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분데스리가 레전드투어 인 코리아 행사가 있는 날이다.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자와 손님들이 찾아왔다. 너 나 할 것 없이 한국축구를 걱정하고 안타까워 하는 현실 앞에서 축구인의 한사람으로서 죄송하고 송구스럽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오늘 행사는 독일 프로축구연맹이 분데스리가의 위상을 알리고 홍보하기 위한 목적 뿐 아니라, 독일 축구가 쌓은 많은 경험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다른나라들에 전수해 줌으로써 세계축구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고자 '분데스리가 레전드'라는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오늘은 바로 그 시작을 알리는 자리이다.
나는 지금 처럼 많은 축구팬들이 한국 축구를 걱정하고 불안해 하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분데스리가와의 직접적이고 친밀한 교류는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고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에 '분데스리가 레전드'의 역할을 기쁜 마음으로 선뜻 받아들였다.

아시아에는 중국 일본 그리고 우리 한국이 각 나라의 형편과 입장에 맞춰서 축구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 최근에는 베트남이나 태국 같은 나라들도 열심히 축구 발전을 꾀하고 있으며,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은 지리적으로 서로 맞붙어 있지만 매우 다르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오늘날 중국은 경제나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도 그렇듯이 축구 역시 예외없이 엄청난 힘으로 세계를 향하고 있고,그들이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투자는 세계 축구 시장에서 중국의 힘을 유감없이 넓혀나가고 있다.
이제는 독일이나 영국은 물론이고 브라질 스페인 이태리에 이르기까지 세계 어느 나라 축구도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더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수 많은 지도자나 선수들이 해외로 나가 여러가지 분야에서 국제화를 꾀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지도자들과 그 스텝들을 통째로 중국에 이식하여 보고 배우면서 축구 선진화를 직접 몸으로 배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이런 방식을 통한 발전은 무리이다.
우리뿐 아니라 세계 어느나라도 흉내내기 어렵다. 오직 중국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물적 자원을 동원해 급속한 변화를 꾀하고 있는 중국에 비해 일본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조직적으로 선진 시스템을 배우고 그것을 일본화 시키는데 노력해 왔다. 40년 전에 어린이 축구교실을 시작으로 뿌리부터 건강하게 교육하고 키워나가는 시스템은 이제 안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이 매우 부럽다. 혹자는 일본의 이런 선진화된 시스템을 부러워 할 때면 나에게 말한다. "일본이 그렇게 돈을 쓰고 연구를 해도 우리보다 잘하는게 없지 않느냐!"고. 물론 그렇게 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는 반대로 생각한다. 만약 우리 아이들을 일본처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시스템으로 교육하고 관리해 준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잘 할 것이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이라는게 있고, 우리들에게는 주변의 나라들과 다른 매우 특별한 기질이 있다. 바로 굽히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강인함이 그것이다. 우리가 타고난 그 '특별한 기질'은 축구를 하기에 매우 적합하고 긍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가 아시아 축구의 리더 자리를 지키면서 주변국들의 부러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우리 선수들의 타고난 그 '특별한 기질' 때문이었다고 확신한다. 독일 사람들의 씩씩함이나 투쟁능력과 매우 비슷하다. 이런 이유때문에 나는 늘 독일 축구가 우리 몸에 가장 잘 맞는다고 주장해 왔던 것이다.
이제 나도 65살이다.
65년을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결정을 꼽으라면 40년전 겁 없이 분데스리가에 도전했던 일이다. 아내는70년대 당시 우리 부부의 전 재산이었던 아파트 한채를 팔아서 독일 체류 생활비를 대줄터이니 일년 동안 죽어라고 노력해서 벤치 멤버 신세를 면했으면 좋겠다는 당부와 함께 나를 지지해주었다.

