단 미세공정 기술을 고도화하며 공급량을 늘려왔으니까요. 값이 떨어져도 생산성이 끊임없이 상승했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이익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공급량 상승세가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세계 D램 시장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세 회사가 최근 전망한 비트그로스(Bit Growth·메모리 용량을 1비트 단위로 환산해 계산한 메모리 반도체의 생산량 증가율)는 올해 역사상 최저치인 15%~20%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 공급자가 시장 주도하다보니, 주기별 가격 등락 법칙도 무력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내부 전경./ 조선일보DB

D램 생산량 증가율이 정체를 빚고 있는 건 미세공정 기술의 발전 속도가 20나노대에서 현저히 느려졌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D램 생산공정을 보유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지난 2014년까지 매년 미세공정 기술을 한 단계씩 높여왔지만, 현재는 3년 전에 등장한 20나노 초반대 공정 이후 별 다른 기술적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장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2010년대 이전에는 1년에 10나노씩 미세공정 기술이 점프했었지만 20나노급에서부터는 기술 진화 속도가 크게 느려졌다"며 "최근 10나노급에서부터 물리적, 화학적인 한계치에 도달하면서 공정 전환에 필요한 비용이 과거의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생산 기술 외적인 학습효과 요인도 있습니다. 오랜 치킨게임 끝에 현재 살아남은 메모리 기업들은 과도한 설비투자 경쟁이 결국 메모리 사업의 수익성을 해치면서 '공멸(共滅)'하는 상황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 과거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면서 경쟁사의 설비 투자, 생산량 등을 계산해 전체적인 시장의 수급 상황을 예측 가능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전동수 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현 삼성메디슨 사장)은 이를 '자율보정능력'이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전동수 사장은 2012년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더이상의 치킨게임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며 "공급업체가 3개 정도로 줄어든 상황에서는 승자독식의 시대가 돼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현상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이 맞아떨어진 상황입니다.

결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생산성 향상에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막대한 수익을 남길 수 있게 됐습니다. 과거처럼 물량 경쟁에만 '목숨'을 걸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일정 주기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는 법칙도 앞으로는 더이상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메모리 기업들이 탄력적으로 공급을 조절하며 가격을 통제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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