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스트레스, 쾌락..'다키스트 던전'과 바타이유의 에로티즘
[게임의 법칙-42] ◆로그라이크 인디 게임 '다키스트 던전'
2016년에 발매된 로그라이크 롤플레잉 게임인 '다키스트 던전'은 어두침침한 아트웍과 음산한 음악, 그리고 그에 걸맞은 하드코어 난이도를 보여주며 상당한 관심과 인기를 모았다. AAA급의 화려함이 없어도 독특한 게임 구성과 콘셉트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인디 게임의 사례로 '다키스트 던전'은 이제 큰 의미를 차지하는 게임이 되었다.
제목처럼 모든 것이 어둡기만 한 '다키스트 던전'은 과거 영화로웠던 어느 귀족의 영지로 향하는 마차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의 선조인 영주가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자신이 영지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악마의 관문을 열어버렸고, 그로 인해 파멸한 영지를 다시 되찾아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직접 던전을 탐험하는 것이 아니라 용병을 고용하고 파티를 구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역병 의사, 수녀, 강도, 야만인, 성기사 등 다채로운 직업과 능력을 가진 용병들이 큰 보상을 노리고 영지에 찾아오고, 플레이어는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4인으로 구성한 파티를 데리고 영지 지하의 거대한 던전들을 탐색해 들어가야 하는 것이 게임의 주된 목표다.

'다키스트 던전'을 특징 짓는 가장 큰 개념은 '스트레스'다. 체력과 마나로 구성되는 일반적인 롤플레잉 게임 캐릭터의 데이터에 '다키스트 던전'은 스트레스라는 새로운 수치를 추가했다. 던전 안에서 플레이어는 적의 공격으로 인해 체력이 줄어들어 사망하는 것뿐만 아니라 점점 차오르는 스트레스에 의한 피해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스트레스는 적의 공격에 맞았을 때만 차오르는 것은 아니다. 함정을 밟았을 때, 적으로부터 기습을 당했을 때, 횃불이 약해져 어두운 상태로 던전 안을 돌아다닐 때 등 여러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스트레스가 100이 되면 캐릭터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고통 상태에 빠져든다. 광기에 사로잡혀 히히거리거나, 절망에 빠져 치료를 거부하기도 하고, 완전히 이기적으로 돌변해 명령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이며 동료들을 비난하기도 하는 등 실제로 스트레스에 과도하게 노출된 상황을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이며 게임 플레이에 큰 장애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100을 넘어선 뒤에도 계속 상승하는 스트레스는 200에 이르면 캐릭터를 심장마비로 즉사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다키스트 던전'이 사용하는 스트레스 방식은 확실히 독특하다. 이는 단지 스트레스 상황에서 캐릭터가 정신 나간 행동을 하거나 불굴의 의지를 발휘해 오히려 각성한다는 심리 묘사의 도구로 스트레스가 사용되어서만은 아니다. 게임의 스트레스 개념은 '다키스트 던전'의 또 다른 특징인, 캐릭터는 한 번 죽으면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과 엮이면서 의미를 만들어 낸다.
◆스트레스는 죽음과 공포로부터 온다
인류에게 스트레스라는 개념이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1936년에 캐나다의 생화학자 한스 셀리에가 발표한 논문에서 '일반적응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이 개념은 생물이 외부의 유해 자극에 시달리면서 발생하는 변화를 가리키는 말로, 이후 '스트레스 반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이때 외부의 유해 자극은 생물 실험에서 생존에 위협을 주는 자극이다. 생물은 생존본능을 통해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한정된 자신의 자원을 위협 극복에 집중하기 위해 소화기관, 면역체계 등의 활동을 낮추게 된다. 결론적으로 스트레스 반응은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자원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 동물에서의 스트레스는 인간으로 넘어오면서 정신적 영역을 포함하게 된다.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은 자신에게 닥쳐 올 위협까지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얻게 되는 격렬한 감정 또한 스트레스 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이 생물학자 로버트 새폴스키의 주장이다. (동아사이언스 '오리지널 논문으로 배우는 생명과학 11 - 1936년 한스 셀리에 박사의 스트레스 현상 발견' 참조)
여기서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스트레스라는 개념이 생명체의 생존본능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죽음이 전제되어 있을 때 발생하는 것이 스트레스인데, '다키스트 던전'은 캐릭터의 죽음을 강렬하게 표현하면서 스트레스의 의미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게임 안에서 던전 탐험의 주체가 되는 용병 캐릭터들은 다른 게임에서와 달리 한 번 죽으면 되살릴 수 없다. (일부 이벤트에서는 낮은 확률로 가능해지기도 한다) 많은 자원과 오랜 시간을 들여 키워 둔 캐릭터가 갑자기 던전 안에서 사망하게 되어도 세이브/로드를 지원하지 않는 '다키스트 던전'에서는 이를 구해낼 방법이 없다. 레벨이 높아진다고 해서 죽을 확률이 줄어드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공들여 키운 캐릭터가 순식간에 골로 가는 경험을 하면서 플레이어마저도 스트레스 상황에 빠져드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던전 안에서 죽으면 되돌릴 수 없다는 불안감, 게다가 그 한 번의 죽음이 만드는 레벨과 경험치, 아이템의 상실감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다키스트 던전'의 스트레스 수치는 비로소 진짜 스트레스로의 의미를 갖게 된다. 복구할 수 없는 막대한 피해로서의 죽음이 게임 안에서 두드러지기 때문에 캐릭터를 그려내는 데이터로서의 스트레스는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본능의 움직임을 가리키는 바로미터가 되며 캐릭터의 반응을 설득력있게 풀어내는 것이다.
◆바타이유의 '에로티즘'과 '다키스트 던전'
이는 게임 안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으로 등장하는 개념들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던전 탐험으로 상승한 스트레스를 내리기 위해 제공되는 수단은 크게 두 가지인데, 유흥가와 수도원이다. 유흥가 안에는 도박과 사창가, 술집이 있으며 수도원에는 기도실과 고행시설 등이 자리한다.

그런 면에서 '다키스트 던전'은 바타유 개념 속의 에로티즘이 전체적으로 녹아 있는 게임이다. 죽음, 죽음으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이를 해소하고 넘어서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은 어둡고 음침한 게임의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게임보다 두드러지게 강조되는 '명확하고 되돌릴 수 없는 죽음'에 의해 진하고 무겁게 그려진다.
죽음-스트레스-쾌락으로 이어지는 바타유식 에로티즘의 흐름은 '다키스트 던전'이 품고 있는 기묘한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시청각 이미지와 게임이 전체적으로 풍기는 음울함 속의 묘한 매력을 느끼고 있다면, 아마도 에로티즘과 죽음의 관계를 설명하는 바타유의 이야기에 동감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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