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 중 인상 깊은 작품 중 하나였다. 피리 소리 하나로 아이들을 유혹해 뒤 따르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나이에게는 호기심을 끌어 당기는 신비로움이 깃들어있었다. 그런데 기자의 어린 시절에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아이들이 뛰고 달리며 뒤따르게 하는 능력을 가진 자동차가 있었다. 그것은 이른 바 '모기차', 혹은 '방구차'라고도 불렸던 '소독차'였다.

영화 ‘친구’를 보면 첫 장면에서 소독차를 쫒으며 해맑은 웃음으로 연기 속을 뛰어가는 아이들이 나온다. 지금의 10대, 20대들에게는 낯선 장면일지도 모르나 30대 이상의 세대에게는 친숙하다 못해 정겨운 모습일 것이다. 마을 골목을 가득 메우는 연기로 인해 주위는 보이지 않고 연기에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묘한 향으로 인해 온 동네 아이들이 뒤따르게 만들었던 것이 소독차였다.

당시만 해도 소독차 연기를 마시면 몸속에 기생하고 있는 벌레들도 박멸한다고 믿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연기 속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말리는 어른보다 재미있는 아이들의 놀이 정도로 바라보는 어른이 많았었다.

소독차는 주로 라보, 포터 같은 트럭에 연막소독기를 얹어 골목을 누볐다. 지역에 따라 포니 픽업에 연막소독기를 얹은 소독차도 종종 나타났다. 때로는 봉고와 같은 승합차에서 연막소독기를 사용해 방역 작업을 펼치기도 했고 차로 이동이 곤란한 곳은 사람이 직접 연막소독기를 등에 지고 방역 작업을 했었다. 심지어 살충제 원액 디브로나를 공중 살포한 적도 있었다.

국내에서 소독차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약 1960년대로, 인구 밀집 지역인 서울에서 먼저 시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독차를 운영하게 된 것은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통에 일어난 모기 퇴치 작업의 일환이었다. 소독차 연기는 살충제 원액에 경유, 석유를 혼합해 섭씨 500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원액이 기화되며 연기로 퍼져 나가는 원리로 작동됐다.

최근까지도 소독차가 방역작업을 모습이 보이곤 하는데 사실 소독차의 연막소독작업은 효과가 좋지 않다. 살충제 원액과 경유, 석유의 혼합비는 대략 1:200으로 살충제의 양이 적어 박멸보다는 일시적으로 기절 상태로 만들거나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효과가 나타난다. 살충제와 경유를 연기 형태로 퍼트리다 보니 인체에도 좋지 않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분무소독 방식이 그 자리를 대신해 나가고 있다

분무소독은 연막소독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효과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아파트 정화조 등 모기 유충의 서식지 방역작업을 통해 모기 발생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유충 1마리를 박멸하는 것은 성충 약 700마리를 구제(驅除)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기존 연막소독처럼 연기가 펴져 나가지 않기 때문에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과거만큼 흔하지는 않지만 현재도 곳곳에서 방역작업을 펼치는 소독차를 볼 수 있다. 혹여 인근에서 소독차를 발견한다면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 뒤쫒기보다는 창문은 닫고 연기가 퍼진 곳에 위치한 식기류, 피복류를 세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