그 당시 분데스리가는 영화나 티비에서만 보던 바켄바우어, 게르트 뮬러, 제프 마이어 같은 슈퍼 스타들이 뛰고 있는 꿈과 같은 곳이었다. 나 같은 아시아 선수가 분데스리가에서 경기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돈과 명예까지 얻겠다고 기대하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해서는 안되는 높은 곳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매주 월요일 밤이면 분데스리가 녹화 방송을 시청하면서 두렵기 보다 흥분으로 떨렸던 기억이 새롭다. 저 곳에 가서 꼭 한번 겨뤄보고 싶었다. 이게 바로 한국인의 기질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아무 것도 없는 가난뱅이 축구선수였기 때문에 잃을 것도 없어서 홀가분하게 도전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데스리가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었고 지금도 내가 늘 고향처럼 의지하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축구가 어려운 지금 나는 DFL에 많은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
다시 얘기하지만 한국축구는 지금 매우 어렵고, 위기이다.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어린이들은 줄어들고 팬들 역시 한국 축구로부터 관심을 거두고 있다. 러시아 월드컵 티켓을 따냈음에도 상황은 전혀 좋아지지 않고 있다.
걱정이다.
2000년 벨기에 네델란드에서 열렸던 유럽 선수권대회를 중도 탈락했을 때 독일의 팬들 역시 그랬다. 당시 독일에 가면 "독일 대표팀이 국제경기에서 실력 이상의 성적을 내는 바람에 독일 축구의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며 여기저기서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그러더니 2000년 유럽 선수권대회 중도 하차를 기점으로 불만은 현실이 되었고 큰 고민을 하게 된다.
당시 감독은 나의 선생님이었던 리벡이었고 코치는 얼마 전 까지 한국대표팀을 지휘하던 슈틸리케였다. 유럽 선수권대회에서 하차하던 그날 밤 나는 내 친구 칼문트와 함께 독일 대표팀 숙소에 있었다. 참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밤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0여년이 채 안된 지금, 독일은 월드컵 우승국으로서의 위상은 물론이고 유럽 선수권대회 컨페더레이션스컵 이나 각종 연령별 국제 대회에서 거두는 성과들과 함께 명실 상부한 세계 축구의 리더가 되었다. 대표팀이 거두어 들이는 이런 성적은 물론이고 자국 리그인 분데스리가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슈퍼 스타들을 영입하고 의존하는 방식보다는 체계적이고 내실 있는 여러가지 시스템들로 가장 건강하고 이상적인 축구 관리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이 충만하다. 이런 자신감과 자부심은 팬들이나 대표팀, 그리고 분데스리가팀들은 물론이고 작은 마을의 작은 팀들에게서 까지도 느껴진다.
우리나라도 아시아 최강의 위용과 품위를 빨리 되찾아서 당당함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내가 수원삼성의 감독을 하고 있던 시기에 우리 팀과 FC서울이 경기를 하는 날이면 그 곳이 어디든지 간에 운동장은 빈 곳이 없었고 그 열기는 선수들의 발뒤꿈치가 저절로 들릴만큼 뜨거웠다. 그 때 나는 우리축구가 발전해 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그런 모습은 K리그에서 수년간 희미해져가고 있다. 2002년의 꿈 같은 업적은 우리팬들에게는 아직도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게 하는 기억이다. 너무나 아쉽지만 이제는 현실로 돌아와 그 꿈을 다시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준비해야 하는 때이다. 축구협회와 축구인들은 지금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나역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다. 지금은2000년의 독일처럼 필연적으로 변하고 고민해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클린스만이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열린 U-20에 아들 조나탄이 미국 대표로 출전했기 때문에 온가족이 모두 와서 오래 머물다 갔다. 아들 두리랑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던 클린스만은 두리에게 자신이 뢰브를 코치로 쓰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지도자 자격증 코스의 전술 수업시간에 쓰리백에 대해 요기가 발표하는 것을 듣고 너무 완벽해서 감탄스러운 나머지 '언젠가 내가 감독을 하면 꼭 요기를 코치로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했다.

