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Nostalgia] '잉글랜드 북동부의 레지스타' 훌리오 아르카 - 91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 '잉글랜드 북동부의 레지스타' 훌리오 아르카 - <91>
레지스타라는 말이 있다. 연출가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다. 축구에서는 연출가처럼 경기를 푼다는 의미로 사용되며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를 지칭한다. 지난 7일 사실상 은퇴를 선언한 안드레아 피를로도 레지스타로 불렸다.
전 프리미어리거 중에서도 레지스타라는 말이 어울리는 선수가 있었다. 물론 피를로만큼의 실력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지만 좋은 기량을 선보였던 선수다. 또한 이 선수는 본래 포지션이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니었음에도 레지스타로 정착해 찬사를 받았다.
아르카는 1981년 아르헨티나 퀼메스에서 태어났다. 아르카는 어릴 때부터 촉망받는 자원이었다. 좋은 선수들의 보고라 불리는 아르헨티나에서 유망함을 인정받았다. 2001년에는 하비에르 사비올라, 헤르만 룩스, 막시 로드리게스 등과 함께 21세 이하 월드컵 우승을 견인하기도 했다.
때문에 그가 프로 생활을 시작한 아르헨티노스 주니오스라는 팀은 아르카를 품기에 작아졌다. 아르카를 향해 수많은 러브콜이 날아들었다. 리즈 유나이티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등 규모가 큰 클럽들의 제의도 있었다. 아르카는 장고 끝에 선덜랜드 AFC를 택했다.
아르카에게는 모든 것이 도전이었다. 잉글랜드 북동부의 음습한 기후에 적응하는 것부터 시작해 거친 잉글랜드 무대에 적응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또한 국가대표팀이나 주니오스에서 레프트백을 맡던 것과 달리 선덜랜드에서는 레프트윙을 주로 맡게 됐다. 스테판 슈바르츠에 이은 피터 리드 감독의 두 번째로 비싼 영입이기도 했다. 부담도 있었다.
하지만 아르카는 이 모든 것을 이겨냈다. 아르카는 EPL 데뷔전이었던 4라운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순조롭게 연착륙했다. 아르카는 EPL 첫 시즌에서 맹활약했다.
승승장구하던 아르카를 암초가 가로막았다. 2001/02시즌 아르카는 계속해서 잔부상에 시달리며 주춤했다. 경기에 나서는 간격이 점차 길어지면서 실전 감각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다. 악몽이었다.
다행히 2002/03시즌 들어 아르카가 좋은 모습을 되찾았다. 비록 잔부상이 잦아들지는 않으며 출전 횟수가 높아지지는 않았지만 나올 때마다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팀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팀의 성적이 발목을 잡았다. 2002/03시즌 선덜랜드는 20위로 최하위를 기록, 2부리그로 강등당했다. 2004/05시즌부터 선덜랜드는 2부 리그인 챔피언십에서 뛰게 된 상황이었다. 아르카의 이적이 예상됐다.
하지만 아르카는 의리를 보였다. 자신의 부재가 강등에 한 몫을 차지했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자신이 팀을 1부 리그로 되돌리고자 팀에 남았다.
아르카는 2부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선덜랜드는 2003/04시즌에는 승격에 실패했으나 2004/05시즌에 승격을 확정했다. 2부리그로 강등된 지 2시즌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기자 협회 선정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등 아르카의 활약이 남달랐다.
하지만 그의 팀 선덜랜드는 EPL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선덜랜드는 2005/06시즌 또 다시 강등을 당했다. 미뤄왔던 이별의 시간이었다. 아르카는 선덜랜드를 떠났다. 이후 프랑크 퀘드루의 대체자를 찾고 있던 미들스브러 FC로 입성했다. 선덜랜드와 마찬가지로 잉글랜드 북동부에 연고지를 둔 미들즈브러라는 점이 특이했다.
아르카는 2006년 미들즈브러와 5년의 장기 계약을 맺었다. 당시 신임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첫 영입이었다. 그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가 대단했다. 하지만 첫 경기였던 레딩 FC전에서 발이 부러지는 부상으로 앤드류 데이비스와 교체됐다. 아르카는 다시 폼을 회복하는 것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재활에 매진했다. 이를 통해 성공적인 복귀에 성공했다.
그런데 복귀 이후 아르카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당시 팀에는 앤드류 테일러라는 수준급의 레프트백이 있는 상황이었다. 레프트윙 쪽에는 더 막강한 경쟁자인 스튜어트 다우닝이 있었다. 그의 설 자리가 없어보였다.
이에 아르카가 변신을 시도했다. 아르카는 기본적으로 볼 다루는 능력이 수준급이었다. 프리미어리그의 거친 압박에도 좀처럼 당황하는 법이 없었다. 이에 아르카는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아르카는 연신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007년 미들즈브러와 선덜랜드 간의 티스 위어 더비가 펼쳐졌다. 아르카는 선덜랜드에서 미들즈브러로, 지역 라이벌팀으로 이적을 한 셈이었다. 보통 선수라면 야유가 가득할 만했다. 하지만 선덜랜드 팬들은 어려운 시기를 견뎌준 선수를 응원으로 맞이했다. 이날 부상을 입은 것을 빼면 완벽한 경기였다.
2008년 1월 아르카는 사우스게이트 감독에 의해 주장으로 선임됐다. 다만 주장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들즈브러가 팀의 미래 엠마누엘 포가테츠에게 주장 완장을 넘겨주며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그의 실력이 모자라서는 절대 아니었다.
아르카는 이후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하위권 팀 미드필더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볼배급은 수준급이었다. 수비진을 보호하는 능력 역시 뛰어났다. 미들즈브러가 중위권에 안착한 것은 그의 힘이 컸다.
2010//11시즌에는 팬들에 의해 2010/11시즌 미들즈브러 최우수 선수상도 수상했다. 계약 기간도 2년 연장했다. 계약 연장 후 리즈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승리에 기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잡을 수는 없었다. 아르카는 세월을 역행할 수 없었고 계속해서 이전의 반짝임을 잃어갔다. 미들즈브러는 2013년 계약 만료 후 그에게 재계약을 제의하지 않았다. 아르카 또한 이를 받아들이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은퇴하고 2년이 지난 뒤 사우스 쉴드라는 아마추어팀에서 축구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EPL 최고의 순간
2010/11시즌 EPL 21라운드에서 미들즈브러와 카디프 시티가 맞붙었다. 아르카는 큰 존재감으로 경기를 주도했다. 이 뿐만 아니라 전반 40분 페널티킥을 정확히 차 넣으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플레이 스타일
안정적인 패스로 이름을 날린 선수였다. 훌륭한 킥력이 바탕이 된 덕이었다. 레프트백, 레프트윙으로서도 수준급의 모습을 보이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포백 보호도 무리 없이 해내는 선수였다.
◇프로필
이름 – 훌리오 아르카
국적 - 아르헨티나
생년월일 - 1981년 1월 31일
신장 및 체중 - 175cm, 73kg
포지션 – 레프트백, 레프트윙,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국가대표 경력 – 無
사진=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total87910@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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