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겪은 이 도로, 나흘 전과 똑같다
그날 소방차가 못 들어간 도로, 여전히 불법주차 늘어서.. 제천만 이럴까
사이드브레이크 채워 밀지 못해..
화재 건물 하루 수백명 오갔는데 21대 주차 공간 확보한 채 영업
25일 찾은 충북 제천 하소동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현장. 이날 오후 5시 사고 건물과 마주 보고 있는 'S마트' 오른쪽에 인접한 70여m 길이 도로 양쪽으로 승용차 16대가 불법 주차돼 있었다. 도로의 폭은 약 6m 60㎝. 불법 주차된 도로 양편 차 간 간격을 줄자로 재 보니 2m 85㎝ 안팎이었다. 중형차 한 대가 간신히 통과할 정도였다. 그중 차 5대를 두 손으로 밀어봤다. 핸드 브레이크가 채워져 꿈쩍하지 않았다.
제천 화재 참사로 29명이 숨졌다. 피해가 커진 것은 불법 주차와 가려진 비상구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고 당일 소방차들은 불법 주차 때문에 화재 현장 접근과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참사 발생 나흘 만에 똑같은 일이, 똑같은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1일 소방대는 첫 신고 7분 뒤인 오후 4시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소방 차량들은 곧바로 구조 작업에 투입되지 못했다. 사고 건물 주변 도로에 불법으로 주정차된 차량들 때문에 화재 현장 접근이 어려웠다.
소방차들은 가까운 주변 도로로 우회할 수 있었으나, 이 역시 불법 주차 때문에 힘들었다. 결국 큰 도로로 나가 500여m를 돌아가 반대쪽 방향으로 들어왔다. 또 구조 작업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30여분간 불법 주정차 차량들을 치워야 했다.
25일 불법 주차가 없는 곳은 '폴리스 라인'이 쳐진 건물 정면 도로뿐이었다. 그곳에서 경찰과 소방 관계자 등이 모여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사고 수습을 하고 있었다. 그 뒤와 옆 도로엔 불법 주차가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사고가 난 스포츠센터 건물 정문 앞에는 폭 6m 정도 되는 왕복 2차선 도로가 있다. 현장에 출동했던 굴절 사다리차의 폭은 2.5m로, 사다리를 지탱하기 위해 아웃트리거(지지대)를 설치하려면 최소 5.5m 이상의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고 당시 건물 앞에는 도로 양쪽으로 차량 10대 이상씩 불법 주차되어 있었다. 실질적으로 차량이 이동할 수 있는 도로 폭은 2m가 겨우 넘는 수준으로, 굴절 사다리차는 도로 진입이 아예 불가능했다. 소방 당국은 "견인 차량 7대를 불러 불법 주차된 차량을 모두 제거했다. 그제야 건물 앞에선 굴절 사다리로, 뒤에선 고가 사다리를 전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만약 같은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한다면, 소방 차량이 제대로 진입할 수 있을까? 25일 오전 사고 건물 앞 도로 양쪽에는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이 10여대 쭉 늘어서 있었다. 이 중에는 언론사 차량도 있었다. 인근 주민 김길준(52)씨는 "사고가 난 스포츠센터는 리모델링 후 지난 10월 재오픈하며 대대적으로 손님을 모았다"며 "헬스클럽과 목욕탕 이용객들이 다 차를 가져오기 때문에 도로엔 늘 차가 꽉 차 사람들도 다니기 힘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3시 사고 건물 앞에 불법 주정차되어 있는 차량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고, 도로 양쪽 끝에 폴리스 라인을 쳐 차량 진입을 전면 통제했다. 하지만 정문 앞 도로를 제외하곤 여전히 불법 주정차 차량들이 즐비했다.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공간이 좁다 보니 도로에 진입하려는 차량들이 멈칫대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반대편에서 차량이 오면 차를 도로 입구까지 후진해 길을 비켜주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주민 김윤상(54)씨는 "이 지역은 평소에도 차들이 빼곡하게 양면으로 주차해서 트럭 한 대가 지나가도 도로가 마비될 정도로 난리가 난다"고 말했다.
필로티(벽 없이 기둥으로 건물을 떠받치는 구조) 방식으로 지어진 사고 건물 1층은 총 21대의 주차 공간이 있다. 동시에 스포츠센터를 이용하는 사람이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100명이 넘는 데 비해 주차 공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 건물과 마주 보고 있는 S마트도 주차 공간은 20여개에 불과하다. 사고 건물 주변에는 다세대 주택과 상가 건물이 밀집해 있지만 주차장이 따로 설치된 곳은 드물었다. 인근 5층짜리 상가 건물에는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5개뿐이었다. 사고 건물 주변 상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스포츠 센터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주차장이 없어 상가 앞에 불법 주차를 하다 보니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들조차 주차할 공간이 없어 애를 먹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인근 카페 사장도 "상점 앞 도로에 불법 정차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차장이 부족하면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실정"이라고 했다. 또 다른 주민은 "주차장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이 불법 주차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내 차 하나쯤은…'이라고 하는 생각이 사고를 키우는 것"이라며 "이런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제도를 고쳐도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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