뢰브는 프랑크푸르트 시절 팀 동료였기 때문에 나는 늘 조용하고 침착해 보이는 뢰브만 기억하고 있었다. 대표팀 감독이 된 후에도 나의 껄그러운 부탁들을 싫은 내색 하지 않고 들어줘서 늘 미안한 마음이 크기도 하다. 그는 눈에 띄는 성품이 아니다. 자기를 크게 어필하거나 강한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독일의 누구도 못이룬 많은 것들을 이루어 냈다. 슈퍼스타 출신이 아닌, 축구를 이해하고 진지하게 노력하는 지도자가 해낸 것이다.
그 때 나는 생각했다.
우리에게도 축구를 좋아하고 공부하고 싶어하는 지도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고, 이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하게 제공해주며 세계 축구의 흐름과 함께 호흡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서 지도자를 키워야 한다고 말이다. 언제까지 히딩크를 그리워 하고 외국인 지도자가 와야 한다고만 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독일처럼 완벽한 제도로 지도자를 배출하고 교육시킬 형편은 못되지만, 우수한 지도자들에게 만이라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많은 축구인의 얘기를 들어보고 내가 계획하고 있는 일과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 KFA와 DFL에 협조를 구할 생각이다. KFA의 의지와 DFL의 도움이 절실하다.
또 우리 청소년 선수들에게 더 많은 교류기회를 만들어주어서, 곧 차붐과 손흥민을 능가하는 선수들을 분데스리가에서 뛰게 하고 싶다.
지난 여름 ‘팀차붐’과 함께 독일 여행을 했다. 프랑크푸르트, 다름슈타트, 아우크스부르크 유소년들과 경기도 하고 훈련도 했다. 불과 2주간의 짧은 여행이었고, 4경기를 한 것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은 많은 것을 느끼고 좋아했다. 나는 이런 여행을 '다음'과 함께 매년 계획하고 있다. 훗날 이 아이들이 분데스리가에서 골을 넣고 차붐보다 더 사랑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오늘 행사에 분데스리가 우승접시인, ‘마이스터 샬레’도 함께 왔다.불공평하게도 이 접시는 거의 바이에른 뮌헨의 전유물이다. 나는 분데스리가에서 10년간이나 뛰었으면서도 이 영광스러운 접시는 그저 티비에서 브라이트너 루메니게가 높이 들어올리는 것은 부럽게 바라보는게 전부였다.
두리는 요즘 엄청나게 바쁘다.
그럼에도 이 접시를 보겠다고 왔다. 독일에서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라도 들어보고 싶은 접시이다. 분데스리가의 선수는 물론이고 팬들에게는 꿈 그 자체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차붐을 능가하는 한국 선수가 이 접시를 자랑스럽게 들어 올릴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

그들을 통해 내 꿈을 대신 이루고 싶은 욕심을 가져본다. 흥민이가 독일을 떠날 때 내가 몹시 아쉬워 했던 이유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65년 인생 중 분데스리가 도전은 가장 잘 한 일중의 하나이다.
내가 10년을 독일에서만 있었다는 사실 또한 포함된다.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매우 교육적인 사고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돕고 격려하고 함께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매우 강하다. 난민 정책이나 이재민 정책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책임감이 문화로 자리잡고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얼마전 프랑크푸르트의 유소년 쉐프인 아민크라츠가 청소년들을 데리고 한국에 왔을 때도 우리 선수들이나 지도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의논하면서, 돈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다른 나라의 축구문화와 비교해 독일 축구의 독특한 책임감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 부족함이 별로 없는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도 독일 축구의 리더쉽 문화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없지 않았을 것이라 스스로 생각한다.

우리 축구가 변해야 하는 부분은 많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작고 오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독일 축구가 2000년 이후 많은 변화와 노력 끝에 전성기의 꽃을 피우고 있는 것처럼, 나는 우리 축구도 그런 변화의 노력을 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