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일일외출록 반장>-감금된 사람, 하루 동안의 자유가 생긴다면

2017. 12. 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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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츠키는 다르다. 그는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공원에 앉아 잡지를 읽거나 낮잠을 자기도 하고, 옷에 묻은 보풀을 꼼꼼히 떼어내기도 한다. 소중한 시간을 저렇게 보내도 되나, 하고 답답할 지경이다.

서른다섯이 되도록 아직 여행을 가본 일이 거의 없다. 여행이란 나에게 잘 버티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 이상의 무엇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여행을 가자고 말하면 “그 돈으로 집에서 짜장면 시켜 먹어요”라고 말했다고 하고, 학생시절에 수련회나 MT를 가면서는 버스에서 2박3일 동안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기도 했다. 대학원생이 되어 독립하고서도 여행은 여전히 삶의 선택지가 아니었다. 공부하느라 바빴다고 하면 민망한 핑계가 될 테고, 길에 돈을 버리는 의미 없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서도 ‘집엔 언제 가지…’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으니, 삶을 여행한다는 감각 비슷한 것조차도 별로 없었다.

「일일외출록 반장」(국내 미발매)의 원작 단행본 표지./일본 講談社
바깥 세계로 24시간 외출할 수 있는 권한

만화 <일일외출록 반장>의 주인공 오오츠키는 나와는 다른 태도로 삶을 살아간다. 그는 ‘생활여행자’로 명명될 만하다. 우선 오오츠키라고 하면 생소하고, <도박묵시록 카이지>에 등장하는 ‘E반 반장’이라고 하면 기억할 만한 이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카이지가 도박 빚을 변제하기 위해 지하의 강제노동시설에 들어갔을 때 만나서 도박을 벌이는 인물이 바로 오오츠키다. 만화에서는 카이지가 오오츠키를 파산(파멸)시키는 것으로 종결되지만 <일일외출록 반장>에서는 카이지를 만나기 이전의 오오츠키의 삶을 조명한다. 말하자면 스핀오프작, 기존의 작품에서 등장인물이나 설정을 그대로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악마적 재미’, ‘압도적 유쾌함’ 등으로 평가 받고 있는 이 작품의 재미는 그 주인공 오오츠키가 거의 홀로 견인해 낸다.

오오츠키 역시 빚을 변제하기 위해 강제노동시설에 감금된 처지이지만, 그 안에서 반장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말하자면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중간관리자’ 정도 되는 역할이다. 그래서 각종 특혜를 누리는 것은 물론 여러 이권에도 개입한다. 특히 일주일에 한 번 주사위 도박장을 열 권한도 가지고 있는데, 사기도박을 벌여서 지하시설의 돈을 긁어모은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그는 ‘노동장려옵션, 일일외출권’을 산다. 바깥 세계로 24시간 동안 외출할 수 있는 권한을 50만 페리카(지하 노동자의 몇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돈)를 내고 사는 것이다. <일일외출록 반장>은 오오츠키의 일일 외출에 대한 기록이다.

감금되어 노동하던 사람에게 하루 동안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엄청난 해방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외출자를 감시하는 ‘검은 양복’들은 그들을 두고 “대부분이 약간에 불과한 시간마저 허비하고 싶지 않아 허둥지둥거리다가 질주. 파친코나 캬바클럽, 술, 고기, 여자!”라고 그 일반적인 모습을 표현한다. 단순히 비교해서는 안 되겠지만, 나는 군복무 시절에 주어진 3박4일의 첫 휴가를 잊을 수 없다. 부대를 빠져나오자마자 터미널로 갔고,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3개나 사서 그 자리에서 다 먹었다. 곧 PC방에 가서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서 입대 전부터 하던 ‘프리스타일’이라는 농구게임을 했고 저녁에는 오랜 친구와 단골술집에 가서 스페셜 튀김 안주를 시켜놓고는 양껏 먹었다. 그렇게 먹고, 게임하고, 술을 마시는 데 꼬박 시간을 보냈다. 복귀하는 날에 찾아온 우울감은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살게 된 지금도 표현해 낼 길이 별로 없다. 검은 양복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시간 종료를 알리면 떼를 쓰며 마구 소리를 지르기까지… 흡사 어린애를 보는 것 같더군요” 하고 말한다.

