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Nostalgia] '죽은 누나를 위해 뛴' 클린트 뎀프시 - 66

[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 '죽은 누나를 위해 뛴' 클린트 뎀프시 - <66>
아끼는 사람의 죽음. 이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고통 중 하나다. 숨조차 쉬기 힘든 그 고통 속에서도 고인을 위해 뛰었고, 그로 인해 고인에게 보다 멋진 모습을 보였던 前 프리미어리거가 있다.
뎀프시는 1983년 미국 텍사스주의 나코그도치스에서 태어났다. 사실 뎀프시의 어린 시절, 미국에서 운동을 잘 하는 청년들 중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은 극히 일부였다. 야구,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등 인프라와 지원이 잘 갖춰져있는 다른 종목을 하는 청년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뎀프시는 축구를 선택했다. 그 이유로는 뎀프시의 아버지가 아일랜드계 이주민이라 축구를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점, 뎀프시가 어린 시절을 보낸 트레일러 파크 주변에 축구를 좋아하는 히스패닉 인구가 많았던 점, 형인 라이언 뎀프시가 축구를 좋아했던 점 등이 있었다.
하지만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한 뎀프시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뎀프시의 집안이 가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유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뎀프시의 누나였던 제니퍼 뎀프시가 알아주는 테니스 유망주였다. 뎀프시 집안은 집안의 모든 여력을 성공가능성이 높은 제니퍼에게 쏟았다.
이에 뎀프시는 집안의 풍족한 지원을 받진 못 했다. 오히려 어려운 생활을 했다. 유스인 델라스 텍산스 시절, 친구들의 부모님의 도움으로 축구선수의 생활을 근근히 이어가는 처지였다.
그런데 뎀프시의 인생에 슬픈 일이 닥쳤다. 집안을 이끌 것이라 기대를 받았던 누나 제니퍼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뎀프시의 누나는 뇌혈관 질환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뎀프시는 이로 인해 너무나 큰 좌절감을 느껴야했다. 슬픔을 가누지도 못 했다.
뎀프시를 슬픔에 빠뜨린 것도 누나였지만, 뎀프시를 다시 뛰게 한 것도 누나였다. 집안의 모든 기대를 받았던 누나의 빈 자리를 자신이 메워야했다. 뎀프시는 그 때부터 미친 듯이 노력을 기울였다. 뎀프시는 후에 "누나의 죽음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슬픔에만 머물러 있을 순 없었고, 그 이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술회했다.
노력하는 자를 하늘은 배신하지 않았다. 뎀프시는 2004년 MLS 슈퍼드래프트에서 뉴 잉글랜드 레볼루션에 드래프트됐다. 팀을 2005년과 2006년 2년 연속 MLS 컵 준우승으로 이끄는 등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2006년 12월 뎀프시는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하게 됐다.
뎀프시를 프리미어리그로 부른 클럽은 풀럼 FC였다. 풀럼은 브라이언 맥브라이드, 카를로스 보카네그라 등 미국 선수들을 영입하여 재미를 본 편이었다. 이에 뎀프시 영입에 뛰어들었고, 성공했다. 뎀프시 입장에서도 팀 내 많은 미국 선수들의 존재는 적응을 용이하게 해준 요소였다.
뎀프시는 2007년 1월 24R 토트넘 핫스퍼전에서 데뷔를 했다. 또한 7일 후 스토크 시티전에서는 FA컵 무대에도 선을 보였다. 37R 리버풀 FC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며 마수걸이 골도 터트렸다. 이 골로 인해 풀럼은 잔류에도 성공했다.
이후 뎀프시, 그리고 풀럼의 성공가도가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2008/09시즌 뎀프시는 첫 3경기에서 모두 제외되며 출발은 좋지 못 했다. 하지만 브라이언 맥브라이드의 부상으로 기회를 잡았고, 이후 승승장구했다. 뎀프시는 시즌 6골로 팀 내 프리미어리그 최다 득점자 위치에 올랐고, 풀럼은 이로 인해 7위를 기록하며 유로파리그 진출을 확정지었다.
2009/10시즌 풀럼이 유럽 무대를 병행하게 되었음에도 뎀프시의 활약은 뛰어났다. 시즌 중반 잠시 무릎 부상으로 전력 외가 된 적도 있었으나, 나올 때마다 좋은 모습을 보였다. 특히 유벤투스 FC와의 유로파리그 16강 2차전에서 터트린 로빙슛 득점은 지금도 회자되는 장면 중 하나. 결승전 패배가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2010/11시즌에는 5R 블랙번 로버스전에서 득점하며 풀럼이 시즌 시작 후 7경기 무패 기록을 새롭게 세우는 것에 공헌했다. 또한 이 시즌 뎀프시는 프리미어리그에서만 10골을 기록했는데, 미국인으로선 최초의 기록이었다.
뎀프시가 풀럼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2011/12시즌 유로파예선 최종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득점하며 팀의 유럽 무대를 확정짓게 한 것도 그였다. 또한 18R 첼시 FC와의 서런던 더비에서 동점골을 터트리며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것도 그였다. 22R 뉴캐슬 유나이티드전에서는 미국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기도 했다.
시즌 후 기자 협회 선정 최우수 선수상 4위를 기록하는 등 뎀프시의 주가는 나날이 뛰어올랐다. 이에 빅클럽들의 관심이 이어졌고, 뎀프시는 장고를 거듭하다 토트넘 핫스퍼행을 택했다. 이적료는 900만 달러(한화 약 102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토트넘에서의 생활은 생각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시작은 좋았다. 뎀프시는 2012/13시즌 6R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며 팀이 23년 만에 맨유를 꺾는 것에 기여했다. 9R 사우샘프턴 FC전, 16R 에버턴 FC전 득점이 나오며 기대감이 커졌지만, 토트넘에서의 주전 경쟁은 험난했다. 또한 나이로 인해 기량도 점점 내려오고 있었다.
이에 뎀프시는 자국 리그 복귀를 택했다. 뎀프시는 2013년 시애틀 사운더스에 입단했다. 그는 2013/14시즌 친정팀인 풀럼으로 깜짝 복귀하며 팬들에게 기쁨을 안기기도 하였으며, 임대 기간이 끝난 뒤에는 다시 시애틀로 돌아가 꾸준히 활약했다. 2017년 현재도 자국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최근 미국 대표팀의 골드컵 우승을 견인하기도 했다.
◇EPL 최고의 순간
2011/12시즌 프리미어리그 22R에서 풀럼과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맞붙었다. 경기는 클린트 뎀프시의 독무대였다. 뎀프시는 후반 14분, 후반 20분, 후반 44분 모두 바비 자모라가 연결해준 공을 득점으로 연결했다. 풀럼은 뎀프시의 해트트릭 덕에 대니 거스리, 하템 벤 아르파가 한 골씩을 기록하는데 그친 뉴캐슬을 제압했다.
◇플레이 스타일
자유자재로 득점할 수 있는 선수였다. 때문에 중거리슛 득점, 헤딩 득점, 문전 앞 득점 등 득점 분포가 다양했다. 오프더볼 움직임이 좋아 문전에서 골 기회가 자주 찾아오기도 했다.
◇프로필
이름 - 클린트 뎀프시
국적 - 미국
생년월일 - 1983년 3월 9일
신장 및 체중 - 185cm, 77kg
포지션 -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국가대표 경력 - 134경기 56골~
사진=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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