누구나 감금된 삶을 원하지 않고, 어쩌다가 시간제 자유가 주어지면 그 안에서 욕망을 발산시키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오오츠키는 다르다. 그는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공원에 앉아 잡지를 읽거나 낮잠을 자기도 하고, 옷에 묻은 보풀을 꼼꼼히 떼어내기도 한다. 소중한 시간을 저렇게 보내도 되나, 하고 답답할 지경이다. 함께 외출을 나온 동료 누마카와가 어서 움직이자고 조급해하자 오오츠키는 벤치에 놓여 있던 잡지를 내밀면서 “일일외출을 만끽하려면 먼저 조급해하지 말 것,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해” 하고 말한다. 둘은 1시간 넘게 잡지를 탐독하고는 정답게 웃으며 만화 얘기를 나눈다. 해가 지고서야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둘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고, 누마카와가 “모처럼이니 제일 비싼 생선회 모듬을…” 하고 제안한다. 그러나 오오츠키는 그에게 어설프다면서 “지금 넌 밖에 나온 흥분으로 진짜 먹고 싶은 걸 놓치고 있어…. 네 고향은 규슈의 미야자키니까 네가 먹고 싶은 건 바로 치킨 난반이야” 하고 말한다.

오오츠키는 지하에서든 지상에서든 ‘오오츠키로서’ 살아간다. 그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상을 여행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타인이나 공간의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분석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그의 일일외출은 마치 일상처럼 잔잔하지만 본인에게는 최대의 만족을 주는 것으로 귀결된다. 지하로 돌아가서도 그는 그러한 태도를 견지하는데, 마치 지하로 일일외출을 나온 것처럼도 보인다. 그런 그의 모습에는 그를 감시하던 검은 양복들조차 매료된다. 일일외출을 나와서도 여전한 여유와 자신의 품격을 유지해 나가는 모습에 감탄하고, 그와 함께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며 즐기기도 한다.

현재를 여행하고 즐기는 사람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외출을 나온 오오츠키는 좋은 양복을 한 벌 구입한다. 검은 양복들은 그가 번듯한 모습이 아니면 못 들어갈 만한 고급 음식점에서의 한 끼를 노리고 있다고 짐작한다. 그러나 그는 ‘서서 먹는 소바집’, 샐러리맨이 애용하는 평범한 가게에 들어간다. 거기는 마치 전쟁터와 같아서, 모두가 서서 급히 소바를 먹는 가운데 주문을 받는 주인도 정신없이 바쁘다. 오오츠키는 비어 있는 테이블에 느긋하게 앉아서 고로케와 야채튀김과 새우튀김을 시키고, 시금치에 반숙을 올려줄 수 있는지 묻는다. 그런 여유를 보이는 그에게 몇몇의 이목이 집중된다. 오오츠키는 그런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생맥주를 한 잔 추가하고, 생맥주가 큰 잔에 담겨 나오자 재킷을 벗고는 그것을 정말 맛있게 마신다. 주변의 모두가 그를 보며 침을 삼킨다.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나도 생맥주 하나…” 하고 말하자 옆에서 그의 상사가 “멍청아! 아직 남았어 외근!” 하고 그에게 면박을 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오오츠키는 “생맥주 큰 잔으로 한 잔 더!” 하고 외친다. 모두는 “크윽…”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자신들의 소바를 먹는다. 양복을 입은 그는 대낮부터 술을 마셔도 되는 회사의 중역처럼 보이고, 순식간에 그 가게의 왕으로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오오츠키가 지하에서 모은 돈으로 빚을 갚지 않고 그처럼 외출권을 사는 이유는 아마도 지하와 지상을 오가는 그 생활이 만족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지하에서 그는 꽤 괜찮은 권력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머무르는 편이 굳이 지상에서 다시 밑바닥 삶을 사는 것보다 나을지 모른다. 동료들을 기만하는 그의 삶은 사실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하에서든 지상에서든 온전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지내는, 특히 일상을 여행하는 그의 태도만큼은 배워야 할 가치가 있다. 나는 얼마 전 일본으로 가기 위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첫 해외여행으로 일본을 선택한 데는 오오츠키의 영향도 조금 있을지 모르겠다. 일본의 어느 작은 술집에 들어가서 그가 먹던 방어회라든가 치킨 난반을 생맥주와 함께 먹고 싶다. 왠지 메뉴판을 보고 있자면 오오츠키가 옆에 앉아서 “네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마음을 가라앉히고 스스로에게 물어봐. 정답이 나올 거야” 하고 예의 그 악마적인 미소를 보낼 것만 같다.

<김민섭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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